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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촛불 이후의 사회를 꿈꾸기 위한 책 -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서울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촛불 이후의 사회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책을 한 권 추천하고, 

그 이유를 짧게 달아 본 것이다. 





마이클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2012)


자율. 자기 행동의 서사를 스스로 창조하고 실천하다. ‘촛불’과 함께 민주주의가 우리 스스로에게 명령되었다. 자율적 주체인 시민을 통치의 대상인 신민으로 여기는 어떠한 정치사회 시스템도 굳센 연대를 통해 곧바로 무력화할 것임을 우리는 선포했다. 아고라에서 자율적으로 평화를 이룩한 성숙한 시민의식에 바탕을 두고, 대의제 선거에만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공화(共和)의 원리를 국가와 사회 전반에서 시험할 때다. 지나치게 국가에 정향되고 과도하게 자본에 예속된 사회를 바로잡고, 벌어진 격차를 넘어서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의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이 책은 정치의 새로운 얼굴을 그리려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지렛대를 제공한다. 저자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공동체가 생겨날 수 있도록 시민들 개개인의 마음을 일일이 살피는 공론장(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흔하게 기적을 일으키는)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자기 나라 안에서 난민이 되면서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 주목하고, 그 찢긴 마음을 서로 공유하여 공감을 일으킴으로써 치유를 바느질하고 연대를 생성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의 참된 토대이자 공화로 가는 오솔길이다. 

사회의 뿌리로부터 꽃을 향해 분출해 올라가는 소통의 흐름을 원활히 하면서도, 이를 자율적으로 조절하고 필요한 일에 집약할 줄 아는 미시 정치의 실현이 촛불의 교훈이다. 독서 공동체와 같이 ‘타인의 존엄’을 한계로 삼아 일상에서 성찰적 토론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시민 공동체를 고민할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