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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지배적 시선에서 벗어나 다르게 살아보라”






       

        


“나는 거의 팔십 년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 짧은 글을 쓴다.”

존 버거 자신의 말 그대로,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7)에 담긴 글들은 아주 짧다. 정신의 높이와 넓이는 여전히 충분하지만, 육체가 오랜 긴장을 더 이상 축적하지 못하는 말년의 글이다. 존 버거의 글들은 소박한 언어로 자유를 향한 정치적 격렬함을 표출하고, 간결한 어조로 땅에 일구며 살아온 인류의 지혜를 온축할 줄 알았다. 그 경지가 한층 깊어진 것일까. 이 에세이들은 행들과 밑줄이 나란한 기적을 연출한다. 

어쩌면 지난 1월 2일, 사망 소식을 접한 후이고, 이 책이 마지막 에세이집으로, 더 이상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겹쳐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이 이렇게 기우는 것에 속생각이 반발한다. ‘아니야, 아니야! 글의 천진한 청년성, 채플린적 긍정성 덕분이야.’ 존 버거는 말한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채플린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인 어떤 사람.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비밀은 바로 그 복수성이다.”

아흔 살이 다 되어 가는 인생의 마지막에 쓰였지만 넘어질 때마다 다른 존재로 일어서리라는 이 태도는 놀랍도록 젊다. 존 버거는 앞날에 대한 낙관성을 죽는 날까지 유지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로부터 빌려온 글로써 그는 자신의 신념을 표시한다. 

“흐느끼는 것은 약한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행동입니다. 인간답게 지내는 것은 거대한 운명 앞에 스스로의 삶을 즐겁게 던지는 것이지요. 그와 동시에 매일의 화창함과 모든 구름 조각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흐느낌을 불러일으킬 만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하루의 햇빛과 구름 조각들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마음에서 기쁨을 일으킬 줄 알았다. 존 버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에서 그는 고도의 낙관주의를 호명함으로써 희망은커녕 공허하고 무의미한 단어들만 늘어놓는 오늘날의 정치에 저항한다. 

평생 친구가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가. 1962년 제네바에서 존 버거를 만난 이래, 장 모르는 반세기가 넘도록 빛과 어둠의 힘을 통해 그를 기록한다. 『존 버거의 초상』(신해경 옮김, 열화당, 2017)은 149장의 이미지로써 “지식인의 삶과 농부의 삶이 잘 조화된 모습”을 선연하게 보여 준다.

마흔 살 무렵, 존은 “외딴 지역 사람들이 겪는 생존의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결심”했다. 『G.』(김현우 옮김, 열화당, 2008)로 부커 상을 수상하고 『다른 방식으로 보기』(최민 옮김, 열화당, 1974)를 출간하여 작가이자 비평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순간이었다. 존은 과감하게 알프스의 산골 마을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는 지식 분자답지 않게 관조적 전원생활자가 아니었다. 존 버거는 “친구들과 더불어 일을 하고 땀을 흘리”는 농사일을 육체의 주름으로 기록해 갔다. 장 모르는 말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길고 추운 겨울이 첫 봄꽃에 자리를 내어 줄 때마다, 시간은 존의 이목구비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리하여 ‘언어로 그려낸 자화상’과 ‘사진으로 쓴 초상화’가 서로를 비추면서 작가이자 화가이고 언론인이자 예술비평가이며, 무엇보다도 ‘농부’였던 한 사람의 일생을 우리 눈앞에 선연히 드러낸다. 존 버거가 무엇보다도 바란 것은 “평등한 익명성”이었다. “계급을 알리는 표지”가 없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아는 겸손한 사람들끼리 나누는 연대였다. 수영할 때 팔이 스치면 미안함을 표시하듯, 그 연대는 서로에 대한 양보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존 버거에 따르면, 인간은 “그 어떤 성운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별”이다. 각자가 모두 찬란한 별이기에 인간 사이에는 아무 위계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각자가 모두 자유로운 고아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집단주의의 그늘에 자신을 묻은 후 흔히 나타나는, “조직화되고 무언가에 세뇌되었을 때” “보일 수 있는 잔인함”을 우리 사이에서 몰아낸 후에 “여전히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결코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당돌한” 고아들끼리,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길을 발견하는 것. 이 ‘불가능한 가능성’을 현실에서 체험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예술이다.

황혼 무렵, 광장에서 가수가 노래를 시작한다. 지나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다가 하나둘 모여든다. 누군가 발로 박자를 맞추고, 리듬을 타고 콧노래를 부르고 발을 구르며 가수를 따라서 모두 흥얼거린다. 규칙 없는 일체, 즉흥 공동체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의 어깨와 머리 사이로 보이는 벽이 후렴구가 끝날 때까지 황금빛으로 빛난다. 노래가 끝나면 벽은 다시 돌로 변한다.” 이것이 희망이다. 달콤한 미래를 대가로 현재를 경멸하고 희생하는 공허한 장밋빛 유토피아를 거부하는 일이다. 각자 자유를 잃지 않은 상태에서 온전한 연대를 체험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치는 예술로부터 배워야 한다.

“현실에서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도 친밀함을 공유할 수 있다. 몇 분 동안 노래 한 곡이 불리고, 거기에 함께 귀를 기울이는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가까움, 삶에 대한 어떤 합의, 아무런 조건도 없는 합의.” 

존 버거는 인류에게 지배적 시선에 붙잡히지 말고 “개와 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촉구했다. “끊임없이 놀라운 곳”으로 세계를 다시 발명할 것을, “언제나 놀랄 준비가 된 상태”로 살아갈 것을, 권력의 시선에서 벗어나 “다르게 보는 법”을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를 위해 그가 자기 일생을 스스로 요약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는 개새끼다.” 사람으로 태어나 작가로 살았으나, 마침내 개로써 죽을 수 있었으니, 그 인생이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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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서평. 이번에는 존 버거의 마지막 책들을 다루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빛 속에서 삶에 대한 유머와 긍정을 잃지 않는, 예술적 체험으로부터 새로운 삶의 모양새가 도래하기를 갈망하는 그의 글들을 읽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새삼 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