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을 둘러싼 지금 국면에서 꼭 필요한 기사를 《한국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썼다. 표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도모하는 기사들이다. 좋은 기사들이다. 내 이름이 들어 있기에 아래에 스크랩한다. 하지만 솔직히 내용을 읽으면서 인용된 이른바 전문가들 발언에 조금 슬퍼지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여기에 내 마음을 몇 자 적어 둔다.
《한국일보》 기사에 모티브 표절이니 플롯 표절이니 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솔직히 이런 건 표절로 성립되기 정말 어렵다. 물론 법리를 다투어 더 엄격한 표절 기준을 만들면 가능하겠지만, 아마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창작의 자유가 극히 위축될 것이다. 모든 작가는 과거의 작품을 새로 쓰는 것인데, 이런 게 있으면 어찌 작품이 나올 수 있겠나. 상식을 넘어서 발언이다. 자꾸 이런 말을 하는 자칭 전문가들이 있으니까 표절을 둘러싼 혼란이 계속되는 것이다.
《동아일보》에 표절 의혹으로 제기된 사례 중 거의 대부분은 의혹이 없다. 표절이 명확히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건 표로 제시한다면 판단 결과까지 제시할 사항이지 의혹이 아직도 있는 것처럼 그냥 제시하는 것은 이름이 공표된 작가들에게 모욕이 된다. 이런 부분까지 여론의 판단에 맡겨두면 요즈음 분위기로는 개별 작가나 문단에 표절을 둘러싼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이문열, 조경란 등의 경우는 표절과 관련해서 더 따져볼 내용이 거의 없는데도, 작가의 무게 탓인지 자꾸 논의가 된다. 극히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 문학에서 표절의 기준을 두자느니, 문학윤리위원회를 두자느니, 표절 백서를 내자느지 하는 말이 논의되고 있다. 솔직히 황당하다. 전 세계에 그런 엉뚱한 나라가 있을까 싶다. 문학과 같은 순수예술은 논문과는 달리 기계적 기준을 적용하기가 너무 어렵다. 일단 마음껏 쓰고 나서 자신의 양심과 문학적 생명을 걸고 발표하고 역사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문학 작품이 논문 등의 기준보다 낮은 수준에서 표절 여부가 결정될 리도 없다. 이번 신경숙 사태에서 보이는 것처럼, 설사 억압이 있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되돌아와서 문학을 훼손한 데 대해서 복수하게 마련이다. 문학의 표절 기준은 내적 자율의 영역이지 외적 규칙의 영역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양심의 문제이다. 규율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표절 자체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기존에 판례가 수없이 나와 있고, 법리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사실도 없는데, 명확히 표절이 아닌 작품을 대상으로 소모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 전문가라면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어떤 작품이 표절에 해당하는지 거의 알 수가 있다. 별도 기준 따위는 거의 필요 없다. 굳이 필요하다면 기존에 나온 대법원 판례 등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다음에는 작품별로 문학적 효과까지 감안해서 전문가들이 여부를 다투면 된다.
《한국일보》 기사의 전반적 취지에 공감하지만, 제목에는 공감이 어렵다. 티 안 나는 표절은 표절이 아니다. 모든 문장은 작가가 읽은 과거의 문장으로부터 새로운 표현을 얻으려는 분투에서 비롯된다. 만약 티 안 나는 표절이 있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표현을 얻은 것이지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식의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문학에 과장된 어둠의 기미를 불어넣는다.
유명 작가일수록 표절의 폭발성은 생각보다 크고 넓다. 문학은 양심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문학에 더 큰 염결성을 요구하는 것은 실은 문학에 정신의 많은 것을 기대고 있어서다. 문학의 표절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파장이 커진 것은, “같은 것을 다르다고 한” 해명이 계기이지만, 청문회 등을 거치면서 표절에 대한 사회적 눈높이가 높아진 것도 한 원인이다. 신경숙 사태의 폭발성은 문학에 대한 기대의 산물이지 조롱의 결과가 아니다.
물론 이런 사태를 촉발한 문학권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문학권력이 문제라면, 표절의 은폐 쪽이라기보다는 작품의 평가 시스템 쪽일 것이다. 편집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비평과 출판이 굳게 결합되어 있는 한 거기 참여하는 비평가 누구도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문학 전체가 표절의 어둠에 덮여 있다는 식의 사실 인식을 나는 단호히 거부하고 싶다. 그런 식의 문제 제기에도 반대한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 보물에 해당한다. 표절을 이야기할 때에는 작가가 입을 상처까지 고려하는 문제제기의 윤리도 살펴야 한다. 다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표절' 저작권법 기준은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가 이슈가 되며 문단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의 표절 의혹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가 된 신씨의 ‘전설’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연속된 몇 문장을 약간 변형한 것이어서 누가 봐도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작가와 평론가들은 “확연히 표절이 드러나는 표현 외에 티가 안 나는 설정이나 모티브, 플롯 등의 표절이 더욱 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는 명확하지 않고 법적으론 최소한의 기준만 적용되는 편이다.
표절 여부를 판가름하는 법규는 저작권법이다.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의 ‘창작과 표절의 구별기준’에 따르면 현 저작권법은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별, 창작적 표현은 보호하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보호하지 않는 ‘아이디어 표현 이분법’에 입각하고 있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가 명확하진 않지만 통상 제목이나 주제는 아이디어에, 작가의 상황 묘사나 대사 등은 표현에 해당한다. 줄거리, 등장인물, 사건전개는 아이디어와 표현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저작권법이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는 이유는 창작자들의 발상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하게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작가들은 천차만별의 표현을 사용할 수 있고 법은 아이디어보다 저자의 독창적 표현을 보호하는 데 주력한다. 법 취지에 따르면 문예저작물에서의 표현은 사실저작물이나 기능저작물에 비해 창작성이나 예술성이 높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보호받아야 한다. 물론 얼마나 독창적이냐가 중요한데, 이를테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랑에 빠지게 됐다” 같은 일상적 표현엔 표절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논란의 핵심 표현인 “기쁨을 아는 몸”이라는 구절은 표절 책임을 물을 여지가 상당하다. ‘우국’은 1936년 일본 육군 장교들의 쿠데타를, ‘전설’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고뇌하는 남자와 젊은 아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구조의 유사성도 제기됐지만 법적으로 표절로 보기는 애매하다.
창비 출판사는 애초에 “해당 대목이 작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며 표절 의혹 제기를 폄하했는데 저작권침해 여부는 질적인 개념이지 분량은 문제가 안 된다. 국내에는 판례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영화 선전문구 한 줄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인정한 판례가 있다.
하지만 문인들은 학술논문처럼 “6개 단어가 연속으로 나열될 경우 표절로 본다”는 명확한 판례가 없는 상태에서 검찰 고발에 이른 신씨 표절 문제가 진흙탕싸움으로 번질까 우려하고 있다. 법리적 공방에 매몰돼 신씨 한 사람에 대한 낙인 또는 면죄부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인들은 검찰이 수사에 나설 게 아니라, 작가적 양심과 평론의 자정기능을 환기함으로써 문단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은수 문학평론가는 “표절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지만 표절 제기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다”며 “문학은 특히 패러디나 오마주처럼 다양한 기법이 활용되기 때문에 판단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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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사
“이제라도 문단 스스로 표절기준과 처벌규정 만들자”
전문가 10인이 말하는 문학 표절 원인과 근절 방안
등단부터 기성작가로 성장과정서 사적관계로 묶여 의혹에 눈감아
문학상과 작품연재-책출판 통한 대형출판사와 ‘밥벌이 동거’도 한몫
표절백서 제작 도덕성 제고 필요… 과도한 출판 상업주의도 반성해야
《 소설가 신경숙 씨(52)의 표절 논란이 확산되는 추세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지적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18일 신 씨를 검찰에 고발하자 문학계는 “문단 내부에서 해결할 일”이라며 고발 철회를 주장했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는 문단의 자정능력을 강조하며 23일 ‘표절사태와 한국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한다. 시인 이종섭 씨는 페이스북에 “작가회의를 탈퇴했다. 가망성이 없다”고 문단에 대한 실망을 밝히기도 했다.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동아일보는 19∼21일 문단과 출판계, 저작권 전문가 10명으로부터 문학작품 표절의 근본적 원인과 근절을 위한 제언을 들었다. 》
○ 문단 내 카르텔, 전무(全無)한 표절 기준이 근본 원인
전문가 10명 중 절반 이상이 국내 문학계에 표절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신인 작가로 등단해 기성 작가로 자리 잡는 과정의 폐쇄성을 꼽았다.
계간 ‘작가세계’ 편집위원 박철화 씨(50)는 “과거에 사과하고 인정했다면 이런 사달도 나지 않았을 텐데”라며 ‘문단의 닫힌 구조’를 이야기했다. 그는 1999년 작가세계 가을호에서 신 씨의 소설 ‘작별 인사’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을 표절했다며 처음으로 신 씨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출판사들이 철저하게 신 씨를 감싸면서 이런 의혹이 묻혔다는 게 박 씨의 주장이다.
실제 황석영 등 원로작가부터 유력 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 조경란까지 그동안 문단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표절 시비가 여러 차례 있었다(표 참조). 하지만 문단 내부에서만 시끄러웠을 뿐 작가가 부인하고 출판사가 보호해 금세 묻혔다. 출판인 A 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나 신춘문예 같은 좁은 관문을 뚫어야 하는 ‘문학 고시생’이 돼야 한다. 등단 후엔 선후배, 선생과 제자로 묶이면서 서로에 대한 비판이나 표절 의혹에 눈감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등단 후엔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문학 메이저 출판사의 계간지 등에 작품을 연재하고 책으로 묶어 출판해야 ‘밥벌이’가 가능하다. ‘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의 편집위원, 평론가가 ‘하사’하는 ‘주례사 비평’과 문학상도 필요하다. 소설가 B 씨는 “많은 작가들이 ‘신경숙은 가더라도 출판사 권력은 영원하다’며 출판사에 밉보이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문학평론가인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문학동네 편집위원 신형철 권희철 씨가 신 씨를 비판한 것에 대해 “대세에 밀린 사후약방문이다. 창비 이상으로 문학동네의 책임이 크다. 문학동네 지면을 통해 이뤄진 신경숙 소설에 대한 글과 대담, 리뷰는 상당 부분이 확대 해석, 문학적 애정 이상의 과도한 의미 부여였다”고 밝혔다.
표절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문학계 내에 존재하지 않는 점도 지적됐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김찬동 법제연구팀장은 “‘몇 개 단어, 문장이 겹치면 표절’이란 구체적 기준이 국내 저작권법 조항에는 없다”며 “저작권 침해 여부는 법원에서 원저작물을 봤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의거성’과 두 작품의 ‘실질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상황에 따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음악계와 학술계 등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표절 문제에 대처해 왔다. 음악계는 핵심 부분 두 소절(8마디)이 똑같을 경우, 학계는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거나 명제 또는 데이터가 유사한 경우 등을 표절로 인정한다는 기준이 마련돼 있다. C출판사 편집자는 “문학계는 작품 표절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문단도 표절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 “문인윤리조사위원회서 백서 만들자”
본보의 제언 요청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형 출판사의 지나친 이기주의 버리기 ▽문단의 도덕성 높이기 ▽표절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처벌규정 마련하기 ▽표절 문제에 대한 백서 제작하기 등을 제시했다.
박철화 작가세계 편집위원은 “신 씨의 잘못도 있지만 대형 출판사의 상업주의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의 표절 문제니까 용서해주겠단 생각은 문단의 낮은 도덕 수준을 보여준다”며 “정치인도 자기 표절로 낙마하는 시대에 문단만 사회의 양심 기준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연구윤리규정이 있는 학술계처럼 문학계도 법률가 등을 참여시켜 명확한 윤리강령과 처벌규정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가칭 문인윤리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지금까지의 표절 행위를 종합적으로 담은 백서를 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훈상 ·김윤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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