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자케의 『수치심의 힘』(책읽는수요일, 박아람 옮김, 2017)을 가볍게 훑어 읽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수치라는 감정이 어떻게 생겼으며,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간의 수치심을 어떻게 활용할까를 보여 주는 책이다.
“언어가 생기자 우리는 더 이상 상대의 행동을 직접 보고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은 가십을 이용하여 사회적 지위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명성과 수치 제도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중략) 가십은 언어적인 수치 주기를 통해 당사자가 협동할 것을 기대하는 행동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26쪽)
언어는 단지 소통 수단만은 아니다. 그것은 규율이 사회 속으로 퍼져나가는 통로이자 촉매이다. 사람들은 뒷담화를 통해서 사회 전체를 위해서 기여한 사람은 명예를 주고,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친 사람은 수치를 줌으로써, 당사자의 행동을 공동체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만든다. 인류는 명예의 부여나 수치 주기(shaming)를 통해서 진화해 온 셈이다.
이 책은 각종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업이나 개인의 수치심을 활용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사회 문제 해결의 정답은 아니지만, 하나의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어느 병원 매점의 식품 일부에 ‘건강에 좋지 않은’이라는 라벨을 붙이자 그보다 건강에 좋은 식품의 판매가 6퍼센트 증가했다. 핀란드 정부는 1993년부터 염분 함량이 높은 식품에 라벨을 붙이도록 요구했고, 그 결과 전체 소금 소비가 크게 줄었다.”(158쪽)
특히, 오늘날과 같은 초연결사회에서는 수치 주기는 약자가 강자한테 저항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강자의 몰염치한 행위를 인터넷 등에 폭로함으로써, 그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확산하고 강자의 행동을 교정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수치 주기는 미디어를 장악하고 위협하여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자들을 향해서, 약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으로 권력의 허위가 폭로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는가.
“유명 요리사 폴라 딘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인해 푸드 네트워크와 월마트, 랜덤하우스와의 계약이 취소되었다. 패션 브랜드 크리스천 디올은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반유대주의 발언을 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그를 해고했다.”(238쪽)
물론 이 과정은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가짜 뉴스가 퍼져 나가는 등 부작용도 심각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위협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밀란 쿤데라의 다음과 같은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타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이 관습이자 일상이 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개인이란 존재가 살아남을 것인가 사라질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된 초연결사회에서 수치 주기는 사회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이 틀림없다. 이 책의 저자는 수치 주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7가지 전략을 제시하기도 한다. 참고할 만하다. 아래의 문장이 이 책의 주장을 요약한다.
“수치는 단순히 감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수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구(미묘하며 때로는 위험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수치 주기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비폭력적인 저항 방식으로, 죄책감과 달리 집단의 행동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치는 규모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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