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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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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의견 [다수와 소수] 두 의견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관용되고 나아가 더 격려되고 더 지지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소수의 자리에 있게 된 의견이다. 그것이, 무시된 이익을 당분간 대변할 의견이며, 인간 복리 중에서 그 정당한 몫을 다 받지 못할 위험에 처한 측면을 당분간 대변할 의견이다. 인간 지성의 현 상태에서는 오직 의견의 다양성을 통해서만, 제각각 진리를 담고 있는 모든 측면을 공정하게 다룰 기회가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든 세상의 명백한 만장일치에 대해 예외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뭔가에 대해 그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들을 가치는 항상 존재한다. 그들의 침묵에 의해 진리가 뭔가를 잃게 될 가능성도 항상 존재한다. 설령 세상이 올바르다 할지라도..
인간은 ‘상대방의 거짓말’을 가려내는 데 무능하다 “낯선 사람이 우리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데, 왜 우리는 그걸 알아채지 못할까?”『타인의 해석』에서 베스트셀러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 묻는다. 관련한 연구를 집약하고 풍부한 사례를 집적해 인간 마음의 심오한 비밀을 캐내는 날카로운 통찰력,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탁월한 글 솜씨는 여전하다.인류사 대부분 동안 인간은 서로 잘 아는 이웃과 함께 살았다. 상대가 누구이며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모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진화했기에 우리 마음은 몸짓이나 어조 같은 사소한 신호만으로도 친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에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에 반해 낯선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기에 우리 마음은 이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아주 서투르다. 현대..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매주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에는 서지현 검사의 일을 계기로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파르헤시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오이디푸스, 그대가 왕이지만 답변할 권리만은 우리 두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져야 할 것이오.” 테이레시아스가 말한다. 테바이를 덮친 전염병의 진실을 말하러 찾아온 예언자를, 성난 군주는 뇌물을 받아먹고 지껄이는 헛소리로 몰아붙인다. 그러자 테이레시아스는 자기가 오이디푸스의 노예가 아니라면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장면이다.파르헤시아(Parrhesia). 희랍어로 ‘진실을 모두 말하기’라는 뜻이다. 성서에서는 ‘담대함’으로 옮긴다. 테이레시아스 같은 태도를 말한다. 정..
길 위에 서자 지혜가 찾아왔다 ― 마리아 베테티니·스테파노 포지 엮음, 『여행, 길 위의 철학』을 읽고 《문화일보》에 쓰는 서평, 이번 주에는 『여행, 길 위의 철학』(책세상, 2017)을 다루었습니다. 여행을 통해서 지혜를 얻었던 철학자들의 삶을 다룬 책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나온 책답게, 이 책에 나오는 여행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은 이탈리아를 지혜의 땅으로 만드는 데 복무합니다. ‘공간인문학’의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기획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 위에 서자 지혜가 찾아왔다― 마리아 베테티니·스테파노 포지 엮음, 『여행, 길 위의 철학』(천지은 옮김, 책세상, 2017) 철학자들의 여행에 대한 책이지만 여행자들의 철학에 대한 책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때때로 정치적 탄압을 피하거나 개인적 야망을 달성하려는..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는 책 - 시어도어 젤딘의 『인생의 발견』(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2016) 일반적으로 책은 특정한 방식으로 읽도록 되어 있다. 책을 이루는 문장이 만드는 호흡은 읽기의 속도나 밑줄이나 메모의 유무 등을, 심지어 장소까지도 결정한다. 주말에 시골마을에서 읽으려고 시어도어 젤딘의 『인생의 발견』(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2016)을 챙겨 갔다. 올해 여섯 번째 책으로, 청탁과 관계가 없었으므로 그야말로 자유롭게 읽기 시작했다. 앞머리부터 가슴을 두드리는 문장들이 넘친다.“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았다. 누구나 낯선 사람과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공포와 굴복의 기록일 뿐 아니라 위험에 도전한 기록이다. 특히 호기심에 이끌려 저항한 기록이다. 호기심은 빛을 어둠으로 바꾸는 온갖 종류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길이고, 문제를 미세한 분자로 분해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