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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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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과 관련한 창비의 대응에 대한 단상 "단 하나의 사안을 공백으로 남기기 위해, 영원히 토론하는 100인 동색의 지식인 집단."이번 가을호 창비와 백낙청 선생의 페이스북 글과 관련한 논란에서 황호덕 선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따로 또 이와 관련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창비에서 자신의 주장을 빌미삼을 때 타인의 의도를 짐작해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우리는 너희와 달리 타인의 의도(양심)를 들여다볼 수 있다. 대충 이런 입장인데, 이는 전형적인 관심법(觀心法)이죠. 누군가를 옹호하기 위해 그 마음을 들여다본 이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도 그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들의 글에 깔린 사악한 의도를 알고 있다. 가령, 이렇게 말이죠.사실 윤지관 선생의 글은 표절이 있는 작품도 훌..
[TV 책을 보다] 휴가지에서 읽을 책 Best 10에 출연하다(사전 질문지 공개) KBS 텔레비전 ‘TV, 책을 보다’ 여름휴가 특집 1, 2에 출연했습니다. 후배인 강유정, 허희 두 평론가와 개그맨 고영환, 시사평론가 정영진 두 분과 함께 두 주 동안 엄청 즐겁게 녹화했습니다. ‘프로들은 역시 다르네!’ 하는 기분이 들었죠. 김솔희 아나운서가 이끄는 대로 이리 몰리고 저리 옮기다 보니 어느새 한 번에 다섯 권씩 책 열 권을 2시간 만에 모두 이야기해 버렸습니다. 흥미롭고 재미났습니다. 조금은 얼이 빠져서 나중에 방송을 보니 저런 말도 해 버렸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역시 글의 인간인지라, 사전 질문지와는 달리 녹화 중에는 아직도 분위기 타고 엉뚱하게 끌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에 목록 열 권과 함께 제가 사전 질문지에 답했던 기록을 남겨둡니다. 수전 손택, 『사진에 관..
문학권력 문제에 대하여 《문화일보》와 《동아일보》에 제 이름이 실린 기사가 나왔습니다. 문학권력 문제는 그다지 다루고 싶은 주제는 아닙니다. 비평 자본과 출판 자본이 한몸으로 결합되어 상생하는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말 한마디 보탠다고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창비든, 문학동네든, 문학과지성사든 좋은 작품을 발굴해 세상에 알리고, 이를 훌륭한 비평으로 떠받쳐 왔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모두 사기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문학에 지금까지 헌신해 온 세 출판사의 선의를 결코 의심하지 않지만, 결국 이 출판사들도 이익을 내고 손해를 줄여 파산을 면해야 하고 해마다 직원들의 복리를 향상해야 하는 기업입니다. 무슨 문학 협동조합도, 사회적 기업도 아니고, 기업의 그러한 기본 기능을 무겁게 떠맡은 회사들입니다. 문학 권력 문제를 논..
신경숙 표절논란… 의혹 제기와 해명의 윤리(세계일보) 어제 올린 표절 관련 글에 대해 《세계일보》 조용호 선배가 인용해서 기사를 썼다. 아래에 옮겨 둔다. 신경숙 표절논란… 의혹 제기와 해명의 윤리작가 영혼에 상처… 문제 제기 신중 필요…기준 정해 시비 가리되 여론재판 안되야 일본 네티즌들이 자기네 나라 우익 작가의 문장을 한국 인기 작가가 표절했다는 소식에 시끌벅적한 모양이다. 소설가 신경숙(사진)이 자신의 단편 ‘전설’의 내용 중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한 대목을 차용했다는 소설가 이응준의 문제 제기에 이미 한국에서는 작가 본인의 해명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도 사안은 가라앉지 않는 형국이다. 출판사 창비에서는 작가의 대답을 빌려 대단히 우익적인 색채의 일본 작가 작품과 신경숙의 그것은 판이하게 다르며, 인용 문장들조차 신경숙이 더 우월하다고 밝..
편집자를 위한 표절 판단법 신경숙의 표절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하지만 편집자로서 나는 표절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지만, 표절 제기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으며, 물론 표절 해명의 윤리와 비윤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표절이란 한 작가의 영혼을 예리한 칼로 긋는 행위이고, 단지 의혹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깊게 베이는 경우도 많으므로, 문제제기 자체에서 극도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표절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여부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고, 극히 까다로운 고민을 거쳐야 한다. 물론 문제된 사안이야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하지만 같이 논의되는 편혜영 등의 경우에는 언론에 문제로 제출된 작품만 보자면 솔직히 말해서 여론재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거칠게 말하자면,(이건 정말로 거..
[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제주에서, 제주 책 읽으며… 앎과 삶이 하나 됐죠” (제주 남원북클럽) 책을 혼자 읽는 것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읽는 것은 다르다. 혼자 읽기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거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함께 읽기는 삶에 우애를 불러오고 공동의 추구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책을 함께 읽는 것은 결국 삶을 같이하는 일이다. 책으로 자신을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는 아름다운 혁명이다. 함께 읽기로 생각하는 시민을 만들어가는 전국의 독서공동체들을 시리즈 ‘책, 공동체를 꿈꾸다’에서 격주로 소개한다. 책읽기 문화와 독서공동체 확산을 위한 한국일보와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공동 캠페인의 일환이다. “제주에서, 제주 책 읽으며… 앎과 삶이 하나 됐죠”[책, 공동체를 꿈꾸다] (1) 제주 남원북클럽 국토 최남단의 독서공동체, 새 삶 꿈꾼 뭍사람들이 시작같이 책 읽고 삼삼..
표(表), 보(保), 경(輕), 탐(探), 참(參) ―‘예스24, 2015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 및 도서판매 동향 발표’로 본 독서 트렌드 표(表), 보(保), 경(輕), 탐(探), 참(參)‘예스24, 2015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 및 도서판매 동향 발표’로 본 독서 트렌드 올해 상반기 예스24 판매 순위가 어제 발표되었다. 단순한 베스트셀러 트렌드 분석은 편집자로서 별 시사점을 얻을 수 없기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편집자는 ‘미래의 문헌학자’로 살아야 한다. 그는 미리 예측하는 자이지 뒤늦게 쫓아가는 자가 아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외에는 독자들의 밑바닥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별다른 계기가 없기도 하므로 여기에 리스트를 본 소감을 간략히 적어둔다. 사실 이 글은 KBS ‘TV 책을 보다’ 자문회의 때 발표했던 것을 짧게 정리한 것이다.베스트셀러를 흔히 ‘용기’ ‘불안’과 같은 독자 심리학으로 분석하지만, 나..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또 읽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 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213쪽) 저녁에 노원인생학교 강의를 앞두고 어제 하루 종일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다시 읽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 찢어지는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