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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빈자의 미학, 한 건축가의 생을 건 약속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느린걸음, 2016)승효상, 『빈자의 미학』(느린걸음, 2016)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느린걸음, 2016)을 틈 내어 읽었다. 1996년 미건사에서 나왔다 품절된 것을 몇 해 전 느린걸음에서 다시 펴냈다. 절판되었을 때에는 헌책방에서 10만 원 넘는 고가에 판매되기도 한 책이다. 이 책은 영국의 한 건축학교 초청 강의록으로 쓰인 것이지만, 40대의 젊은 건축가였던 승효상이 자신의 미래를 걸고 쓴 건축 미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돌마루공소(충남 당진)돌마루공소(충남 당진)


책을 열면 위에 인용한 유명한 제사가 나오고 이어서 충남 당진 돌마루 공소의 사진이 있다. 별다른 장식 없이 줄 지은 의자만으로 꾸려진 예배당 천정에서 한 줄기 강한 빛이 쏟아진다. 어둠과 빛만으로 꾸려진 소박한 공간에서 흑백의 강한 대비가 시선을 끌어들이고 생각을 집중시킨다. 비어서 가득하다. “가장 본질적인 것만 남겨둠으로써 자신을 성찰하고 신과 대화할 수 있게 한 공간”이다. 이것은 승효상 건축의 압축된 상징이다.

책에 실려 있는 글은 세 편뿐이다. 「또 하나의 세기말에 서서」는 건축을 건축답게 하는 세 가지 요소로 합목적성, 장소성, 시대성을 제시한 후, ‘잘살아 보세’로 압축되는 새마을 운동 이후 나타난 한국 건축의 양상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시도한다. “우리가 물려받은 아름다운 금수강산과 그것을 철저히 유린하는 집짓기”라는 것이다. 집이 집답지 않고, 토지에 담긴 흔적과 단절되어 있으며, 시대가 지녀야 할 덕목을 내비치지 못할 때, 건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40대의 아직 신진 건축가인 승효상은 이러한 고통스러운 질문 앞에 자신을 세운다. 인간은 질문 속에서만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신의 흔적을 만질 수 있다. 승효상의 독창적 건축물들은 이러한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 

「빈자의 미학」은 「또 하나의 세기말에 서서」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다. 선명한 자기 선언이고, 앞날의 건축적 삶에 대한 맹서의 형태로 되어 있다. 승효상은 먼저 한국 현대 건축에서 세기말을 읽어 낸다.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쓰레기 같은 도시 건축이 날름거리는 졸부들의 거리”를 고발한 후, 소멸해 버린 한국 건축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다시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벼린다. 자유 연상 기법을 이용하듯, 승효상의 사유는 그의 마음을 울렸던 여러 예술 작품을 자유롭게 옮겨간다. 한 공모전에서 만난 학생 출품작에서 베케트로, 자코메티로, 김정희로, 루이스 바라간으로, 알바로 시자로, 미니멀리즘으로, 몬드리안으로, 김환기로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 저자는 마침내 ‘빈자의 미학’을 발견한다. 시대의 소란에 맞서는 침묵을, 가느다란 약함으로 표현하는 긴장된 절제의 힘을, 공허한 풍요를 이기는 소박한 의지의 아름다움을, 텅 빈 소외로 추락하지 않는 간략한 서정의 운동을 “현대 건축이 봉착한 한계”의 “탈출구”로 집약한다. 

「그 몇 가지 단상」은 ‘빈자의 미학’이라고 명명된 선언에 대한 몇 가지 탐구를 보여 준다. 승효상에 따르면, 건축이란 사람과 도시를 끊지 않고 맺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옛날 중림동이나 금호동 달동네 골목과 집이 보여 주는 가난한 이들의 건축은 이러한 열림의 실천을 보여 준다. 가난한 이들은 “없음으로 나눠 쓸 수밖에 없”음으로써 현대 건축의 난관을 돌파할 열린 건축을 무의식적으로 실현하면서,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걸을 수밖에 없는” 더 건강한 집을 짓는다. “무용(無用)의 공간”인 우리의 집 마당이나 “종묘 정전 앞의 비움의 공간”처럼 “우리 자신을 영원히 질문하게 하는 본질적 공간”을 열어 주는 건축이 빈자의 건축에 이미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빈자의 미학은 아직 논리를 갖추지 못한 선언적 단상 형태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 선언이 생을 건 약속이 되면서, 이후 승효상은 건축과 글에서 이 주제를 깊게 탐구해 독창적 건축성을 구축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것은 한 건축가의 미래에 참여하는 것이다. 동시에 현대의 천박한 삶의 한계를 실감하는 모두가 한 건축가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길이 열리는 기쁨을 맛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빈자의 미학』의 본문 편집 『빈자의 미학』의 본문 편집


한편, 이 책은 독창적 편집 면에서도 살펴볼 가치가 있다. 한글과 영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저자의 선언적 글이 오른쪽에서 서술을 이어가는 동안, 왼쪽에는 승효상의 공부를 담은 사진, 그림 등이 짤막한 감상과 함께 실려서 이러한 사유를 지탱하고 보충한다. 르 코르비지에의 「라투레트 수도원」,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이 파노라마처럼 배치되고, 이러한 인류사적 기념물이 촉발한 저자의 짧은 통찰이 이어져 간다. 왼쪽의 단상들만 따로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다. 깊이가 있다면 길이는 상관없다. 책의 목적은 정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편집은 본질적으로 시간을 조직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편집의 결과인 책은 물질화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훑어보고 넘겨봄으로써 독자들은 책의 공간적 특성을 자주 활용하지만 말이다. 왼쪽과 오른쪽이 분리된 채로 진행되는 이 책의 편집은 책에 대한 우리의 이러한 고정 관념을 해체한다. 양쪽이 독립적으로 흘러가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향해 메아리치도록 함으로써 이 책은 일종의 쌍둥이 건축물처럼 세워졌다. 책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와 관련하여 편집자의 가슴에 풍부한 영감을 주는 것이다. 

추천의 글에서 박노해 시인은 이 책이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하게 지어 올린 마음의 건축”이요, “‘삶의 혁명’ 선언”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책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찬사이자 ‘선언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명문을 길게 덧붙이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사람은 ‘선언’으로 산다. 그의 첫 마음이 써낸 결정적인 말. 그것은 생을 건 약속이다. 그것 하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앗길 수밖에 없는 선언. 선언은 시대의 최전선에 자신을 벌거벗은 과녁으로 세워 두는 행위이다. ‘선언자’는 자신을 위험과 비난 앞에 세워 버린 자이다. 자기 선언을 써 버린 자는 돌아갈 수 없다. 선언을 실천하고 살아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 선언이 나를 다그치고 나를 추방하고 거듭거듭 나를 강박하고 창조로 내몬다. 그리하여 선언은 스스로 빛난다. 선언이 걸어가고 선언이 일을 하고 선언이 지어 간다. 선언은 그 자체로 투쟁하다. 적을 폭로하고 육박전을 버리며 현실을 돌파한다. 선언을 세상에 던진 순간 기존 가치들의 좌표를 뒤흔든다. (중략) 어둠 속에 들려오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는 얼마나 희망인가. 그러니 용기를 내라. 자신만의 ‘선언’을 세상에 던져라. 결정적 선언을 가진 자는 죽지 않는다. 선언 없는 자들은 선언을 죽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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