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는 사람
여태천
정말로 뭔가를 보지 못할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일 뿐
사람들은 어서 여기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칠흑의 이 밤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누군가 또 다리를 건너나 보다.
이런 밤이면 인기척도 무섭다.
폭우로 불어난 물 때문인지
재난방송이 간격을 두고 울린다.
선한 의도가 때론 누군가의 목줄을 죄고
지금의 기쁨이 십 년 뒤의 후회가 될 수도 있는 법.
떠나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흙탕물은 단비가 되어 어딘가에 내리기도 하겠지만
이번 삶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텅 비어 버린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맞는다.
다리를 건너는 저 사람도 필경 우산이 없을 것이다.
젖을 대로 젖어서 건너는 것일 뿐
여기의 모든 생이 다 그러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과거는 반복으로 판명되었지만
내일을 저 구름의 모양만으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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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여태천의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민음사, 2020)에 실려 있다.
삶이란 무엇일까.
비 오는 한밤중에
다리를 건너는 일이다.
낮의 구름 모양으로는
밤의 재난을 알 수 없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내리는 폭우를 견디면서
다리를 건너는 날이 온다.
우산도 없이
젖을 대로 젖어서....
시인은 말한다.
“여기의 모든 생이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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