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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시 / 에세이 읽기

고독에 대하여

고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독은 비와 같다.
고독은 바다에서 저녁을 향해 오른다.
고독은 아득한 외딴 평원에서
언제나 고독을 품어 주는 하늘로 향한다.
그러다 비로소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동틀녘에 고독은 비가 되어 내린다.
모든 골목이 아침을 향할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몸뚱어리들이
실망과 슬픔에 서로를 놓아줄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침대에서 자야 할 때,
고독은 강물이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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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소유하지 않는 사랑』(김재혁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3)

 

이 시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김재혁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3)에 실려 있다.

고독은 초기부터 릴케 시의 핵심 개념이었다. 1902년 스물일곱 살의 릴케는 낯선 도시 파리에서 이 시를 썼다.

릴케에게 파리는 눈부시게 황홀한 예술의 낮과 소외감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고독의 밤이 겹쳐진 도시였다.

극도로 예민한 청년은 밤새 뒤척이면서 화려한 문명의 도시를 쓸쓸한 고독의 비로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저 찬란한 바깥에는 진실이 없고, 이 어두운 내면에만 진실이 있다!!!

그렇다면 탐구해야 할 것은 내면이 아닐까. 이것이 고독의 정체일 것이다.

나중에 『형상시집』(1906)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