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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새로운 삶에 대하여 ― 루쉰, 「고향」,『루쉰전집』(그린비, 2010)



새로운 삶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삶을.

분주함 탓에 마음이 길을 잃은 듯하여 『루쉰전집』(그린비, 2010)을 꺼내들고 아무 데나 펼쳐서 작품을 읽었다. 단편소설 「고향」이었다. 유학 생활을 거쳐 스무 해 넘어 돌아온 고향. 낯선 땅을 떠돌면서 마음에 품고 다졌던 고향에 돌아온 루쉰은 거대한 충격을 받는다. 이곳은 그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향(故鄕)은 봉건적 착취와 억압 속에 어느새 이향(異鄕)으로 바뀌어 있다. 어릴 적 고향 친구 룬투가 자신을 ‘나으리’라 부르는 순간, 고향에 대한 모든 환상은 깨어진다. 이 가혹한 현실 앞에서 루쉰은 할 말을 잃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사이 가로놓인 “슬픈 장벽”은 두껍디두껍다. 고향이 감옥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절망은 도처에 있다. 우리 삶은 대부분 좌절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음이 우리 삶의 진짜 모습이다. 그러나 루쉰의 글에는 체념의 미학이 없다. ‘어쩔 수 없음’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삶’의 미학을 선포한다. 운명에 대한 굴종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참담한 현재를 외면하지도 않은 채 루쉰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삶’을 호명한다.

그 삶의 모습이 무엇일까?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호명했으므로 비로소 꿈꿀 수 있고, 꿈꿀 수 있으니 출발할 수 있을 뿐이다. 그제야 루쉰은 고향에 온 것을 깨닫는다. 고향이 여전히 고향으로 있음을 알아챈다. 눈앞에 그리던 모래밭이 펼쳐지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타향을 떠돌면서 꿈꾸었던 아름다움을 전혀 잃지 않은 채.

몽롱한 가운데 바닷가 푸른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 검푸른 하늘엔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여! 절망 속에서는 그토록 추악하더니, 희망이 들어서자 이토록 아름답다니. 희망이 있어야 고향이구나. 어떻게든 희망이 생기니까 고향이로구나. 루쉰은 억압 속에서 시들어 가던 고향을 희망의 공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복 받았구나, 루쉰의 마을이여! 문학이 사라지지 않은 한, 그대는 영원한 희망의 상징으로 남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