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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한국 문학은 젊은 비평가를 어떻게 관리해 왔는가

 《자음과모음》 제44호(2020년 봄호), 작가-노동 특집이 실려 있다. 《자음과모음》 제44호(2020년 봄호), 작가-노동 특집이 실려 있다.


‘지식인-비평(가)’의 시대가 국가, 민족, 공동체, 집단 주체라는 단위를 통해 문학을 재단함으로써 작품의 개별성과 복수성을 박탈해 왔고, 이를 기존 비평의 무능으로 평가하는 입장이 등장합니다. (중략)

그리하여 각 작품의 분석적이고 세밀한 읽기를 통해 ‘공동체’의 윤리보다 ‘개별자’의 도덕을 강조하는 2000년대 전후의 ‘작가-비평가’가 출현합니다. (중략)

젊은 평론가들을 고정 멤버로 하여 신간들에 대한 서평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행하는 팀이 [주요 출판사에] 있었습니다. 즉 2009년을 전후로 일종의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이 형성되었으며 이 시스템 안에서 활동했던 평론가들은 ‘젊은 평론가’라는 호명 하에 여러 특집 기획에서 함께 묶여 필자로 초대되는 일이 잦았고 이러한 기획들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2010년대 비평 담론을 재생산했습니다. (중략)

저는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이 비평 장르를 출판산업의 한 영역으로 완전히 제도화하여 ‘작가-비평(가)’ 시대가 완성형이 되는 데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이러한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에서 2010년대 초반에 가장 주요하게 선택되었던 지면이 ‘리뷰’ 코너라는 점은 중요하게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중략) 대부분 잡지를 운영하는 편집위원들이 정해 준 텍스트에 대해 써야 했고, 이때 평론가란 어떤 텍스트가 다시 읽힐 만한 비평적 가치가 있는지를 선별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중략)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저를 더 이상 ‘작가-비평(가)’로 여기기 어려워졌습니다. 작품을 세밀히 읽는 것만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점점 더 많아졌고, 여러 문학잡지의 변화 속에서 어떤 기획의 성격에 따라 비평 장르 역시 큰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비평 장르가 완전히 재정의되는 일을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2020년 1월의 저로서는, (중략) 1960~1980년대의 ‘지식인-비평(가)’ 시기와 1990~2010년대의 ‘작가-비평(가)’ 시기를 거쳐 2020년에는 비평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이 시기의 비평가란 무엇을 뜻하는지 재정의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장은정, 「지나간 미래」, 《자음과모음》 제44호 2020년 봄호, 45~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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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한국 문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글을 누구나 읽게 될 것이다. 주니어 비평가 시스템을 운영했던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생각할 지점이 많다.

어쨌든 2020년대 초반에 이런 글이 발표되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이 글에 담긴 숫자(11년 동안 발표 원고 176편, 원고 매수 5728매, 원고료 총액 3390만 원, 1매당 원고료 5863원, 한 달 평균 수입 46만 원)도 무척 중요하지만, 새로운 비평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마음은 더 중요하다.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한다.


#readingbook202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