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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인간은 ‘상대방의 거짓말’을 가려내는 데 무능하다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유강은 옮김, 김영사, 2020).말콤 글래드웰, 『타인의 해석』(유강은 옮김, 김영사, 2020).




“낯선 사람이 우리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데, 왜 우리는 그걸 알아채지 못할까?”

『타인의 해석』에서 베스트셀러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 묻는다. 관련한 연구를 집약하고 풍부한 사례를 집적해 인간 마음의 심오한 비밀을 캐내는 날카로운 통찰력,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탁월한 글 솜씨는 여전하다.

인류사 대부분 동안 인간은 서로 잘 아는 이웃과 함께 살았다. 상대가 누구이며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모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진화했기에 우리 마음은 몸짓이나 어조 같은 사소한 신호만으로도 친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에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에 반해 낯선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기에 우리 마음은 이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아주 서투르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시공간이 압축되면서 문제가 생겨났다.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몇 마디 대화로 아르바이트 직원의 됨됨이를 알고 싶어 하는 사장처럼, 우리는 만나자마자 낯선 이들을 빠르게 파악하려 하고, 약간의 주어진 신호만으로 그 속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틀렸다. 실제로 “낯선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낳은 크고 작은 비극이 일어나는 이유다.

이 책에 따르면, 스페인 정복자를 처음 만난 마야족처럼, 낯선 사람과 대화를 통해 우리는 이해에 도달하기는커녕 기만의 함정에 빠진다. 상대방 의도를 잘못 수용하고 행동의 의미를 헛다리짚는다. 전적으로 우리 잘못만은 아니다. 본래 인간 마음의 도구들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에, 낯선 이들의 속내를 잘 읽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오류를 피하고 제대로 타인을 해석하려면 우리 마음의 도구들이 가진 몇 가지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효율적 소통 위해 진화한 인류, 거짓의 증거 나올 때까지 믿어

낯선 이와 대화할 때 인간 마음은 ‘진실 기본값 모드’로 설정되어 있다. 인간은 먼저 남의 말을 믿은 다음, 의심은 나중에 시작한다는 뜻이다. 기만 연구의 권위자인 티모시 르바인 현 고려대 교수가 앨러배마대학 시절에 제기한 학설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하기보다 진실을 말한다고 믿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리가 낯선 이들의 거짓말에 잘 속아 넘어가는 이유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 수상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만나고 싶어 했다. 얼굴을 맞대면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마음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체임벌린은 세 차례 히틀러를 만나 히틀러의 마음을 확인했다. 전 세계가 둘의 ‘평화회담’을 열렬히 환영했다. 결과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체임벌린은 “양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히틀러의 따뜻한 환대에 놀아났을 뿐이다. 마음에 의심과 경계를 잔뜩 품었지만 별 소용없었다. 체임벌린이 바보라서가 아니다. 세계 최고라는 미국 정보기관은 쿠바의 이중 스파이에 농락당하고, 월스트리트는 폰지 사기꾼한테 놀아난다. 인간은 낯선 사람의 거짓을 탐지하는 데 별로 유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르바인의 실험이 통찰을 제공한다. 학생 하나를 불러 상식 시험을 본다. 정답을 맞히면 상금을 받는다. 같이 시험 보는 파트너도 하나 있다. 중간에 급한 일이 생긴 조교가 갑자기 나가자마자, 파트너가 책상에 놓인 답안지를 훔쳐보자고 유혹한다. 학생들 중 30% 정도는 넘어간다. 시험이 끝난 후 학생들을 면담하면서 커닝을 했는지 묻는다. 대답을 들은 후 파트너는 같은 질문에 무슨 답을 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면담 과정을 비디오로 기록한 후 관찰하면, 사람이 진실과 거짓을 말할 때 나타나는 독특한 행동을 알 수 있을 듯하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학생들 면담 동영상을 무작위로 섞어서 보여 주었을 때, 심판자는 정직한 학생과 거짓말쟁이 학생을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직한 학생과 거짓말쟁이 학생을 정확히 반씩 나누어 보여 주었다. 역시 판단은 형편없었다. 심판자의 평균 54%만이 거짓말쟁이 학생을 정확히 가려냈다. “경찰관, 판사, 심리치료사, 중앙정보국(CIA) 간부” 같은 전문가들도 별다르지 않았다. 언뜻 보면 되는 대로 추측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시 대학원생이던 박희선 현 고려대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인간은 “진실을 말하는 학생을 맞히는 데에는 우연보다 훨씬 유능하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학생을 맞히는 데에는 우연보다 훨씬 무능하다.” 이 말은 심판자들이 일단 학생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는 데에서 출발해서, 마음에 세운 진실 가설이 무너질 정도로 충분한 증거가 제출될 때에만 ‘거짓’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낯선 이가 진실하다고 가정”함으로써 “가끔 기만을 당”하는 비용을 치르는 대신 “빠르고 효율적인 소통”을 통한 이득을 취하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의 말을 일일이 의심해 충분히 신뢰할 때에만 관계를 맺으면 사회는 도저히 굴러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마음은 일단 타인의 진실을 믿고 나중에 의심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얼굴·대화로 타인을 알 수 있다 여기지만 내면과 태도는 일치하지 않아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데 우리가 사용하는 두 번째 도구는 ‘투명성’이다. 투명성은 “행동과 태도, 즉 사람들이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들의 속으로 느끼는 방식에 대한 확실하고 믿을 만한 창을 제공한다는 관념”을 말한다. 판사들이 피의자에 대해 판단할 때 주로 이 가정을 이용한다. 변호사와 피의자의 감정어린 호소를 듣고, 얼굴과 태도 등에 나타나는 마음을 보면서 사람의 진심을 판단해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2008~2013년 뉴욕에서 공소 사실 심문에 출두한 피의자는 55만 4689명이었다. 그중 뉴욕의 판사들이 보석으로 석방한 사람은 40만 명 남짓이었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 등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해 보석 대상자 40만 명을 추출하도록 했다. 어느 쪽이 보석 중 더 적은 범죄를 저질렀을까. 인공지능이 선별한 이들의 재범률(재판 불출석 포함)이 25% 낮았다. 인공지능에는 ‘투명성’이라는 기댓값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윈은 인간의 얼굴 표정이 “마음의 게시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다윈은 틀렸다. 분노에 찬 서양인 사진을 남태평양 트로브리안드인들에게 보여주자 행복, 슬픔, 공포 등으로 읽었다. 뉴욕의 판사들도, 르바인 실험의 심판자들도 판단 대상의 “전형적 태도와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형편없는 거짓말 탐지기일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와 같이 “정직하게 행동하는 부정직한 사람”이나 반대로 “부정직하게 행동하는 정직한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전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편견·선입견, 인종차별·이민자 혐오 등으로 발전

마지막으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배경과 맥락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근본에서부터 생각하지 않으면,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히는 게 보통이고, 허튼 오해와 잘못된 판단을 낳는 게 일반적이다. 인종 혐오나 이민자 차별이 일어나는 이유다. 글래드웰은 말한다. “낯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탐색에 실제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낯선 사람의 진실을 전부 알 수 있다는 오만이야말로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인류가 낯선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사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타자에 대한 불신과 공포로 움츠러들 것인가,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 삶의 새로운 규칙을 일구어 갈 것인가 하는 갈림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타인의 완벽한 해석은 불가능할지라도, 우리는 타인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글레드웰의 해법은 한 줄로 요약된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관용과 겸양, 타자를 대하는 인간의 기본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readingbook2020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