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이번 주에는 스티브 잡스의 '바보가 되어라'라는 말을 계기로, 인간이 괴로움을 겪을 것이 뻔한데도 왜 안락을 버리고 과감하게 모험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서 써 보았습니다.
“바보가 되어라!”(Be foolish!)
스티브 잡스의 연설로 유명한 말이다. 이 구절을 ‘바보처럼 우직하라’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우직(愚直)이라면 ‘어리석고 고지식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오던 일의 가치를 믿고 고집스레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우선 머릿속에 떠오른다. 오랜 시간에 걸쳐 돌 하나하나를 옮긴 끝에 기어이 산 하나를 옮기는 데 성공한 어리석은 늙은이(愚公移山)가 생각나는 게 보통이리라. 동양문화의 유전자에서 ‘긍정적 바보’라면, 상식적으로 이 사람이 가장 먼저 발현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이 말은 “항상 배고파하라(Stay Hungry)”에 이어지고, 스티브 잡스라면 혁신의 영혼과 같은 사람인데, 하던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더욱이 기성사회로 나아가 자신의 가능성을 펼쳐야 할 졸업생한테 할 말은 아니다.
신의 뜻을 거슬러 스스로 앞날을 정하겠다고 발버둥 칠 때 어리석음(맹목)은 생겨난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아테(ate)라고 불렀다. 정해진 운명을 거부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 즉 오만(hybris) 때문에 누가 봐도 임박한 파멸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아킬레우스처럼 용맹하고 오뒷세우스처럼 지혜로운 영웅들이 왜 어리석음에 사로잡히는 것일까. 그들이 우리만 못한 인간이어서 그러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아이아스』에서 소포클레스는 “불운에서 벗어나지 못할 사람이 오래 살기를 갈망하는 건 창피한 일”이라면서 “훌륭하게 살다가 훌륭하게 죽는 것이 고귀한 인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훌륭한 삶에 대한 갈망 덕분에 영웅들은 인간이라면 감히 하지 못할 일을 행하고, 스스로 선택한 모험 덕분에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어리석음조차 감내한다.
삼시세끼를 먹는 ‘지금의 안락’에 붙잡혀서 ‘더 나은 삶’을 바라지 않는 상태는 노예적이다. 운명의 굴레를 벗기 위해 주어진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이들이 바로 영웅이다. 그리고 무모함 끝에 영웅이 맞는 비극을 통해 우리는 어디까지가 인간일 수 있는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의 위대함이다. 운명의 굴레를 거부하는 어리석음 탓에 인간은 무모할 수 있고, 무모함 덕분에 지금보다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
“바보가 되어라!”
스티브 잡스의 이 말은 우직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젊은이한테 기성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라, 주어진 안락을 거부하고 인생을 걸어서 모험에 나서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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