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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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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미래] ‘헬조선’을 말하는 청년 햄릿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헬조선’을 둘러싼 사회적 잡담이 치열하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가 “헬조선이라 빈정대지 마라. 부모들 모두 울고 싶은 심정”이라며, “스타벅스, 배낭여행, 컴퓨터 게임 등 지금 누리는 것 중 청년세대가 이룬 것”은 없으니, “응석부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자,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5천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이라고 거세게 비판하는 등 이에 대한 찬반이 이어지는 중이다.이 교수가 『햄릿』을 읽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는 마치 햄릿의 이해와 사랑을 갈구하는 거트루드 왕비 같다. “아들아, 어두운 낯빛을 버리고 친구를 바라보는 눈으로 덴마크를 보아라. 죽은 네 아버지를 찾지 마라. 흔한 일이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을 수밖에 없어.”완벽한 헛발질..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다 세월호 3주기 날입니다.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중앙선데이》에 4주마다 한 번씩 쓰는 칼럼. 문학과 슬픔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인류 최초의 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슬퍼하는 영웅 길가메시로부터, 『일리아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는 영웅 아킬레우스로부터, 「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과 그 처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여옥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문학의 기원에는 슬픔이 있습니다.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문학은 슬픔으로부터 태어났다 날이 풀렸다 싶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앞 냇가를 걷는다. 새벽 첫 빛에 어슴푸레 반짝이는 물살들. 물결이 가볍게 뒤척일 때마다 몸속에서 물이 함께 출렁인다. 푸석한 삶을 견디다 못해 물소..
나는 선택하기를 거부한다 ―살만 루슈디의 『이스트, 웨스트』(김송현정 옮김, 문학동네, 2015)를 완독하다 나 역시 목에 밧줄이 감겨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그 밧줄이 나를 이리저리로 끌어당기고 있다. 동과 서, 그 팽팽한 끈들이 명령한다. 선택하라, 선택하라.나는 껑충껑충 뛰고, 콧김을 내뿜고, 히힝 울고, 뒷발로 서고, 발길질을 한다. 나는 어떠한 밧줄도 선택하지 않는다. 올가미, 올무, 그중 어떠한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듣고 있는가? 나는 선택하기를 거부한다. ―살만 루슈디, 「코터」, 『이스트, 웨스트』, 김송현정 옮김(문학동네, 2015), 232쪽 『이스트, 웨스트』를 드디어 완독하다. 작년 가을에 선물로 받아서 조금씩 아껴서 읽던 작품이다. 이 책에 담긴 아홉 소설들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끼여서 정체를 이룩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주로 동양인으로 태어나 그 문화 속에서 정..
중2병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단상 _오늘의 교육을 읽다가 “중2 때는 무엇 하나 집중을 못한다. 특히 누가 있을 때 더욱 힘들다.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 집중하면 힘들다. 왜냐? 주변에서 속닥댄다. 심지어 등굣길에 노래 듣기도 힘들다. 이어폰만 꽂으면 중2병이라고 한다. 나는 발라드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좋아했다. 이것도 중2병인가? 나도 집에서 놀림 받는다. 여자 친구랑 전화하면 중2병, 노래 들으면 중2병, 책 읽으면 중2병. …… 다들 중2 때의 기억을 잊었나?” - 204쪽,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것」, 박용희 《오늘의 교육》 29호가 나왔다. 소개글에서 문득 이런 구절과 마주쳤다. 저항의 언어다. ‘중2’를 질병 이름으로 쓰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 아이들의 신체와 정신에 가하는 훈육을 감추려고 아이들..
‘햄릿’ 읽는 농부들 _ 농촌인문학하우스 이야기 매주 홍동밝맑도서관에서 인문학 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시 한 편씩을 읽고, 『햄릿』을 읽고 있습니다. 지난주 《문화일보》 유민환 기자가 다녀갔는데, 기사가 실렸네요. 남은 삶은 이렇게 공부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블로그에 옮겨 둡니다. ‘햄릿’ 읽는 농부들 “농촌살이 힘 키우죠”충남 홍성군 홍동면 ‘농촌 인문학 하우스’ 개설 4개월 스물 청년부터 중년까지 20여 명생화학·일본어·한자공부 함께“학습 통해 문제도 스스로 해결” 첫 유기농 농사 생태마을로 유명마을 찾는 방문객 年 2만 명 달해FTA 등 세계화속 자립방안 찾아 “우리의 의도와 운명은 정반대로 달리기에/우리가 계획한 것은 끊임없이 뒤집히오./우리 생각은 우리 것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 것이 아니라오.” (‘배우 왕’역을 맡은 학생)..
[문화일보 서평] 생각하고 먹는 모든 것 공유 ‘超연결사회’에서의 내 삶 _타인의 영향력 생각하고 먹는 모든 것 공유 ‘超연결사회’에서의 내 삶타인의 영향력 / 마이클 본드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책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장으로 끝난다. “우리는 다양한 흐름에 휩쓸리지만,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 주는 존재는 바로 함께 헤엄치는 사람들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저자와 함께 헤엄쳤던 사람들은 이 문장이 얼마나 뜨거운지 안다. 이름은 마이클이지만 본드 가문에 속한 사람답게 저자는 지하 감옥에서 우주 공간으로, 인도양의 무더운 밀림에서 남극의 얼어붙은 고원으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9·11테러가 일어났던 뉴욕의 쌍둥이 빌딩 속으로 종횡무진 옮겨 다니면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각종 임무를 수행한다. 해결해야 할 질문은 때마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뭉치고 모여서 결국 최후의 한 가지..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정예영 옮김, 을유문화사, 2008)을 읽다 삼류 작가의 시시한 작품보다 거장의 걸작을 오해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어린 시절, 루카치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마르크스주의 문예 미학의 깃발 아래 읽었던 발자크의 작품들은 얼마나 재미없었던가. 그때는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고, 작가의 사상이 왕당파에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그 핍진한 묘사 때문에 소설 내용이 ‘부르주아의 승리’라는 역사적 법칙의 엄중함에 따른다는 것만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려 들었다. 작품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거대한 관념들의 전개, 귀족 세력을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는 상인 세력의 발흥, 그 갈피에서 오로직 역사 법칙에만 복무하는 듯한 인물의 행위들, 이런 독서는 결국 나의 발자크 읽기를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나는 발자크 작품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극도로 ..
살인에 대하여(셰익스피어) 살인에는 정말 성역이 있어선 안 되고, 복수에 한계는 없어야지.(『햄릿』 중에서)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나오는 독서 잡지 《책&》에 실린 소설가 김연경의 연재글 「명작의 탄생」에서 다시 옮겨 적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한 글이었는데, 글솜씨가 좋아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그 많고 많은 햄릿의 명구절 중에서 저런 구절을 뽑아 갈등하는 햄릿을 머릿속에서 부추긴 것이 흥미로웠다. 이달 말까지로 예정한 카프카 읽기가 대충 끝나면, 셰익스피어 작품을 모조리 구해서 읽어 볼까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