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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신도시에는 거리의 생활이 없다

리처드 세넷의 『짓기와 거주하기』(김병화 옮김, 김영사, 2020)리처드 세넷, 『짓기와 거주하기』(김병화 옮김, 김영사, 2020)



어릴 때 살던 서울 약수동 달동네는 골목 천국이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집들이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좁고 넓은 길들을 거미줄처럼 뽑아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지나지 못할 골목에서 양보의 미덕을 익혔고, 동네 아이들 비밀 장소인 세 평 공터에서 놀면서 우정을 쌓았으며, 과일, 채소, 생선, 철물, 등유, 곡물, 잡화, 약국 등 구석구석 가게들을 구경도 하고 심부름도 다니면서 셈을 배웠다.

약수동 떠나 서른 해 가까이 살아온 동네가 서울 노원이다. 갈대 무성한 드넓은 벌판을 바둑판처럼 정리해 비슷한 건물들을 줄지은 신도시다. 등산할 수 있는 산과 산책할 수 있는 강이 있고, 집 근처 한두 블록 안에 꼭 공원이 있다. 백화점과 쇼핑센터, 종합병원과 대학, 미술관과 과학관, 학원가와 상점가 등도 마련되어 있다. 학교는 많고 술집은 적으며 교육열은 높고 범죄율은 낮은 편이다. 중산의 삶을 열망하는 수많은 이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고 쾌적하게 살아가기에 좋은 동네다.

비슷한 길이로 살았지만, 두 동네가 인생에 남긴 흔적은 완전히 다르다. 어린 시절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아무리 감안해도, 출근해서 다른 곳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다는 점을 고려해도, 노원에서 살면서 얻은 추억의 양이 너무나 적고, 그나마 가족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먹고사는 일에 쫓겨 마을 사람들과 사귀지 못한 잘못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중산층의 도시에는 건축 구조 자체가 이웃과 어울리는 걸 방해하는 측면도 있다.

리처드 세넷의 『짓기와 거주하기』(김병화 옮김, 김영사, 2020)에 따르면, 한국의 신도시는 “연속되는 똑같은 고층빌딩이 무한히 확장”된 “무차별”한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는 “똑같은 건물들이 외벽에 거대하게 적힌 숫자로 구별된다.” 문제는 “균일한 블록으로 설계”된 이러한 도시에서는 “거리의 생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리가 없다면 추억도 없다. 신도시 사람들은 발밑에는 주의해도, 주변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지하철역까지 수백 미터에 걸쳐 비슷한 풍경이 이어진다. 때때로 학교가 있고 아파트 이름은 달라지지만 골목의 신비도 없고 가게의 다채로움도 없다. 마음을 둘 만한 곳이 없으니, 사람들은 걷지 않고 목적지에서 목적지까지 빨리 이동할 뿐이다. 신도시에는 도로는 있어도 거리는 없고 건물은 있어도 마을은 없다. 아이들 교육을 마치면 많은 이들이 이사를 떠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세넷은 도시를 ‘물리적 도시’인 빌(ville)과 정신적 도시인 시테(cite)로 구별한다. 빌이 건물, 도로, 상하수도 등이 이룩하는 ‘짓기’의 대상이라면, 시테는 삶의 질, 이웃과의 유대, 장소에 대한 애착 등이 어울리는 ‘거주하기’의 대상이다. 짓기와 거주하기, 즉 빌과 시태의 어긋남은 현대 도시의 가장 큰 문제다. 약수동같이 다양한 경험이 생성될 수밖에 없는 이질적・중층적 공간은 불편할 수 있으나 풍요로운 경험을 가져오고, 신도시같이 단조롭고 균일한 공간은 효율적이지만 지루한 일상을 생성한다. 건물을 바꾸는 것만으로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쾌적한 건물에서 살아도 좋은 마을에서 살 수 없다면 인간은 전체로서 행복할 수 없다. 멀쩡한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고 서두를 게 아니라 사라진 마을을 복원하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할 때다. 


#readingbook2020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