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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조지 오웰, 그래픽 노블로 환생하다

피에르 크리스탱이 글을 쓰고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등이 그림을 그린 『조지 오웰』(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등 그림, 『조지 오웰』(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


『조지 오웰』(최정수 옮김, 마농지, 2020)은 피에르 크리스탱이 글을 쓰고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등 프랑스의 대표적 만화가들이 참여해 그림을 그린 그래픽 노블이다. 조지 오웰의 마흔여섯 해 인생을 오웰 이전의 오웰, 블레어가 오웰을 창조하다, 오웰은 누구인가 등 세 단계로 나누어서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국내에서 오웰의 평전이 드물지만은 않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조오지 오웰』(탐구당, 1981)에서 존 서덜랜드의 『오웰의 코』(민음사, 2020)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출간되어 왔다. 박홍규의 『조지 오웰 : 자유, 자연, 반권력의 정신』(이학사, 2003/ 푸른들녘, 2017), 고세훈의 『조지 오웰 : 지식인에 대한 보고서』(한길사, 2012), 아거의 『조지 오웰 - 기억하는 인간, 기록하는 작가』(인물과사상사, 2019) 등 국내 필자가 쓴 평전도 있다. 그래픽 노블로는 데이비드 스미스가 쓰고 마이크 모셔가 그린 『만화로 보는 조지 오웰, 빅브라더를 쏘다』(다른, 2018)가 있다.


『조지 오웰』의 한 장면 삶의 우발적 비극성을 상기시키는 『조지 오웰』의 한 장면.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조지 오웰의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육화된 기품이 있다. 이는 다른 책들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것이다. 오웰 삶의 결정적 순간을 보여 주는 전기적 사실들은 흑백의 세밀화를 통해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되고, 오웰의 작품에서 세심하게 선별한 장면들은 선명한 컬러를 통해 풍부한 상징성을 획득한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흑백과 컬러 그림을 교차시킴으로써 작가는 웰의 인생과 작품이 서로 침투하면서 인류사에 길이 남을 한 인물의 초상화를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뛰어난 연출력이야말로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영 제국 식민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 블레어가 고통스러운 밑바닥 생활과 현실 참여를 거쳐서 『동물농장』과 『1984』를 남긴 위대한 견자(見者) 조지 오웰이 되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작품의 세 장은 각각 ‘성장–참여–은둔’이라는 삶의 궤적을 반영한다. 

오웰은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당파를 지어” 동지들끼리 죽고 죽이는 스탈린적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웰은 ‘프롤레타리아’라 불리는 “보통 사람들의 위대함”을 믿었고, 노동자 계급이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따뜻함, 진정한 품위, 깊은 인간미”에서 궁극적 행복의 가능성을 찾았다. 식민지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 블레어는 스스로 제국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포기했고, 런던과 파리의 밑바닥 생활을 체험하면서 르포르타주 작가 조지 오웰로 변신했으며,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국민 방위군에 입대하는 등 참여를 그치지 않았으나 말년에는 현실 정치에서 발을 떼고 주라 섬에 은거해 “책을 쓰고 닭을 키우고 채소를 기르는 일”을 했다.

1951년 오랫동안 폐병을 앓았던 오웰은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빅브라더의 세상을 예언했던 1984년이 지나고도 36년이 더 흘렀으며, 또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도 이미 31년이 더 지났지만, 전 세계에서 오웰에 대한 사랑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오웰적’이라는 형용사는 갈수록 인간 세상의 상징이 되어 가는 중이다.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디지털 전체주의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아닌가. 죽을 때까지 어떠한 종류의 억압도 인정하지 않은 오웰의 단호함, 하층 계급의 삶에 대한 동지적 태도 등은 설령 오웰적 세상이 오더라도 우리 삶에 희망의 불빛을 던지는 등대가 될 것이다. 

『동물 농장』에 나오는 돼지 나폴레옹 부부『동물 농장』에 나오는 돼지 나폴레옹 부부


#readingbook2020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