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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일요일 노이로제


한 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 주에는 주말병인 ‘일요일 노이로제’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조금 보충해서 아래에 옮겨 둡니다.




일요일 노이로제


사람들은 흔히 고요함과 지루함을 혼동한다. 고요함은 바깥의 소리가 침묵하는 상태다. 내면의 귀가 일어서 마음의 소리를 좇는 자리다. 생활의 분주함이 가져오는 생각의 엉킨 실을 끊고 온전히 자아에 집중함으로써, 심신에 거름을 붓는 휴식의 시간이다. 고요 안에 깊이 잠길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나’와 마주서서 이 삶을 새롭힐 수 있다.

지루함은 일이 조용한 상태다. 한없이 몰려들던 일들이 어느새 멈추어 방심한 자리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 좋을……. 그런데 문득, 물음이 몰려든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생각하는 마음에서 공허가 일어선다. 참혹하고 끔찍하다. 잠자고 일하고 먹고 마시는 이 삶의 형식이 올바른 내용을 채우지 못한 것 같다. 이 허무가 무서워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듯한데, 무생각한 일이 또 다른 허무를 부추길까 싶어 도무지 흥미가 일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이 마음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아무튼 그냥 지루해.” 

무엇을 해도 의미가 없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의미가 없는 상태. 이야말로 현대인의 실존이다.

아우슈비츠의 철학자 빅토어 프랑클은 현대인의 ‘일요일 노이로제’를 경고한다. 한 주일 내내 부과된 임무를 책임지느라 시달린 이들이 휴식하지 못하고 주말에도 무언가 할 일을 찾아 헤매는 우울한 상태다.

인생의 무의미를 깨달을까 두려워 회사 일을 집에 가져와 부지런을 떨거나, 월요일이 빨리 와서 차라리 출근했으면 하고 바라는 도착증이 이로부터 나타난다. 아니면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고, 지치도록 쇼핑을 하고, 소셜미디어에 매달리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뒤적이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주말의 분주함을 괜히 일으켜 마음이 나락에 떨어지지 못하도록 애쓰는 불안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우리의 심신을 무너뜨리고 삶의 균형을 파괴하는 것은 이 행동들이다. 여우를 피하려다 사자를 만난 격이다. 지루함을 잊고자 취하는 행동들이 무의미 중독을 불러들인다. 일 중독, 쇼핑 중독, 알코올 중독, 수다 중독, 여행 중독, 미디어 중독……. 아무리 열심히 밟아도 제자리걸음인 쳇바퀴를 돌리는 데 온통 시간을 버리는. 이 행위들은 우리를 소진시킨다.

캐나다의 철학자 마크 호킨스는 한국에서 두 해를 영어 강사로 일했다.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틈새책방, 2018)에서 그는 “언제나 무언가에 몰입”할 수밖에 없고 “할 일이 끝도 없이 나타나는” 서울의 삶을 체험한 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문화의 현현”이라고 비판했다. 끝없는 분주함 끝에 찾아오는 공허를 막으려고 짜릿한 자극을 좇아 여기저기 기웃대는 사이, 우리 삶의 진정성이 통째로 증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루함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이 삶의 무의미’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의 파수꾼에 가깝다. 이 삶에 지루함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가 건강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지루함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무능력, 즉 지루함을 고요함으로 바꾸어 또 다른 삶의 입구를 열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주말이다. 분명히 ‘일요일 노이로제’가 당신한테 다가온다.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