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극

(6)
아테네, 비극의 도시 - 문학과 도시 (1) 인간 존재는 ‘죽다, 넘어서다, 모여 살다’ 셋으로 압축된다. 길어야 100년, 인간의 삶에는 끝이 있다. 영원을 누리는 신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우리의 물리적 생명은 시간의 침습을 받아 죽음을 향해 간다. 유한성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특징이다. 그러나 인간은 패배자가 아니다. 끝이 있음을 알기에,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머릿속에서 보는 힘을 익혔다. 꿈꾸고 상상하면서 한 걸음 더,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역량은 우리를 독특하게 한다. 넘어서는 힘은 인간을 창조자로 만든다. 먹지 못할 것을 먹게 하고, 살지 못할 곳에서 살게 하고, 죽을 때를 생명의 시간으로 바꾸어 준다. 인간은 홀로 넘지 못한다. 영웅 숭배는 역설이다. 재앙을 혼자 힘으로 돌파하는 인간의 희소를 상징한다. 인간은 모여 있..
올림픽의 인문학 ― 경기, 인류 문명의 위대한 도약 매주 쓰는 《매일경제》 칼럼,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이해 그 의미를 따져 보았습니다. 아래에 조금 보충해서 올려 둡니다. 올림픽의 인문학 ― 경기, 인류 문명의 위대한 도약 올림피아 축제란 무엇인가. 전설에 따르면, 마라톤 전투의 승리 소식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한 후 탈진해 죽은 병사를 기념하는 데에서 이 축제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 축제는 간절한 기다림 끝에 결국 제우스의 정의가 실현됐다는 기쁨의 선언이자 평화의 선포다. 또 앞날에 대한 불안도, 방패에 실려 돌아온 이들로 인한 슬픔도 없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간절한 재현이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것은 무척이나 어울린다. 고구려 땅일 때 평창(平昌)은 욱오(郁烏)나 우오(于烏)로 불렸고 통일신라 때에는 백오(白烏)라는 이름이었다. ..
[풍월당 문학강의] 누가 이 여인을 악녀라고 부를 것인가 ―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그런데 애들을 왜 죽였소?” 아르고호를 타고 멀리 동방으로 모험을 떠나서 황금양털을 가져온 이아손이 울부짖습니다. 그는 헤라클레스와 함께 신화시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영웅입니다. 이아손의 배신에 치를 떨다가 가장 사랑하는 두 자식마저 복수의 제물로 내놓은 메데이아가 결연히 대답합니다.“당신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죠.”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상대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 주려는 생각에, 자신의 영원한 파멸을 아랑곳하지 않는 이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것은 ‘새로운 지혜’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순간적 격앙’의 산물일까요. 메데이아는 말합니다.“내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 하는지 나는 안다. 그러나 격정이 나의 숙고보다 더 강력하니, 격정이야말로 인간들에게 가장 큰 재앙의 원인이로다!” 한 ..
[풍월당 문학강의] 피의 값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잘 알아두시오.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나도 모르겠소. 내 비록 고삐를 잡고 있기는 하나 말들은 이미 주로 밖으로 멀리 벗어난 느낌이오.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고, 내 가슴속에는 벌써 공포가 노래 부르며 격렬한 춤을 추려 하니 말이오. 아직 정신이 있을 때 친구들에게 말해두고 싶소. 내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정당한 행동이었소.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1021~1027행)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몫의 운명을 안고 태어납니다.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고 자기 운명을 새롭게 쓰려는 영웅들의 분투는 비극적 파멸을 불러들이죠. 하지만 영웅들의 불쌍한 최후는 우리에게 슬픔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터질 듯한 희열과 고귀함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킵니다.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중앙선데이》에 4주에 한 번씩 문학 에세이를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대규모 몰락과 전락의 시절을 맞이해서 ‘리어왕’ 주제를 변주해 보았습니다. 삶이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전락의 고통 없이 어떤 인간도 자신의 참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 밑바닥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만이 삶을 올바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권력의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들이 줄줄이 떨어지는 계절에, 문득문득 떠오르던 것들을 가볍게 적어 보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리어는 행복했다. 브리튼 왕국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였다.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고, 아름다운 딸도 셋이나 있었다. 왕국을 세 딸에게 나누어준 후, 딸들 집을 교대로 돌아다니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작정이었다.그러나 리어의 계획은..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6일(목)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리쩌허우,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13) 중에서 ― “개량이 필요하고 혁명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현대화의 ‘4가지 순서’를 내놓았다. 즉 경제 발전, 개인의 자유, 사회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