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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6일(목)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리쩌허우,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13) 중에서



 개량이 필요하고 혁명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현대화의 ‘4가지 순서를 내놓았다. 즉 경제 발전, 개인의 자유, 사회 정의, 정치 민주화다. 그리고 그 전제는 사회 안정생태 환경이다. (215

경제, 자유, 정의, 민주 등 네 가지 양보할 수 없는 가치 중에서 한 공동체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리쩌허우와 윈톄쥔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 내부의 지식인 사이에서 이와 관련해 상당한 합의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경제 없이 민주는 없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경우, 민주 없이 경제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민주 없는 경제를 추진해야 하는가?

누구나 먹고살 만한 집에서 살다가 생계의 곤란에 빠진다면, 그 과정에서 아마도 세상 사람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루쉰) (220루쉰의 날카로움은 이런 문장에서 통렬하게 빛난다.

계급투쟁과 혁명은 어떤 시기, 어떤 상황에서는 역사에 부합하는 확실히 중요한 출연자이고 더 나아가 주요 출연자이지요. 하지만 그 지위와 작용이 과장되어 있어요. 일상 사회생활 및 장기적인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는, 계급의 합작과 협조라는 측면이 더 두드러지지요. (231계급투쟁이나 혁명 자체가 역사의 일정 단계에서 나타나는 산물이라는 이 통찰은 사적 유물론의 일부이지만, 대단히 신선하다. 이 개량주의는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이라는 비극의 경험을 품고 있기에 현실적이다.

역사의 발전은 비극적인데, 바로 역사주의와 윤리주의의 이율배반이다. 역사주의는 발전을 강구하며, 개혁개방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욕망이 역사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이건 맞지만, 욕망이 앞을 향해 발전하는 데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고, 우리의 윤리가 파괴된다. 그래서 이때 우리가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특정 시기에는 역사주의를 우선순위에 두지만 이와 동시에 손실은 최소가 되도록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손실이 전혀 없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역사는 비극적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232비극에 대한 통찰은 오늘날 우리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 악당이 선인을 해쳤을 때 우리는 그 일을 죄악이라고 부르지 비극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비극이란 선인이 선인을 해쳤을 때에만, 해칠 수밖에 없을 때에만 생겨난다. 우리가 인생에서 행하는 대부분의 선택은 대개가 비극적으로 일어난다. 아마 회사나, 조직이나, 국가조차도 그러하리라.

서학을 체()로 삼고 중학을 용()으로 삼으라. 홀숫날에는 역사를 읽고 짝숫날에는 경전을 읽으라. (236서체중용(西體中用)은 독특한 발상이다. 서양의 이성으로 기둥을 세우고 동양의 정감으로 지붕을 올려 집을 지으려는 이 시도가 이원론을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있어야 하리라.

고전으로의 회귀는 현대성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현대성을 요구하지 않는 고전은 퇴보예요. (243)

인간은 무엇보다 먼저 살아가야 하고, 그다음에야 무엇 때문에 살아가느냐의 문제가 생기는 거랍니다. 살아가는 것조차 문제가 되는 때는 다들 필사적으로 돈을 벌게 마련이지요. 물질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다들 살아가는 게 무엇 때문인지를 캐묻게 마련입니다. 어째서 사는가를 명백히 아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254물질이 정신을,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이러한 유물론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청년세대의 경제적 고통을 외면할수록 우리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세대의 시도에, 그들의 과감한 실패에 축적된 경제적 잉여를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을 후세대에 전이한 채, 과거의 성공 모델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일 뿐이다. 

저는 지하에서 사고하고 가장자리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258)

저는 줄곧 우리 모두가 인권을 갖고 있다고 했어요. 이 인권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일정한 단계까지 발전해야만 있게 되는 거라고 했어요. (277)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건, 이런 상황일지라도 우리가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바로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것이지요. (281그렇다. 안 될 줄 알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존엄은 대부분 이 단순한 실천으로부터 나왔다. 

 


(2) 신시아 몽고메리, 당신에게 전략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전략을 파괴하라』(레인메이커, 2013) 중에서



전략은 결코 아웃소싱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업의 중요한 결정과 전략에 대한 책임은 오너 혹은 리더에게 있다. 또 그런 결정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리더가 기업에 가치를 창출해 주는 것이 곧 리더십이고 이를 위해 전략가가 되는 것이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19)  현재 한국 출판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전략가, 즉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제 시간과 노력의 사적인 투자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거시적인, 동시에 구체적인 솔루션을 계속해서 상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업에 뛰어들고자 한다면 산업의 약점을 해결할 방안을 가지고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호랑이굴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23)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 “싸우기 전에 조정에서 미리 이기면 승산이 많고, 싸우기 전에 조정에서 미리 이기지 못하면 승산이 적다.”를 떠올리게 한다.

전략가는 의미 창출가다. 고객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업 안에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의미를 제공해야 한다. (30그러나 의미라는 말보다 어려운 말은 없다. 제공이라는 말은 더더욱 어렵다. 물론 전략은 우리가 왜 책을 내야 하는지, 왜 이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가르쳐 준다. 이런 전략가는 한국 출판에 원래부터 거의 존재한 적이 없다.

전략이란 목적에 기반을 둔 우위 창출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목적에 직접 관여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래서 모든 종업원이 기업의 목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가치는 아이디어를 실천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32)

우리 자신으로 남아서는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리딩 전략은 리더의 영원한 책임이다. 그리고 이것이 리더가 회사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역할이다. (38~39)

조직의 목적은 번영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또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용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 보지 못했던 곳으로 갈 수 있는 용기입니다. (44)

 

 

(3)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3) 중에서



참 놀라운 일 아닌가요!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삶에 대해 불평을 해 대면서도 떠날 결심은 하지 못하니까요! 모든 걸 따져 보면 지금 삶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래에 더 나쁜 일이 있을까 봐 두려워서 그런 건지? (285)

그런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우리는 삶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면서도 삶을 경멸한다고 말하는 거지? (286)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날에는 더 가치 있었을지도 모르죠. 가치는 매 순간 다른 법이니까요. (311)

독자여,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 둘 중에 더 나쁜 사람은 당신이다. 그대의 비난을 피하는 일이, 당신이 내 작품의 위험이나 권태로부터 피하는 일만큼이나 쉽다면 난 만족할 것이다! (325)

가장 덜 사용되고, 가장 덜 글로 쓰이고, 가장 억눌려 온 표현이 일반적으로 더 많이 알려지며 이해되는 법이다. (중략) 그래서 푸투오(futuo, 성교)라는 단어가 빵이란 단어만큼이나 우리에게 친숙한 것 아닌가. 어느 시대에도, 어느 관용어에도 이 말이 없었던 적은 없다. 이 말의 동의어는 세계 모든 언어에 수없이 많으며,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목소리도 형상도 없이 각각의 언어에 새겨진다. 그 짓을 많이 하는 성()이 더 침묵을 지키는 법이다. (326)

작가의 문체의 파격은 오히려 품행의 순수함을 보증한다. (중략) “내 글이 외설적이면 내 삶은 순수하다.”(326~327)

나는 라블레를 좋아하지만, 라블레보다 진실을 더 좋아한다. (329)

자식들이 수도로 갈 때 작은 설교를 하는 게 어버이들의 습관이죠. 절대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고, 맡은 일을 착실히 해서 상관에게 잘 보이고, 신앙 생활은 계속하고, 행실 나쁜 여자나 사기꾼은 피하고, 특히 환어음에는 절대 서명하지 말 것을요. (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