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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절각획선(切角劃線)

좋은 정부

정치적 회합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성원들이 보호되고 번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이 보호되고 번영하고 있음을 알려 주는 가장 확실한 증후는 무엇인가? 그것은 구성원들의 수와 인구다.

 

그러므로 그토록 논란거리인 좋은 정부의 증후를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하지 말라.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외국에서 들어오는 부, 귀중한 재화, 식민지 없이 시민들이 더 붐비고 증가하는 정부가 틀림없이 더 좋은 정부이며, 인민이 감소하고 쇠약해지는 정부가 더 나쁜 정부다.
 
계산하는 자들이여, 나머지는 당신의 일이다. 세고, 재고, 비교하라.
 
_ 장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김영욱 옮김(후마니타스, 201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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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답니다.
 
새벽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예전에 밑줄 쳐 둔 부분만 잠깐 훑어 읽었다.
 
일반 의지가 증발해 버린 듯한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은 홉스 모델을 연상하게 한다. 그 귀결은, 잘 알다시피, 끝없는 전쟁 또는 리바이어던(군주) 숭배다.
 
국제 정세도 현재 무지 불안하다. 세계 어느 곳이 21세기 보스니아가 될지, 무섭고 끔찍할 지경이다.
 
결국, 일반의지를 다시 세우는 계몽주의 2.0으로 나가야 할 텐데 싶은 마음이 이 책을 읽어 볼까 하는 충동을 일으켰다.
 
이 구절의 주석으로 루소는 그 유명한 자유 예찬을 펼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찬란한 국가라 하더라도 인구가 줄어든다면,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중략) 허울 좋은 안정과 지도자들의 평온보다는 국민 전체, 특히 다수 신분의 안녕에 신경 써야 한다. (중략)
 
폭동과 내란은 지도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지만 인민이 정말로 불행한 것은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누가 인민에게 폭정을 펼칠 것인지 다투는 동안에 인민의 불행이 완화될 수도 있다.
 
인민의 실제 번영과 재앙은 인민의 지속적인 상태에서 발생한다. 모든 것이 멍에를 지고 억눌려 있으면, 바로 그때 모든 것이 몰락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지도자들은 편하게 인민을 파괴한다.
 
'그들은 고독하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평화라 부른다.'
 
(중략)
 
옛날 그리스는 잔혹한 전쟁 한가운데에서 번창했다. 피는 철철 흘렀지만 온 나라가 사람들로 뒤덮였다.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살해, 추방, 내전 한가운데에서 우리 공화국은 그로 인해 더 강력해진 것 같다고. 이 모든 반목들로 인해 공화국이 악화된 것보다, 시민들의 덕, 풍속, 독립성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해 공화국을 강화했다고.
 
어느 정도의 동요는 영혼의 동력이 된다. 인류의 진정한 번영을 마련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자유다."
 
현재의 동요는 인민들에 의한 동요가 아니라 지배계층 내부의 동요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부디 번영으로 가는 진통이었으면 좋겠다.
 
인구의 기록적 감소가 불길한 증후이지만....ㅠㅠㅠ
 
ps. 이 책의 번역과 주석은 참 좋네요. 몇몇 역어가 독창적으로 낯설지만... 주석의 상세함이 모든 걸 초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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