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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문화일보 서평] 생각하고 먹는 모든 것 공유 ‘超연결사회’에서의 내 삶 _타인의 영향력


생각하고 먹는 모든 것 공유 ‘超연결사회’에서의 내 삶

타인의 영향력 / 마이클 본드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책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장으로 끝난다. “우리는 다양한 흐름에 휩쓸리지만,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 주는 존재는 바로 함께 헤엄치는 사람들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저자와 함께 헤엄쳤던 사람들은 이 문장이 얼마나 뜨거운지 안다. 이름은 마이클이지만 본드 가문에 속한 사람답게 저자는 지하 감옥에서 우주 공간으로, 인도양의 무더운 밀림에서 남극의 얼어붙은 고원으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9·11테러가 일어났던 뉴욕의 쌍둥이 빌딩 속으로 종횡무진 옮겨 다니면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각종 임무를 수행한다. 해결해야 할 질문은 때마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뭉치고 모여서 결국 최후의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된다.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해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모든 것과 모든 것을 연결하는 초연결사회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사물이, 사물과 사물이 무한대로 이어진다. 긴급한 이유 없이도 먼 곳에 사는 낯선 이와 관계가 맺어진다. 소셜미디어는 고백의 물결로 넘쳐난다. 생각하고 일하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공유된다. 연결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치를 얻고, 나를 송두리째 드러내 보이는 이상한 실천을 통해서만 ‘내가 있다’는 존재감을 간신히 얻을 수 있다. 

이런 것이 나로 사는 것일까?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은 걸까? “저한테는 겉모습을 초월하는 무엇이 있습니다”라고 햄릿처럼 세상을 향해 감히 항변할 수 있을까?

본드는 세계 곳곳의 심리실험실을 기웃대면서 정보를 뽑아내는 숙련된 스파이처럼 움직인다. 그의 행적을 따라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아내려는 과학의 분투가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의 뇌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시냅스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연결하고 관계 맺는 것은 진화의 필연적 산물이다. 그것은 우리의 본능을 이룬다. 우리는 계속 신경의 촉수를 내밀어 타자를 건드리고 말단을 서로 얽으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영향력에서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돌이킬 수 없이 후회할 짓도 서슴없이 저질러 버린다.

유대인 수백만 명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이 그랬다. 나치와 함께 헤엄쳤을 뿐, 그는 정신병자이거나 악마가 아니라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군 포로들을 고문하고 조롱했던 미국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약자에 대한 가학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상황에서 일정 시간 헤엄치자마자 곧바로 그들은 타락해 버렸다. 물론 사회적인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도덕적 가치를 지키면서 행동하는 영웅도 있다. 나치 점령 아래에서도 프랑스의 르샹봉 마을 주민들은 경찰의 눈길을 피해서 유대인을 포함한 망명자 수백 명을 보호했다. 덴마크의 일반 시민들은 독일 경비정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유대인 8000명을 바닷길로 스웨덴까지 대피시켰다.

‘악의 평범성’과 ‘선의 미스터리’는 인간을 숙주로 공생 중이다. 인간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물 속에 뛰어들어 위험을 감수하고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힘에 아주 취약해서 도덕적인 판단과 성찰 능력을 타인에게 맡겨 버린 채 쉽게 잔인하고 부도덕한 일에 가담해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좋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실상은 더 중요하다. 

행복과 마찬가지로, 도덕 역시 심리학이 아니라 존재론에 가깝다. 어디에서 누구와 어울려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홀로 성인(聖人)이 되는 것보다 인생을 올곧게 만들어준다. 책은 풍부한 역사적 사례와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 사실을 환기시킨다. 저자는 말한다. “집단 정체성이 자기 정체성에 앞서고, 협력이 자율성에 앞선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소통’이다. 삶을 위해 어떤 소통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서 ‘나’이면서 ‘사회’인 ‘사회적 나’를 발명한다. 집단의 권위나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좋은 나’로서 살아가려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일이 옳은 일이라서 하는가, 아니면 주위 사람들이 옳다고 느끼게 해줘서 하는가?”

한 가지 굳이 덧붙이고 싶다. 이 책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헤엄쳐야 할 때와 물결을 거슬러 홀로 헤엄쳐야 할 때를 분별하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화들로 풍성하다. 

가령, 당신이 타고 가던 배가 사고로 갑자기 침몰한다고 하자. 어떻게 할 것인가? 혼란에 빠지지 않고 질서를 잡는다. 안내 방송에 따라 얌전히 실내에서 구조를 기다린다. 한국인이라면 흔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세월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움직여라!”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출구를 향할 것이고, 모두 같이 움직이기를 바란다고 명확히 알려야 한다. 그다음에는 서둘러야 한다.” 

아이들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낡아빠진 민방위 대피법 말고는 아이들에게 미처 알려주지 못했던 기성사회의 온전한 잘못이다. 미안하다. 어른들이 이런 책을 미리 읽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