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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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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과 서점의 진화 《기획회의》 450호(2017.10.20.)의 이슈는 “스타 점원의 시대”입니다. 이 이슈에 대해서 쓴 ‘여는 글’을 조금 보충해서 아래에 옮겨 둡니다. 《기획회의》에는 ‘오늘날의 서점은 경험을 판다’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큐레이션과 서점의 진화 “단단한 모든 것은 공중으로 사라진다.” 카를 마르크스의 말이다. 자본은 해방이다. 자본은 세상의 모든 것을 화폐로 환산함으로써 혈연이나 계급이나 신분이나 토지와 같은 낡은 봉건 질서의 가치를 완전히 분해해 버린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이 도무지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것까지 계산하려는 자본의 폐해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세상의 본질은 정지가 아니라 운동이고 변화이며, 변화를 반영하고 가속화하는 자본의 운동 앞에서 단단하고 고정된 것은 하나도 존재할 수 ..
‘질문의 엘리트’가 필요한 시대 《서울신문》에 쓴 칼럼입니다. 인공지능시대는 미래 인재의 모습을 급속히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질문의 엘리트’가 필요한 시대 “‘제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못 들어봤다. 영미권에서 쓰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어디 산속에서 살다 온 철없는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놀랍게도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세계는 평평하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등의 저서를 통해 ‘지구화 시대의 전도사’를 자부해 온 사람이다. 언어가 있는 곳에 인식이 있다. 우리가 ‘마법의 주문’에 홀려서 호들갑을 떠는 사이, 세계는 정보기술이 가져온 격변을 자기 시각에서 수용하고 소화하고 있다.‘제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면 실제로 세..
마케팅 4.0 시대의 출판 최근에 출간된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길벗, 2017)은 전통적 관점에서 시장을 대하던 사람들한테 엄청난 충격을 준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지점은 코틀러 자신을 마케팅 이론의 살아 있는 전설로 자리 잡아 준 상징 자산인 ‘시장 세분화와 목표 고객 설정, 브랜드 포지셔닝과 차별화’(STP), ‘제품, 장소, 가격, 프로모션’(4P)으로 이루어진 마케팅 믹스와 이에 기반을 둔 판매 전략의 유효성을 부인해 버렸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마케팅 전략은 고객 가치의 창출과 획득, 마케팅 믹스를 통한 고객 가치 전달을 중심에 두고 있다. 코틀러 자신이 정리한 이 전략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정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 마케터들의 교과서 역할을 해 왔던 『코틀러의 마케팅 원리』(제15판, 시그마프레스, 2015)에 ..
네티즌 수사대가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이유 제니퍼 자케의 『수치심의 힘』(책읽는수요일, 박아람 옮김, 2017)을 가볍게 훑어 읽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수치라는 감정이 어떻게 생겼으며,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간의 수치심을 어떻게 활용할까를 보여 주는 책이다. “언어가 생기자 우리는 더 이상 상대의 행동을 직접 보고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은 가십을 이용하여 사회적 지위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명성과 수치 제도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중략) 가십은 언어적인 수치 주기를 통해 당사자가 협동할 것을 기대하는 행동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26쪽)언어는 단지 소통 수단만은 아니다. 그것은 규율이 사회 속으로 퍼져나가는 통로이자 촉매이다. 사람들은 뒷담화를 통해서 사회 전체를 위해서 기여한 사람은 명예를 주고, 사회 전..
베스트셀러 1위 장기 독주, 슈퍼베스트셀러의 소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나의 책이 베스트셀러 1위를 장기적으로 독점하면서, 판매량을 누적해 결국 밀리언셀러에 오르는 현상(슈퍼 베스트셀러 현상)이 사라진 데 대한 출판계 지인들의 관심이 큰 것 같다. 《조선일보》 신동흔 기자의 「베스트셀러 1위 장기 독주가 사라진다」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의 「베스트셀러 1위 장기 집권 시대 끝났나」라는 기사가 연이어 나왔다. 이러한 ‘슈퍼 베스트셀러’의 갑작스러운 소멸은 출판산업과 관련한 잠재적 질문을 여러 가지 동반한다. 첫째,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나타난 이와 같은 현상은 특이한 현상인가, 아니면 정상적 과정인가.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특정 서적이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독점하는 현상이 ‘어떤 특이한 시기’를 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장기적으로 오를 수는 있..
‘복각본 시집’ ‘컬러링북’... ‘문구형 도서’의 시대가 열리다 《신동아》 2016년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복각본 시집’ 열풍에 대해 분석해 보았습니다. 이 시집의 성공을 주로 ‘책스타그램’ ‘소장 가치’ ‘복고 열풍’ ‘팬덤’ 등의 키워드로 이야기합니다. 일단 ‘팬덤’은 어불성설이니까 논외로 하고, 나머지 분석은 나름대로 좋은 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의 열풍을 ‘컬러링북 열풍’과 함께 ‘곁다리 책’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보았습니다. 책의 주류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항상 책 곁에서, 책과 나란히 발전해 온 책들(기프트북, 액티비티북 등)이 초연결사회를 맞이하여 산업적으로 전면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현상에 ‘문구형 도서 시대’의 개막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이쪽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꾸준히 늘어..
[2015년 출판 트렌드] 책에서 길을 묻다 _ 독(獨), 전(錢), 협(協), 리(理), 의(意) (시사인) 트렌드란 무엇인가? 과거가 기록한 미래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흐름이고 연속이어서 돌이킬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록은 오직 미래의 임무다. 과거는 기록할 수 없다. 기억할 만한 미래는 흔히 파괴이고 단절이며 전환의 형태를 취한다. 과거를 들여다보아도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이유다. 미래는 미리 오지 않고 나중에 도래한다.창조자나 혁신가는 트렌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이 미래를 발명하기 위해 맞서 싸워야 할 힘들에 주목하고, 힘들이 하나의 장(場)을 이루는 현실을 분석한다. 문제를 도출하고 해결책을 깊게 고민한다.출판은 고객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솔루션 비즈니스의 일부다. 어떤 특정한 문제에 부닥쳤을 때, 사람들은 검색하거나 대화하는 대신 책을 읽는다. 올..
출판의 위기란 무엇인가 _ 네 가지 새로운 출판 모델에 주목하면서 * 이 글은 얼마 전 출판콘텐츠마케팅연구회 공개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여기에 옮겨둡니다. 출판의 위기란 무엇인가?출판이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출판의 위기란 무엇인가? 출판의 위기는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은 항상 현재형으로 쓰였다. 책은 소수 미디어에 속하기에 항상 잘 팔리지 않았다. 그 내재적 가치에 비해 만족할 만큼 팔린 적은 드물다. 때때로 밀러언셀러가 나오고 출판이 활황을 보이기도 했지만 주로 외부 요인에 따르는 우연의 결과였을 뿐이다. 출판은 항상 배가 고팠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마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이는 책의 가치와 판매 사이의 긴장이 출판의 영원한 숙제임을 보여준다. 다시 강조해 두자. 출판의 위기는 책이 팔리지 않는 게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