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연의 첫 시집 『조이와의 키스』(민음사, 2018)는 폭력으로 가득한 슬픔의 세상에서 ‘기쁨’의 언어를 발굴하고 싶어 하는 애처로운 마음을 담았습니다.
세상의 표상은 더럽고 위협적입니다. “헝클어지는 머리칼/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 엄살쟁이야/ 주사 맞기 싫으면/ 선생님 뺨에 입을 맞춰 봐” 시 「병원놀이」의 한 구절입니다. 이 땅의 여자들이 흔하게 겪는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세상의 폭력에 지지 않습니다. 폭행하는 세계 속에서 시인은 곳곳에서 자아의 기쁨을 흩뿌리고 또 수확합니다.
“너의 아름다운 몸이 침대 위에서도 웅크려야 하는지/ 나는 와락 눈물이 안기는 걸 뿌리친 채로/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눈썹을 꺼내 네 발에 시를 썼어/ 아니 그건 코란이나 성경이었을지도 몰라”
이 시집은 눈물로 쓰는 기쁨의 시, 사랑으로 이룩한 경전입니다.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달빛이 그린 줄무늬에서, “가난을 모르는 척” 음악을 발견하는 겁니다. “앙상하고 추운 음색”일지라도 말이죠. 시 「오로라 꿈을 꾸는 밤」에 이 아름다운 연애가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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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꿈을 꾸는 밤
1인용 철제 침대에서 너와 포개어 자다가
잠이 깼어 홀로 일어나 네 발밑으로 가니
침대 난간 밖으로 길고 가느다란 너의 발이 빠져나와 있네
너의 아름다운 몸이 침대 위에서도 웅크려야 하는지
나는 와락 눈물이 안기는 걸 뿌리친 채로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눈썹을 꺼내 네 발에 시를 썼어
아니 그건 코란이나 성경이었을지도 몰라
블라인드 틈새로 달빛이 우리 몸에 그리는 줄무늬 위에 허밍을 놓았어
그건 앙상하고 추운 음색
누군가는 가난을 모르는 척 침대 머리맡에 창을 내었지
아, 마침 네가 꾸는 꿈이 창밖으로 지나가네
관을 우주로 쏘아 보내는 우주장(宇宙葬)인가 봐
우주에서 티타늄으로 된 관들이 여전히 여행 중이야
우주로 떠나기 전에 우리 오로라를 보자
지금 창 너머로
하늘을 삼키는 진홍 오로라
오로라를 뚫고
금속의 관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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