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론과 서평/책 읽기

재난 유토피아

레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정해영 옮김, 펜타그램, 2012)

 

1755년 11월 1일,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리히터 규모 8.5~9.0. 엄청난 지진은 이 아름다운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건물의 85%가 파괴되고, 사망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곧이어 찾아온 식량 부족과 감염병 때문에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다.

재난은 유럽인의 머릿속을 바꾸었다. 인간과 신의 관계에 확실한 균열이 생겨났다. 신정정치가 끝장나고 계몽주의가 일어섰다. 지진 발생 세 주 후, 볼테르는 「리스본 재앙에 관한 시」를 발표한다.

“이 세상의 끔찍한 폐허를 응시하라./ 이 잔해들, 이 파편들, 이 불운한 잿더미들을.”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자, 프랑스대혁명까지 100년이면 충분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서 2005년 뉴올리언스 대홍수까지 미국을 덮친 다섯 차례 재난을 연구하면서 문명비평가 레베카 솔닛은 볼테르의 태도를 이어받는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재난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할리우드 영화나 일본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병적 흥분”에 빠져서 폭력으로 타인을 제압하고 야수처럼 서로를 잡아먹을까.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정해영 옮김, 펜타그램, 2012)에 따르면, 이러한 상상은 “안정성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상층 엘리트의 공포, 즉 ‘엘리트 패닉’에 불과하다. “페허를 응시”하면 전혀 다른 현실이 나타난다. 재난의 피해자는 무질서를 즐기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었다. 솔닛이 자료에서 확인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수많은 재난 경험자들은 ‘재난의 악몽’이 아니라 ‘재난 유토피아’를 고백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성숙한 대구 시민들이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재난의 지옥 속에서도 인간은 공포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다. 자기 욕망을 억제하고 약자를 배려하면서 어떻게든 연대하고 기어이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생존 경쟁 대신 상호 부조가, 이기주의 대신 이타주의가 공동체 운영 원리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병원 앞에 남몰래 걸어 놓은 마스크가, 누군가 끼니마다 보내 주는 음식이, 외출과 모임을 자제하는 물리적 거리두기 실천이 바로 이러한 기적의 증거다.

거대한 재난은 낡은 사회 질서를 작동 불능으로 만든다. 그러나 인간은 패배자가 되는 대신 재난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사회를 실현해 낸다. 솔닛은 말한다. “재난은 파괴와 죽음의 절정인 동시에 시작이요 개방이다.”

1997년 국가 부도와 2008년 금융 위기에 이어 현재의 코로나 재난까지,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에 벌써 세 번째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위기를 맞이했다. 리스본 대지진 다음 유럽은 계몽을 실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재난을 계기로 어떤 사회를 발명하고 있는가. 대구의 기적을 어떻게 미래로 이어갈 것인가. 코로나가 우리한테 묻고 있다.

#readingbook2020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