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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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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쨌거나 좀 더 살아야 해요.” ― 루쉰의 『고독자』를 읽다 루쉰의 소설은 이미 모두 여러 번 읽었지만, 손에 새로운 번역본이 들어올 때마다 어떻게든 다시 읽는다. 이번에 읽은 책은 『고독자』(이욱연 옮김, 문학동네, 2020)다. 이 판본은 2002년 인민출판사에서 특별 간행되었던 것으로 중국 현대 판화의 거장 자오옌넨이 새긴 목각 판화가 삽화로 실린 것이 특징이다. 『아Q정전』(2011), 『들풀』(2011), 『광인일기』(2014)에 이어 네 권째 나왔으며, 번역은 이번에도 이욱연 교수가 맡았다. 차후에 『옛이야기, 다시 쓰다』로 완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 실린 루쉰의 작품은 「복을 비는 제사」, 「비누」, 「장명등」, 「가오 선생」, 「고독자」, 「애도」, 「이혼」 등 일곱 편이다. 역자에 따르면,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 실린 작품 중에서 고른 ..
비틀린 삶의 축을 바로잡아줄 길잡이 《주간동아》 1126호(2018. 02. 14, 60~61쪽)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해 나온 책들 중에 연휴를 맞이해서 읽을 만한 책을 골라서 소개했습니다. 비틀린 삶의 축을 바로잡아줄 길잡이연휴에 꼭 손에 들어야 할 8권 책을 왜 읽는가.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지금에야 굳이 책일 까닭도 없다. 온라인 공간에는 평생 봐도 다 못 읽을 자료와 기록이 이미 즐비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생겨나는 중이다.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좋은 스승을 좇아 서점이나 도서관 등에서 열리는 강좌나 강연에 참석해도 좋고, 바란다면 여러 가지 동영상 강의를 이용할 수도 있다. 내용이 충실하고 수준 높기로 정평 난 강의만 챙겨도 이번 생을 채우고도 남는다.하지만 지식과 정보의 습득 말고 책을 읽는 더 깊은 이유..
《기획회의》 신간토크 제455호(2018년 1월 5일) 강양구와 함께하는 《기획회의》 신간토크. 최근 2주간 출간된 신간들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필자가 이야기한 부분만, 살짝 매만져서 올릴 예정. 김숨, 『너는 너로 살고 있니』(마음산책)“‘닿다’를 발음할 때면 혀끝에서 파도가 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매 순간,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땅속에 묻혀 소멸하는 순간까지, 그 무엇과 닿으며 사는 게 아닐까요.”김숨의 소설에 임수진의 일러스트를 더한 서간체 그림소설 『너는 너로 살고 있니』가 마음산책에서 나왔습니다.무명의 여배우가 경주로 내려가 11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한 여자를 간호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변화를 담은 작품입니다.두 사람 모두 ‘아무도 아닌 자’입니다. 한쪽은 ‘살아서 죽은 자’이고, 다른 쪽은 ‘죽은 듯 사는 자..
[서점, 문화거점을 꿈꾸다·(6)동네 서점에 손 내미는 출판사들]'나만의 책' 찾는 독자들, 틈새시장을 열다 대형·온라인 마케팅서 선회소규모 '한정판 문고' 새바람할인·기념품보다 '물성' 중시책방주인 체험 등 기획 신선 각자 다른 개성으로 무장한 '동네 책방'이 하나둘 생활 주변에 자리 잡으며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 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동안 출판사들은 신간 도서 예약판매나 기념품 증정 행사를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진행했으나, 동네 서점 마케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도서출판 민음사는 지난 여름 전국의 동네 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 문고를 발간했다. '쏜살 문고 동네서점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등 2권의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는 구매할 수 없다.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와 서울의 독립서점 '51페이지'의 제..
[21세기 고전] 인생에 좌절은 있어도 패배는 없다 - 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인생에 좌절은 있어도 패배는 없다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문학동네, 2009) 지하철역을 놓쳤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잠시를 못 참고, 또다시 책을 손에 잡은 탓이다. 허둥거리며 약속 장소로 뛰는데, 뒤가 궁금하면서 길 한쪽에 주저앉아 또 읽고 싶다. 처음 접하는 작품도 아닌데, 아무튼 이 지경이다. 이것이 공선옥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다. 조금도 편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마음의 장벽을 넘어온 문장들이 잔상을 남기면서 시선을 다음으로, 다음으로 잡아끈다.“이글이글 타오르는 화톳불 위에서 고기가 익어 갔다. 제재소 마당에 유일하게 서 있는 목련나무 고목의 꽃망울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봄날 저녁, 그늘이 포근히 내리고 있었다. 그 마당으로 환이 나왔다. 환이 나오자 어두운 마당이..
[21세기 고전] 그래도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21세기 고전’. 이번애는 이현수의 『신기생뎐』을 다루었습니다. 역사의 밀물에 떠밀리고 있는 근현대사의 잊힌 삶들에 주목하는 이 작가의 성취는 아주 높습니다. 언어의 세밀화가로서 그녀가 그려내는 세계는 정말 풍요롭죠. 이 작품을 비롯하여 『토란』(문이당, 2003), 『나흘』(문학동네, 2013) 등은 독서공동체에서 같이 읽고 이야기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군산 부용각. 빼어난 노래와 신명나는 춤을 빌미로 여자들이 사랑을 사고파는, 그러다 사랑을 하기도 잃기도 하는 기생집이다. 이현수의 『신기생뎐』의 무대다. 주요 주인공은 넷이다. 소리기생 오 마담, 부엌어멈 타박네, 춤기생 미스 민, 오 마담을 스무 해 동안 외사랑하는 박 기사. 연작소설의 화자를 이루는 사람마다 사연이 절..
『삼국지』『해리 포터』…독자는 소설에 매혹됐다(중앙일보) 《중앙일보》에 민음사,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주요 문학 출판사를 중심으로 열다섯 군데 출판사의 역대 베스트셀러에 대한 분석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리스트를 넘겨받아서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와 함께 분석해 보았습니다. 기사에도 나와 있지만, 아무리 문학 작품이 기본 부수를 팔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해도, 역시 슈퍼 베스트셀러는 문학이었습니다. 그다음이 이른바 문학의 한 부류로 볼 수 있는 에세이였죠. 리스트에는 빠져 있지만, 그다음은 아마도 학습서 또는 실용서일 겁니다.슈퍼 베스트셀러들이 문학으로 쏠려 있는 것은,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될 만한 초기의 어떤 문턱을 넘어서고 나면, 누구나 재미와 감동과 정보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종합 양식이기 때문일 겁니다. 특정 욕구가 있는 사람들뿐만 ..
[2015년 출판 트렌드] 책에서 길을 묻다 _ 독(獨), 전(錢), 협(協), 리(理), 의(意) (시사인) 트렌드란 무엇인가? 과거가 기록한 미래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흐름이고 연속이어서 돌이킬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록은 오직 미래의 임무다. 과거는 기록할 수 없다. 기억할 만한 미래는 흔히 파괴이고 단절이며 전환의 형태를 취한다. 과거를 들여다보아도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이유다. 미래는 미리 오지 않고 나중에 도래한다.창조자나 혁신가는 트렌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이 미래를 발명하기 위해 맞서 싸워야 할 힘들에 주목하고, 힘들이 하나의 장(場)을 이루는 현실을 분석한다. 문제를 도출하고 해결책을 깊게 고민한다.출판은 고객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솔루션 비즈니스의 일부다. 어떤 특정한 문제에 부닥쳤을 때, 사람들은 검색하거나 대화하는 대신 책을 읽는다.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