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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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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적 시선에서 벗어나 다르게 살아보라” “나는 거의 팔십 년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 짧은 글을 쓴다.”존 버거 자신의 말 그대로,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7)에 담긴 글들은 아주 짧다. 정신의 높이와 넓이는 여전히 충분하지만, 육체가 오랜 긴장을 더 이상 축적하지 못하는 말년의 글이다. 존 버거의 글들은 소박한 언어로 자유를 향한 정치적 격렬함을 표출하고, 간결한 어조로 땅에 일구며 살아온 인류의 지혜를 온축할 줄 알았다. 그 경지가 한층 깊어진 것일까. 이 에세이들은 행들과 밑줄이 나란한 기적을 연출한다. 어쩌면 지난 1월 2일, 사망 소식을 접한 후이고, 이 책이 마지막 에세이집으로, 더 이상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안타..
촛불 이후의 사회를 꿈꾸기 위한 책 -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촛불 이후의 사회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책을 한 권 추천하고, 그 이유를 짧게 달아 본 것이다. 마이클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2012) 자율. 자기 행동의 서사를 스스로 창조하고 실천하다. ‘촛불’과 함께 민주주의가 우리 스스로에게 명령되었다. 자율적 주체인 시민을 통치의 대상인 신민으로 여기는 어떠한 정치사회 시스템도 굳센 연대를 통해 곧바로 무력화할 것임을 우리는 선포했다. 아고라에서 자율적으로 평화를 이룩한 성숙한 시민의식에 바탕을 두고, 대의제 선거에만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공화(共和)의 원리를 국가와 사회 전반에서 시험할 때다. 지나치게 국가에 정향되고 과도하게 자본에 예속된 사회를 바로잡고, 벌어진 격차를 넘어서 대동(大..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1] 오당지소자(吾黨之小子), 광간(狂簡) _우리 고을 젊은이들은 뜻은 크지만 5-22 공자가 진나라에 있을 때 말했다. “돌아가야겠구나! 돌아가야겠구나! 내 고향 젊은이들은 뜻은 크디크고 문장은 빛나지만 이를 마름질할 줄 모르는구나.” 子在陳, 曰, 歸與! 歸與! 吾黨之小子, 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거대한 물길을 앞두고 이렇게 말한 후, 공자가 고향 노나라로 돌아가 젊은이들을 가르치려는 결심을 한다. 그로부터 ‘스승과 제자의 탄생’이라는 공자의 진짜 혁명이 시작된다. 공자는 세상에서 정치를 통해 직접 뜻을 펴려 했으나 오랫동안 부질없이 천하를 떠돌았을 뿐이다. ‘상갓집 개’라는 비웃음을 들을 정도로 적절한 시대를 만나지 못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공자는 떠돌아다닌 지 열네 해 만에 진나라에서 마침내 더 이상 정치로는 뜻을 펴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때마침 노나라에서도 ..
[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9> 군사독재 어둠을 깨며 함께 읽기 35년 (시흥 상록독서회) “저도 형님들한테 듣기만 했습니다. 첫 인연은 1978년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독서회가 출발한 것은 1981년부터죠. 지금은 영등포 평생학습관에서 만나지만, 그전에는 구로도서관에서 스무 해 동안 함께했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시흥의 헌책방 ‘씨앗글방’ 뒤쪽의 골방에서 같이 읽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씨앗독서회였습니다.”기억의 샛길을 더듬느라 정화양 씨의 목소리가 아련하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수줍고 쑥스럽게 입술이 세월을 탄다. 상록독서회는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의 독서공동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 1970년대 말 시흥의 달동네에서 열린 한 야학에 다녔던 청년들이 모여서 시작했다. 요즘처럼 배움이 흔하지 않을 때, 야학은 집안사정 탓에 배움을 얻거나 계속하지 못한 이들이 어울려 배우던 시민 자..
[오래된 독서공동체를 찾아서] <6> "9년 전 세 친구의 책 선물 나눔… 이젠 커다란 독서모임 됐죠"(보령 책 익는 마을)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이 닌이 말했다. “친구들은 각각 우리 내면에 있는 하나의 세계를 대변한다. 그들이 우리 삶에 도달할 때까지는 태어날 수 없었던 세계들 말이다. 그러므로 오직 만남을 통해서만 새로운 세계가 태어난다.” 과연 친구란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 홀로에서 둘이 되는 순간, 두 사람을 둘러싼 세상은 근본적으로 변혁된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이 불현듯 도래한다.세 사람이 있었다. 시쳇말로 ‘절친’이었다. 그중 하나가 책을 읽다 친구들한테 선물하고 싶어졌다. 배기찬의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위즈덤하우스)였다. 친구들로서는 어른이 되어서 거의 처음 받는 책 선물이었다. 성의가 고마워서, 각자 읽고 나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한 달이 금세 지나갔다. 약속했기에 모두 ..
「TV 책을 보다」 호세 무히카 편에 출연하다 “정치의 목적지는 인간이며, 인간의 기본적 요구를 해결하는 것이 세상 모든 통치자들의 목표여야 한다.” 전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의 말입니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지난주 월요일 KBS의 「TV 책을 보다」에 출연했습니다. "좋은 정치는 정책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창조한다." 제가 방송에서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시하지 않는 정치에 신물이 납니다.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의 인생을 다룬 책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는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나의 목표는 우루과이의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돕고, 후세대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활용될 수 있을 만한 미래에 대한 관점, 그런 정치적 ..
「TV 책을 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편에 출연하다 “무히카 대통령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한 사람처럼 보여요.” 이 책을 읽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 「TV 책을 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편 녹화가 있었습니다. 전 우루과이 대사 최연충, 배우 박철민, 사진심리학자 신수진 등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북21 블로그에 예고가 나왔네요. http://blog.naver.com/book_21/220359443315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5일(수)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 여자들만이 사랑할 줄 안답니다. 남자들은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156쪽)― 육체를 가진 두 존재가 최초로 서약한 곳은 부서지는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