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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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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쨌거나 좀 더 살아야 해요.” ― 루쉰의 『고독자』를 읽다 루쉰의 소설은 이미 모두 여러 번 읽었지만, 손에 새로운 번역본이 들어올 때마다 어떻게든 다시 읽는다. 이번에 읽은 책은 『고독자』(이욱연 옮김, 문학동네, 2020)다. 이 판본은 2002년 인민출판사에서 특별 간행되었던 것으로 중국 현대 판화의 거장 자오옌넨이 새긴 목각 판화가 삽화로 실린 것이 특징이다. 『아Q정전』(2011), 『들풀』(2011), 『광인일기』(2014)에 이어 네 권째 나왔으며, 번역은 이번에도 이욱연 교수가 맡았다. 차후에 『옛이야기, 다시 쓰다』로 완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 실린 루쉰의 작품은 「복을 비는 제사」, 「비누」, 「장명등」, 「가오 선생」, 「고독자」, 「애도」, 「이혼」 등 일곱 편이다. 역자에 따르면,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 『방황』에 실린 작품 중에서 고른 ..
겨울을 맞는 마음 며칠 전, 한밤중에 첫눈이 내렸다. 후배랑 김치전을 곁들여 한잔하는 중에, 어둠 속에서 갑자기 눈송이가 뭉쳤다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깥으로 슬쩍 나가서 손바닥을 공중으로 내밀자 피부에 닿은 눈이 스르르 방울졌다. 자연은 쉬지 않는다. 단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절기를 돌린다. 낳고 또 낳는 변화(易)야말로 세상의 이치다. 엊그제가 가을인 듯싶더니, 어느새 “이슬은 서리로,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겨울이 온 것이다. 때마침 어제(22일)가 소설(小雪)이었다. 눈 내릴 무렵에 적절히 눈이 온 셈이다. 위스춘의 『시간의 서』(강영희 옮김, 양철북, 2019)에 따르면, 소설과 더불어 “만물의 숨결은 흩어지고, 나고 자람은 거의 멎어 겨울이 온다.” 사나흘 전부터 과연 사람들 옷차림이 두꺼워지더니, 올..
《기획회의》 신간토크 제455호(2018년 1월 5일) 강양구와 함께하는 《기획회의》 신간토크. 최근 2주간 출간된 신간들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필자가 이야기한 부분만, 살짝 매만져서 올릴 예정. 김숨, 『너는 너로 살고 있니』(마음산책)“‘닿다’를 발음할 때면 혀끝에서 파도가 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매 순간,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땅속에 묻혀 소멸하는 순간까지, 그 무엇과 닿으며 사는 게 아닐까요.”김숨의 소설에 임수진의 일러스트를 더한 서간체 그림소설 『너는 너로 살고 있니』가 마음산책에서 나왔습니다.무명의 여배우가 경주로 내려가 11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한 여자를 간호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변화를 담은 작품입니다.두 사람 모두 ‘아무도 아닌 자’입니다. 한쪽은 ‘살아서 죽은 자’이고, 다른 쪽은 ‘죽은 듯 사는 자..
‘문장의 관료화’라는 말을 배우다 _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본 이데올로기』(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를 읽다 비평가의 글은 자기가 속한 시대를 분석하고 그에 적절한 실천의 도구를 제시하면 그만이지만, 그 행위를 통해 후세의 사람들에게 생각의 도구를 제공하면 금상첨화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본 이데올로기』(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7)를 읽다가, ‘문장의 관료화’라는 표현에 사로잡혀 벌써 몇 주째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심장이 아주 예리하게 베인 느낌이다. 나 자신이 썼던 많은 글이 머릿속에 줄지어 떠오르면서 일종의 자괴감에 시달리는 중이다. 다케우치는 말한다. 무의미한 글이 세상에는 없지 않다. 가령, 관료의 글이 그렇다. 학자가 써내는 글도 태반이 그렇다. 문학자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 상태가 현재 일본에서 특히 눈에 밟힌다. 일반적으로 말해 문장의 관료화라는 현상을 인정해야지 싶다. (1..
새로운 삶에 대하여 ― 루쉰, 「고향」,『루쉰전집』(그린비, 2010) 새로운 삶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삶을.분주함 탓에 마음이 길을 잃은 듯하여 『루쉰전집』(그린비, 2010)을 꺼내들고 아무 데나 펼쳐서 작품을 읽었다. 단편소설 「고향」이었다. 유학 생활을 거쳐 스무 해 넘어 돌아온 고향. 낯선 땅을 떠돌면서 마음에 품고 다졌던 고향에 돌아온 루쉰은 거대한 충격을 받는다. 이곳은 그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향(故鄕)은 봉건적 착취와 억압 속에 어느새 이향(異鄕)으로 바뀌어 있다. 어릴 적 고향 친구 룬투가 자신을 ‘나으리’라 부르는 순간, 고향에 대한 모든 환상은 깨어진다. 이 가혹한 현실 앞에서 루쉰은 할 말을 잃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사이 가로놓인 “슬픈 장벽”은 두껍디두껍다. 고향이 감옥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절망은 도처에 있다. 우리 ..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16일(목) 절각획선(切角劃線)은 책장의 귀를 접고 밑줄을 긋다는 뜻으로 리쩌허우가 쓴 글 제목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는 책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직접 몸을 움직여 체험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읽기의 금언으로 삼아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그러고 보면 옛 선인들은 매일 읽은 것을 옮겨 적고, 나중에 이를 모아서 편집하여 하나의 책을 만듦으로써 읽기에 대한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로써 새로운 지혜를 축적하고 표명했다. 이 기록이 언젠가 그 끝자락에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1) 리쩌허우, 『중국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13) 중에서 ― “개량이 필요하고 혁명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현대화의 ‘4가지 순서’를 내놓았다. 즉 경제 발전, 개인의 자유, 사회 정의,..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진영화 옮김, 책만드는집, 2011)을 읽다 한 나라의 문학이 그 형성 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특히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과 같이 서양에서 발달해 온 여러 양식들을 자국의 문학 전통 속에 수용해 새롭게 만들어 가야 했던 나라들은 더욱더 그렇다. 중국에 루쉰이 없고 일본에 나쓰메 소세키가 없고 한국에 이광수가 없었다면, 현재의 동아시아 문학은 아마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루쉰이나 이광수의 문학과는 달리 나쓰메 소세키한테는 통쾌한 유머가 있다. 루쉰의 웃음은 가혹할 만큼 쓰디쓰고 이광수는 전혀 웃을 줄 모르는데, 소세키 혼자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속해 있던 국가가 서구 열강에 대한 수비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공격(침략)을 택했던 것과 연관이 있을까?지난 열흘 정도에 걸쳐서 나쓰메 소세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