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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정치철학이 언제나 정치를 이긴다

언젠가 관념 이외에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책을 쓴 루소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지. 그 책의 제2판은 초판을 비웃은 사람들의 가죽으로 제본되어 있었다네. (토머스 칼라일)

데이비드 밀러의 『정치 철학』(이신철 옮김, 교유서가, 2022)에 나오는 말이다.

밀러에 따르면, 정치적 삶에 직접 개입하고자 한 정치철학자들은 대개 실패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등 그들은 강력한 통치자에게 조언해 왔다. 그들의 조언은 정치를 실제로 바꿨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정치철학자들이 정치적 사건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바가 드문 이유는 그들이 정치인과 일반 대중 모두가 지니는 관습적 믿음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정치인이든 대중이든 정치 철학자의 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정치철학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영향력을, 때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정치철학자들은 우리가 정치에 대해 말할 때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근본적 가정을 공격하고, 이러한 공격은 시간이 흐르면 결국 새로운 정치적 관념을 개화시키기 때문이다.

홉스는 정치를 세속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 주었고, 루소는 정치를 민주주의로 생각하는 법을 제안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정치를 무산계급의 눈으로 보는 법을 보여 주었다.

정치 철학은 그 시대의 관습적 지혜로는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정치적 도전에 직면할 때 필요해진다.

정치철학이 언제나 정치를 이긴다. 당장이 아닐 뿐.

승리할 때까지 정치철학은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걸러진다. 사상은 책, 팸플릿, 신문, 잡지 등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이어진. 성공한 정치철학자는 모두 미디어 친화적인 제자들 덕분에 자기 생각을 유포하고 보존하며 확산할 수 있었다.

정치 철학자 여러분, 그러니 좋은 편집자(제자) 만나서 만날만날 책과 팸플릿을 쓰셔요...^^;;

데이비드 밀러, 『정치 철학』, 이신철 옮김(교유서가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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