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표절

(9)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의 파산과 문학 제도의 혁신 계간 《자음과모음》 봄호 특집 ‘작가-노동’이 화제다. “원고료로 생활이 가능한 ‘전업 평론가’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문학평론가 장은정이 구체적 숫자로 답했기 때문이다. 2009~2019년까지 11년 동안 그가 발표한 글은 176편, 원고 매수로 5728매다. 대가는 총 3390만 원, 한 달 평균 46만 원이다. 이른바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에 속해 상당히 많은 발표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이 정도다. 나머지 평론가들 수입은 말할 것도 없다. ‘전업 평론가’는 불가능하다.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창비 등 주요 문학 출판사의 내부 독회에 바탕을 둔 차세대 평론가 운영 체제를 말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들 출판사는 내부 편집위원, 편집자, 외부..
[문화일보 서평] 왜 어떤 일은 기억하고 어떤 일은 쉽게 잊을까 _다우어 드라이스마의 망각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표절 사건이 일어난 후, 소설가 신경숙이 그 일을 사실상 시인하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표현의 모호함 탓에 대중의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일상에서 무척 자주 일어난다.1970년 영국에서 유사한 표절사건이 벌어졌다. 고발된 사람은 조지 해리슨. 비틀즈의 멤버다. 그가 솔로로 발표한 곡 「나의 자비로운 신(My Sweet Lord)」이 여성 그룹 치폰스의 히트곡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He’s so fine)」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두 곡은 멜로디가 아주 비슷했다.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를 반주로 틀어놓고 「나의 자비로운 신」을 불러..
[시골마을에서 한시를 읽다] 이몽양(李夢陽)의 새로 지은 산장에서 저절로 흥이 일어(新莊漫興) 새로 지은 산장에서 저절로 흥이 일어 이몽양(李夢陽, 1475~1529) 지난번 왔을 때에는 살구꽃이 붉었는데,이번에 오니 멀구슬꽃이 빨가네.꽃이 피고 또 꽃이 피나니,고요히 앉아 세월 가는 것을 보누나. 新莊漫興 昨來杏花紅,今來楝花赤.一花復一花,坐見歲年易. 이몽양은 명나라 때의 시인으로 호를 공동자(空同子)라고 했습니다. 열여섯 살 어린 나이로 과거에 급제해 관직을 얻었으나, 절개를 앞세운 과격한 행동 탓에 세 번이나 옥고를 치르는 등 불우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문학에서는 전칠자(前七子)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데, 다른 이들과 함께 “한나라 이후에는 문장이 없고, 당나라 이후에는 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복고적 문학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각 시대에는 그 시절에 맞는 정서가 있고 언어가 있는 법인데, 지금..
편집자가 필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제 몸으로 하는 공부가 시대의 한 대세로 올라선 느낌이다. 단지 정보를 눈으로 읽어 받아들이고, 머리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드려 쏟아내는 일만으로 사람들은 헛헛할 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라고 썼다. 알에 둘러싸인 채 태어나서 껍데기를 깨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간절하고 안타까운 투쟁이야말로 인생에 진정한 활기를 불어넣는 행위다. 이 본능적 투쟁은 인간에게서 사라질 수 없다. 설령 잠시 약화되더라도 반드시 되돌아온다. 인간은 이러한 투쟁 없이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연결시대에 정보 폭풍 속에서 한없이 시들어진 인간 본성을 편집은 어떻게 책으로 가져와 다시 일으킬..
문학권력 문제에 대하여 《문화일보》와 《동아일보》에 제 이름이 실린 기사가 나왔습니다. 문학권력 문제는 그다지 다루고 싶은 주제는 아닙니다. 비평 자본과 출판 자본이 한몸으로 결합되어 상생하는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말 한마디 보탠다고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창비든, 문학동네든, 문학과지성사든 좋은 작품을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 이를 훌륭한 비평으로 떠받쳐 왔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모두 사기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문학에 지금까지 헌신해 온 세 출판사의 선의를 결코 의심하지 않지만, 결국 이 출판사들도 이익을 내고 손해를 줄여 파산을 면해야 하고 해마다 직원들의 복리를 향상해야 하는 기업입니다. 무슨 문학 협동조합도, 사회적 기업도 아니고, 기업의 그러한 기본 기능을 무겁게 떠맡은 회사들입니다. 문학 권력 문제를 논..
문학에 별도의 표절 기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표절을 둘러싼 지금 국면에서 꼭 필요한 기사를 《한국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썼다. 표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도모하는 기사들이다. 좋은 기사들이다. 내 이름이 들어 있기에 아래에 스크랩한다. 하지만 솔직히 내용을 읽으면서 인용된 이른바 전문가들 발언에 조금 슬퍼지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여기에 내 마음을 몇 자 적어 둔다.《한국일보》 기사에 모티브 표절이니 플롯 표절이니 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솔직히 이런 건 표절로 성립되기 정말 어렵다. 물론 법리를 다투어 더 엄격한 표절 기준을 만들면 가능하겠지만, 아마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창작의 자유가 극히 위축될 것이다. 모든 작가는 과거의 작품을 새로 쓰는 것인데, 이런 게 있으면 어찌 작품이 나올 수 있겠나. 상식을 넘어서 발언이다. 자꾸..
신경숙 표절논란… 의혹 제기와 해명의 윤리(세계일보) 어제 올린 표절 관련 글에 대해 《세계일보》 조용호 선배가 인용해서 기사를 썼다. 아래에 옮겨 둔다. 신경숙 표절논란… 의혹 제기와 해명의 윤리작가 영혼에 상처… 문제 제기 신중 필요…기준 정해 시비 가리되 여론재판 안되야 일본 네티즌들이 자기네 나라 우익 작가의 문장을 한국 인기 작가가 표절했다는 소식에 시끌벅적한 모양이다. 소설가 신경숙(사진)이 자신의 단편 ‘전설’의 내용 중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한 대목을 차용했다는 소설가 이응준의 문제 제기에 이미 한국에서는 작가 본인의 해명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도 사안은 가라앉지 않는 형국이다. 출판사 창비에서는 작가의 대답을 빌려 대단히 우익적인 색채의 일본 작가 작품과 신경숙의 그것은 판이하게 다르며, 인용 문장들조차 신경숙이 더 우월하다고 밝..
편집자를 위한 표절 판단법 신경숙의 표절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하지만 편집자로서 나는 표절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지만, 표절 제기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으며, 물론 표절 해명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표절이란 한 작가의 영혼을 예리한 칼로 긋는 행위이고, 단지 의혹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깊게 베이는 경우도 많으므로, 문제제기 자체에서 극도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표절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여부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고, 극히 까다로운 고민을 거쳐야 한다. 물론 문제된 사안이야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하지만 같이 논의되는 편혜영 등의 경우에는 언론에 문제로 제출된 작품만 보자면 솔직히 말해서 여론재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거칠게 말하자면,(이건 정말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