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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소수 의견

[다수와 소수] 두 의견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관용되고 나아가 더 격려되고 더 지지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소수의 자리에 있게 된 의견이다.

그것이, 무시된 이익을 당분간 대변할 의견이며, 인간 복리 중에서 그 정당한 몫을 다 받지 못할 위험에 처한 측면을 당분간 대변할 의견이다.

인간 지성의 현 상태에서는 오직 의견의 다양성을 통해서만, 제각각 진리를 담고 있는 모든 측면을 공정하게 다룰 기회가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든 세상의 명백한 만장일치에 대해 예외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뭔가에 대해 그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들을 가치는 항상 존재한다. 그들의 침묵에 의해 진리가 뭔가를 잃게 될 가능성도 항상 존재한다. 설령 세상이 올바르다 할지라도 말이다. (중략)

가공할 만한 해악은 진리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갈등이 아니라 진리의 절반에 대한 조용한 탄압이다. 

사람들이 양편에 다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항상 희망이 있다. 사람들이 오직 한편에만 유의할 때, 오류는 편견으로 굳어지며, 진리 자체는 허위화됨으로써 더 이상 진리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

_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권기돈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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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나 항상 옳음, 너님은 늘 틀림 세상이다. 이성 대신 신념이 앞선다. 

무언가 근대 초기에 나왔던 이런 책들을 읽어야겠다 싶은 기분이다. 

근대 지식 게임의 규칙은 아무도 영원히 옳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소수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허용해 서로를 검증하는 세상에서 나왔다. 

밀에 따르면, 괴로운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이 곧 진실 게임의 패배자다. 

"어떤 의견이라도 그것이 강제로 침묵당하면, 그 의견은 아마도 확실히 진리일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무류성을 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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