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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만드는 일

마케팅 4.0 시대의 출판




최근에 출간된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길벗, 2017)은 전통적 관점에서 시장을 대하던 사람들한테 엄청난 충격을 준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지점은 코틀러 자신을 마케팅 이론의 살아 있는 전설로 자리 잡아 준 상징 자산인 ‘시장 세분화와 목표 고객 설정, 브랜드 포지셔닝과 차별화’(STP), ‘제품, 장소, 가격, 프로모션’(4P)으로 이루어진 마케팅 믹스와 이에 기반을 둔 판매 전략의 유효성을 부인해 버렸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마케팅 전략은 고객 가치의 창출과 획득, 마케팅 믹스를 통한 고객 가치 전달을 중심에 두고 있다. 코틀러 자신이 정리한 이 전략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정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 마케터들의 교과서 역할을 해 왔던 『코틀러의 마케팅 원리』(제15판, 시그마프레스, 2015)에 정리되어 담겨 있다. 국내의 모든 마케팅 관련 이론 역시 이 책의 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작년에 나온 유재건의 『출판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엑스북스, 2016)도 이 틀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당연히 이론은 현실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변화된 현실에 맞추어, 자기 노래를 고쳐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앞으로도 코틀러가 마케팅 이론의 대가로 남는다면, 아마도 현실에 발맞추어 자기 이론을 스스로 극복하려 하는 ‘과감한 유연성’ 덕분일 것이다. 코틀러로 하여금, 과거의 자신을 부인하도록 만든 것은 ‘연결성’이다. 코틀러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필립 코틀러의 마켓 4.0』, 21쪽)

인터넷이 없었을 때, 우리는 지리적으로 또는 인구학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정보의 근본적 비대칭 탓에 국가와 기업 등 미디어를 장악한/구매한 이들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쏟아져 나온 수많은 제품들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에게 제품 사용 후기를 전하면서 조언해 건네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만인과 만인이 연결된 초연결사회는 이 모든 전제를 먼 옛날 일로 돌려놓는다.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과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우리는 기업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기업이 우리 목소리에 직접 귀 기울이고 서로 대화하면서 우리 자신한테 딱 맞는 제품을 만들어 주기를 원한다. 이제 우리한테는 특정 브랜드나 제품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친구가 참 많다. 손바닥 위의 컴퓨터를 통해 우리는 언제든, 어디에서든, 검색하고 대화하고 참여하면서 특정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해 간다. 코틀러는 말한다.


마케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연결성이다. 현재로서는 이미 새로운 유행어라 할 수 없지만, 마케팅의 많은 측면을 변화시켜 왔고 이런 변화 속도가 둔화될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연결성은 고객, 제품, 브랜드 관리에 대해서 그간 배워 온 많은 주류 이론과 주요 전제들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42~43쪽)


‘연결성에 기반을 둔 마케팅’을 코틀러는 ‘마케팅 4.0’이라고 부른다. 연결성은 제품 위주의 마케팅(마케팅 1.0),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마케팅 2.0), 인간 중심의 마케팅(마케팅 3.0)을 넘어서는 마케팅의 근본적 전환을 촉구한 것이다. 제품의 개발에서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고객 참여를 ‘뉴노멀(new-normal)’로 하는 마케팅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연결사회에서는 빠르든, 느리든 출판 역시 근본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연결된 세계’는 “마케팅의 핵심 기반인 시장 자체를 변화”(47쪽)시키기 때문이다. 세스 고딘에 따르면, 출판은 서점 판매 공간과 언론 홍보 루트를 장악함으로써 이를 진입 장벽 삼아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다. 물론 다른 모든 산업과 마찬가지로, 기획이나 편집이나 디자인 등 내부의 제품 개발 역량 역시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인터넷 등장 이후 출판 정보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책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게임의 모든 규칙이 바뀌었다. 인터넷을 통해 필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됨에 따라 책의 생산은 갈수록 용이해진다. 저자가 직접 출판사가 될 수도 있는 전자책의 등장은 책의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이에 따라서 책의 존재 자체를 독자에게 알리는 발견성이 출판의 주요 문제로 부각된다. 

과거에는 구간을 적절히 퇴출하고 신간에 판매 공간을 할당함으로써 독자들 관심을 신간으로 돌렸지만, 온라인 서점이 등장해서 책의 판매 공간이 무한으로 확장되면서 이 공간을 둘러싼 출판사의 특권을 박탈한다. 이 과정에서 책의 전체적 발견성은 증가하지만, 개별적 발견성은 한없이 약화된다. 

오늘날 이와 관련해서 출판사의 특권이 작동하는 판매 공간은 물리적 서점의 주요 판매대와 인터넷 서점의 첫 화면 정도다. 영업 외 이익을 손쉽게 확보하려는 서점의 이해와 어떤 식으로든 진입 장벽을 설정하려는 출판사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이 공간은 실질적 판매 효과와 관계없이 갈수록 광고비 등을 지불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식으로 특권화한다. 그리고 책의 개별적 발견성이 ‘저절로’ 확보되지 못함에 따라, 책의 존재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데 필요한 활동이 출판사에 끝없이 추가된다. 

한편, 독자의 정보 접근 수단이 다양화되면서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기존 미디어의 소구력은 갈수록 떨어진다. 하나의 책과 관련된 적절한 기사는 책의 발견성을 분명히 증가시킨다. 그러나 책의 발견 자체가 곧바로 판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독자는 어떤 책에 호감을 느낀 후에도, 자신과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그 가치를 탐색하면서 확인 과정에 나선다. 따라서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한 지지와 확산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론 기사 자체만으로는 책의 판매에 필요할 만큼 충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출판을 둘러싼 과정이 책의 판매에서 종결되는 것도 아니다. 독자들은 책을 구매한 후에도 오히려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그들은 책을 리뷰하고 평가하면서 친절한 옹호와 가혹한 비판을 남긴다. 그리고 이 과정 전체가 하나로 묶인 채 되먹임 되면서 출판 마케팅을 혼란과 위기에 빠뜨린다. 이중호는 이러한 흐름을 읽고 「네트워크시대, 책의 발견과 출판의 진화」에서 독자가 출판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가 왔다고 과감하게 선언한다. 


최근 뉴욕 BEA에서 열린 2015 IDPF 디지털북 컨퍼런스에서 연사로 나선 마이클 바스카는 ‘편집자나 출판사는 점점 자신의 콘텐츠를 세상에 노출시키고 사람들 관심을 끌게 하는 능력을 잃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 힘은 이제 독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소비자가 출판을 주도하는 시대라고 하면 출판계 반응은 다소 냉소적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 다양한 소셜미디어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소비자 파워가 강력해졌다. 중간 매개자가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살지 미리 걸러 내는 일 따위는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소비자는 책을 구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출판, 즉 콘텐츠 기획과 편집조차도 직접 참여하고 수시로 저자에게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심지어 출간 비용까지 투자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출판이슈》(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5년 11월호, 46쪽.) 

 

이처럼 게임의 규칙이 바뀜에 따라 연결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기존의 출판 마케팅은 ‘책의 발견성’을 충분히 만들지 못한다.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에 나오는 여러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초연결사회는 저자와 독자 사이의 연결 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떨어뜨려 둘의 ‘직접’ 연결을 극단적으로 촉진한다. 이론적으로 모든 저자는 이제 적절한 온라인 활동을 통해 독자를 주변에 모을 수 있으며, 원고의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독자와 함께할 수 있다. ‘지대넓얕’의 채사장이나 ‘오가닉미디어’의 윤지영이 잘 실천했듯이, 연결된 네트워크를 활용해 독자를 먼저 확보하고 나중에 책으로 출판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저자가 스스로 발견성을 확보하고 나면, 출판사의 힘은 편집이나 디자인 등으로 제한되어 약해지기 쉽다. 우리는 채사장과 윤지영 두 사람 모두 전통 출판사와 협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출판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발견성을 만드는 전통적 마케팅 활동의 힘이 제한되면서, 책의 마케팅과 판매에서 저자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는 중이다. 책 출판을 전후로, 저자 강의, 강연, 사인회, 낭독회, 독자 만남 등 저자의 외부 활동이 늘었으며, 특히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 저자의 소셜 네트워크 활동에 홍보를 의존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저자의 소셜 파워’에 편승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각종 미디어나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소셜 인플루엔서’를 저자로 확보하는 경쟁이 출판사들 사이에서 치열해지는 중이다. 가령, 2016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20위까지만 보아도,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수오서재),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세계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한빛비즈), 『나에게 고맙다』(허밍버드),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휴먼큐브), 『너에게 하고 싶은 말』(쌤앤파커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아이』(코리아닷컴) 등 소셜 인플루엔서가 낸 책이 8종에 이른다. 여기에 드라마 「도깨비」 관련 서적이나 영화 「너의 이름은」 등 대중매체에 노출된 서적이 서적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이른바 ‘미디어셀러 현상’이 전면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생각하면, 출판 마케팅의 지형도를 확실하게 다시 그리지 못할 때, 책의 가치사슬에서 출판사의 존재감을 표시할 수 없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초연결사회에서는 책의 마케팅과 판매를 둘러싼 저자와 독자의 힘이 각각 증가한다.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면, 미래의 출판사는 저자와 독자의 연결을 새로운 방식으로 관리하는 특별한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출판의 가치사슬을 살펴보면, 책의 원료를 생산하는 저자는 출판사가 관리하고 책의 소비자인 독자는 서점이 관리하는 식으로 제휴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저자들이 서점 및 독자와 직접 연결되는 길이 열리면서, 그에 따라 책의 마케팅 및 판매에서 저자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출판사의 저자 관리 시스템을 혁신함으로써 저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누적되는 중이다.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와 직접 연결되면서 출판사를 향해서 더 많은 참여 기회와 유형무형의 혜택을 요청하는 중이다. 더 아름답고 더 단단하고 더 가격을 낮춘 책을, 굿즈에서 모임에 이르는 더 많은 서비스와 함께 제공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방향의 압력은 출판사의 혁신적 진화를 점차 촉구한다. 

이 과정에서 서점과 긴밀한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물리적 서점 네트워크를 통해 책을 판매하는 것과 현재 시장을 장악하는 예스 24 같은 온라인 서점 네트워크를 통해 책을 판매하는 것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책의 미래 연구소’ 소장인 보브 스테인은 말한다.


아마존을 통해 책을 파는 일에는 작지만 치명적인 세 가지 약점이 있다. 첫째, 아마존에서 구입한 콘텐츠는 아마존의 하드웨어 그리고/또는 소프트웨어에 결박된다. 아마존으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거기서 나갈 수는 없다. 둘째, 출판사는 삼류 시민처럼 취급된다. 아마존은 출판사 브랜드를 가리고, 그들이 사용자와 직접 접촉하는 것을 방해하며, 책 가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셋째, 아마존은 출판 네트워크의 힘이 자본화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아마존은 출판 연대 프로그램의 힘을 약화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아마존의 제3자 판매 대리인이 되도록 동기를 불어넣는 끔찍한 일을 수행하도록 만들어 간다. 아마존은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따라서 출판사는 온라인 서점과는 협업의 한계를 일정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발견 문제를 서점이나 언론에 주로 의존하고, 출판사는 콘텐츠 개발에만 집중하는 기존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출판사는 저자와 독자의 가치를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증진시키는 새로운 길을 꾸준히 모색할 수밖에 없다. 서점이나 도서관은 저자나 책을 독자와 연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회를 창출해 왔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러한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가 특정한 신간을 위해 그 기회를 이용하는 비용은 서점의 경우는 서서히 커지고, 도서관의 경우는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초연결사회에서 스스로 연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즉 연결을 충분히 생성하지 못하는 고립된 개체는 서서히 약해진다. 따라서 모든 저자나 출판사는 독자들과 어떤 식으로든 ‘직접’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저자와 독자와 출판사가 항상 연결되어 있다면, 출판은 발견 문제를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순하게 독자들의 감동을 저절로 유발하는 ‘와우’ 콘텐츠를 생산하겠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독자들과 함께, 와우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코틀러는 말한다. 


‘와우’의 순간은, 그 성격상 우연히 생기는 것 같다. 그런데 기업과 브랜드가 의도적으로 그런 순간을 만들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다. 위대한 제품과 위대한 서비스가 일상화되는 오늘날, ‘와우’ 요소는 우리 브랜드를 경쟁사와 차별화해 준다. 기업은 ‘와우’의 순간을 그저 운에 맡겨서는 안 된다. 전략을 세우고, 인프라와 과정을 구축하고, 고객이 5A 전반에 걸쳐 ‘와우’의 순간을 경험하고 전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276쪽) 


출판사가 독자와 직접 연결되어 감동을 공유하는 실험은 지속적으로 확산되어 왔다. 오늘날 독자 개발과 독자 구축을 자신의 임무로 하지 않는 출판사는 거의 없다. 방향과 방법에서 길을 잃는 경우가 아직 많을 뿐이다. 그러나 초연결사회에서 점차 마케팅 활동이 늘어나는 중인 저자의 불만을 해소하고,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출판사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지금까지 논의해 왔지만, 책을 잘 만들어 주고, 서점에 적절히 진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서점이나 도서관 등 연계해 행사 등을 기획해 저자의 활동을 주선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출판은 자주 책을 출판하는 만큼, 이러한 활동의 증가는 마케팅 리소스의 무한 증가를 가져올 뿐이다. 따라서 저자의 가치를 증진하는 동시에 마케팅 리소스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의 추구가 절실하다.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하는 ‘마케팅 자동화’가 이 문제를 상당히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박주훈과 황준식이 같이 쓴 『된다! 마케팅 자동화』(이지스퍼블리싱, 2017)을 참고해 보면 좋겠다.

그런데 저자와 독자를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한 방법으로, 최근에 전 세계 출판계에서 꾸준히 주목받는 것이 ‘저자 플랫폼’이다. 저자 일정을 대리해서 관리하거나, 각종 부가 판권 계약 등을 대행하는 일종의 전면적 관리 시스템을 운영함으로써 저자 콘텐츠 가치를 극대화하는 에이전시 모델도 하나의 좋은 예에 해당한다. 하나의 콘텐츠를 개발해서 여러 미디어에서 동시에 사업을 구사하는 트랜스미디어 모델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면 출판사와 작가의 전적인 신뢰를 기반에 두고 전작 계약을 맺는 등 현재와 다른 출판 관행이 생겨날 가능성도 높다.

발레리 피터슨에 따르면, 저자 플랫폼은 “어떤 책의 저자와 독자와 연결하려고 구축한 미디어 포럼”[각주:1]으로 정의된다. 이 플랫폼을 활용하여 저자는 꾸준히 콘텐츠를 발신하여 잠재 독자들을 모으고, 책을 소개하고 홍보함으로써 판매 모멘텀을 창출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출판 기획자인 제인 프리드먼은 저자 플랫폼을 “당신이 누구인지에 따라, 또는 당신이 도달할 수 있는 독자들 때문에 책을 팔 수 있는 능력”[각주:2]으로 정의한다. 이는 저자 플랫폼이 저자 브랜드를 구축하는 활동이면서 충성도 높은 독자를 확보하는 과정임을 암시한다. 보통은 저자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출판사 쪽에서 저자가 활용할 수 있는 각종 템플릿이나 관리 편의 등을 제공하고, 편집자나 마케터와 협업하여 진화시키는 방식을 쓰는 경우도 많다. 

저자 플랫폼의 종류로는 블로그, 뉴스레터, 라디오 쇼, 팟캐스트, 웹사이트 연재, 소셜미디어, 텔레비전 쇼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유튜브처럼 MCN을 활용하는 비디오 플랫폼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이중에서 어떤 형태라도 저자에게 팬덤을 가져다주기에 적합한 활동이면 상관없다. 소설가나 시인 같은 문학작가의 경우, 소셜 활동보다 작품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편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평소에 독자와 자주 소통하는 경우가 마케팅 활동 초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논픽션이나 실용서 작가의 경우에는 저자 플랫폼 구축은 거의 필수적으로 여겨진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비슷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들이 넘치므로, 독자와 잘 연결되어 책에 날개를 달아주는 저자가 유리한 편에 속한다.

제인 프리드먼의 말처럼, 저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그 자체가 마케팅이나 홍보 활동인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각종 미디어를 활용해서 저자의 경력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 그것은 폭발적 조회 수를 기록하는 게시물을 통해 독자를 모으는 단기 과정이 아니라 저자의 일상적, 반복적 활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모아 가는 장기 과정에 속한다. 본래 유명했던 저자라면 몰라도, 어떤 사람도 하룻밤 사이에 저자 플랫폼을 구축할 수는 없다. 플랫폼은 저자와 독자와 출판사의 관계의 깊이를 통해서만 구축되기 때문이다.

저자 플랫폼을 구축하려 할 때 출판사를 괴롭히는 일 중 하나는 저자 플랫폼의 구축에 필요한 표준화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오가닉 마케팅인가?」에서 윤지영이 이야기한 것처럼, 초연결사회에서 마케팅은 제품의 기획이나 개발과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유기적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가닉 미디어 세상에서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활동이 그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하다. 제품을 고객과 분리되지 않는 유기체로 만들기 때문이며, 이 네트워크는 고객의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네트워크가 곧 제품이다. 이 관점에서 마케팅은 제품의 가치를 기업이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체험을 통해 직접 매개하도록 도와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케팅은 기획·개발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기획·개발과 분리되지 않는 유기적 활동이다. 결국 어떻게 모두를 매개자로 만들 것인가가 마케팅의 고민이 돼야 한다면 기획·개발 과정이 곧 마케팅이며 마케팅이 곧 기획·개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각주:3] 


저자 플랫폼의 구축은 유기적 과정이며, 아마도 출판사 또는 저자마다 다른 경로를 밟을 것이다. 저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은, 원고를 기획하고 선별하여 편집한 후 세상에 내보내서 독자를 만나는 일 자체와 비슷한 일이다. 이미 초연결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미래의 출판사는 저자 플랫폼을 통해서만 저자와 독자를 이상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출판사는 저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에 편집 또는 마케팅 행위 자체만큼이나 많은 창조성을 투여할 필요가 있다. 그 일은 독자 흥미를 끌 만한 게시물을 일주일에 몇 번 블로그나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는 것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은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 힘든 지난한 여정으로, 창조성과 상상력이 필요한 일련의 실천을 단계별로 연속해서 반복해야 하는,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일이다.

미래의 출판사는 한 저자의 잠재 독자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며 유지하는 데 미디어나 서점의 도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저자와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을 통해, 즉 저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을 도움으로써 저자와 독자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일을 통해 저자의 매력을 세상에 알리고, 독자를 저자 주변에 붙들어 둔다. ‘책의 미래 연구소’ 소장 보브 스테인은 말했다. “미래의 성공적인 출판사는 저자와 독자 주변에 커뮤니티를 창조하는 출판사가 될 것이다.”



  1. 「저자 플랫폼이란 무엇인가(What Is An Author Platform?)」, 2016년 7월 24일 업데이트. https://www.thebalance.com/what-is-an-author-platform-2800074 [본문으로]
  2. 제인 프리드먼(Jane Friedman), 「저자 플랫폼의 정의(A Definition of Author Platform)」, 2016년 7월 25일 업데이트. https://janefriedman.com/author-platform-definition/ [본문으로]
  3. 윤지영, 「왜 오가닉 마케팅인가?」, 『오가닉 마케팅』(오가닉미디어랩스, 2017). https://organicmedia2.pressbooks.com/front-matter/why-organic-marketing/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