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판

(138)
도서관, 서점, 그리고 출판을 생각하다 도서관이 미디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내게 도서관은 사람들의 기억이 쌓이고 모여서 전달되는 공간이 아니라 책들의 시체가 층층이 쌓여 있거나 창백한 얼굴의 학생들이 시험 공부에 몰두하는 거대하고 차가운 건물일 뿐이었다. 불행히도 편집 일을 하기 전에는 도서관에서 사서와 책을 빌리고 반납하기 위해 주고받는 말 외에 다른 대화를 한 기억이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서점이 미디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역시 어렵다. 점원들과 책과 세계에 대한 한마디 대화도 하기 어려운 한국의 서점은 더욱더 그렇다. 한국의 서점은 대부분 책이라는 상품을 돈과 교환하는 물신의 장소일 뿐이다. 오로지 매출을 위한 이전투구가 있을 뿐, 서점을 통해 인류가 기억할 만한 문화를 같이 만들고 확산한다는 공유의 원리는 한여름밤..
자본은 어떻게 출판을 살해했는가?(번역) 전자책 시대로 접어든 이후, 사람들은 끊임없이 출판에 대해 질문해 왔다. 이제 서점은 작가들 또는 예비 작가들에게 출판사 없이 독자들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한다. 작가들은 자신이 쓴 작품을 정해진 플랫폼에 올리고, 메타 데이터를 입력한 후,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작품은 출판을 거절당하거나 수정을 요구받는 등의 치욕스럽고 귀찮은 일 없이 독자들이 늘 읽기를 기다리는 드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서점 역시 마찬가지이다. 출판사와 공급가와 관련한 협상을 벌이고 마케팅을 둘러싼 온갖 대립도 없이 작품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서점 영업자들은 이제 작품이 불러오는 초기 반응을 잘 살피다가 특정 작품에서 기회를 포착해 공격적 노출을 통해 매출을 극대화하..
『출판 천재 간키 하루오』를 읽고 책과 출판의 세계를 앞서 밟아 간 선배들의 회고를 읽는 것은 늘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책에 대한 책이나 출판에 대한 책이나 편집에 대한 책을 오랫동안 읽지 않으면 어쩐지 투지가 생기지 않고, 어느새 책 만드는 일이 시들해져 버리곤 한다.지난주 내내 『출판 천재 간키 하루오』(커뮤니케이션북스, 2011)를 읽어 오늘에야 끝마쳤다. 평소보다 독서 속도가 떨어진 것은 책이 지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치열한 출판 정신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고, 그래서 생각들이 군데군데 계속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출판을 꿈꾸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목록에 올려두고 싶다. 간키 하루오(神吉晴夫, 1901~1977)는 일본 출판계에 한 전설을 남긴 편집자로서 고분샤(光文社)의 대표를 역임했다. 일본 최대의 출판사인 고단샤(講談..
온라인서점에서 더 많은 책을 파는 방법 - 아마존닷컴 영업부장이 말하는 마케팅 비결 한국에서 온라인 서점은 출판사뿐만 아니라 저자와 독자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어 가고 있다. 책의 거대한 저장소이자 강력한 미디어인 오프라인 서점 자체가 축소되고 사라지는 현실을 늘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는 것에 늘 경계하고 있지만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청맹과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최근 전 세계 출판인들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는 책의 발견이다. 신문 서평과 광고, 교사를 포함한 전문가 추천 등에 의존해 책을 찾던 독자들이 온라인 환경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찾는 방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이런 변화는 출판사나 저자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요청하는데, 그렇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이 무엇일까?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의 저자 및 출판사 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다녀와서 지난주 세계 최대의 도서박람회인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 다녀왔다. 미국과 유럽을 덮친 재앙적 경기침체의 충격 속에서도 전시회장은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올해도 출판인들은 인간의 저주받을 탐욕과 디지털 문화의 반성 없는 확산 사이에서 흔들리는 지구의 미래를 위한 수많은 대안들을 쏟아냈고,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국들은 출판 관계자들을 대량으로 파견해 전시회장 전체를 누비면서 지식과 예술의 첨단 이슈를 확인하고 이를 자기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나 지속적 불황 탓인지 한국 출판계의 움직임은 크게 눈에 띄지 않은 편이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을 비롯해 몇몇 출판사가 부스를 열어 정열적으로 활약하고 저작권 상담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고, 인프라웨어 등 전자책 솔루션 업체들이 이곳에서 책의 새로운 전망을 구..
편집자로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출판 전문 잡지인 《기획회의》에 기고한 서평입니다. 글은 오래전에 써 두었고 투고한 지 며칠 된 글입니다. 한기호 소장님 블로그에 가 보니, 드디어 책으로 나왔기에 제 블로그에 공개합니다.저는 오래전에 여러 선후배들 앞에서 편집자로 정년퇴직하겠다고 서언한 바 있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그 말의 무게를 점점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정년이라는 개념은 요즈음 분위기에서 상당히 시대 착오적인 것이 되어 버렸으나, 책을 내는 일이 하나의 중요한 직업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면서 평생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무척이나 행복할 겁니다. 그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편집자라는 직업은 아직 그 직업적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한쪽에선 책에 관련된 모든 일을 기획하고..
밑줄과 반응 2012년 5월 31일(목) 고대 중국에서 민(民)이란 글자는 한쪽 눈을 찔러서 상해를 입힌 노예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지배층 인(人)과 피지배층 민(民)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인’이 사람이었다면 ‘민’은 사람도 아니었다. ― 『저항자들의 책』 누군가의 서평을 읽다가 인용문을 밑줄쳐 두었다. 여기까지 적어 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잊어버리는 바람에 출처를 상실했다. 아마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서평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보통선거와 의무교육이 실시된 이후, 그래서 모두가 한 표만큼의 정체성을 갖게 된 이후, 우리는 이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곤 한다. 역사는 민(民)이 인(人)으로 바뀌는 기나긴 진보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
밑줄과 반응 2012년 5월 29일 (화) 1 기술적 후진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미디어 비즈니스는 기술 비즈니스가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 비즈니스는 특히 기술적 변동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이른바 유서 깊은 출판사인 파버 앤드 파버(Faber & Faber)를 경영하고 있다. 우리 비즈니스는 대부분 저자로부터 저작권을 사들이고 독자들을 발견하며 저자들을 위한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창업한 이래 80년 동안 우리는 인쇄본(책)을 통해서만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책, 전자책, 온라인 학습(우리가 직접 구축한 강좌들), 「황무지」 애플리케이션 같은 디지털 출판, 그리고 웹을 통해서 그 일을 할 수 있다. 기술적 변동은 기회를 박탈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