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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책과 미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한 주일에 한 번 쓰는 매일경제 칼럼. 지난주에는 제가 경험했던 창조성의 비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천재에 대한 낭만적인 신화는 점차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본래 그런 것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천재는 아이디어의 꾸준한 관리자이자 여러 사람과 잘 협업할 수 있는 프로세스의 설계자에 가깝습니다. 아래에 옮겨 둡니다.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편집자로 일하고 난 후부터 사람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당연히 글 쓰는 방법이 아니다. 작가들이 갖고 있는 창조성의 비밀을 알고 싶은 것이다. 

천재에 대한 낭만적 신화 탓인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창조성을 번뜩이는 영감이나 기발한 발상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많은 작가와 함께 일해 본 경험에 따르면, 창조성이란 아이디어 자체라기보다는 아이디어의 꾸준한 관리능력에 가깝다. 

유명작가 A는 아이디어를 놓고 편집자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만나는 자리마다, 어젯밤에, 마침 생각났다는 듯, 이런 이야기를 써 보면 어떻겠냐고 슬쩍 말을 흘린다. 상대방 반응이 시큰둥하면 그만이지만, 흥미를 보이면 줄줄 이야기를 쏟아낸다. 거기에 편집자도 생각을 덧붙이면서, 이야기 윤곽선을 갖추어간다. 그러나 밥자리 토크가 흔히 그렇듯, 이런 이야기가 곧바로 작품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수다들이 뒤섞이면서, 어느새 증발하게 마련이다.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은 나중에 찾아온다. 몇 해 후, A가 밥자리에서, 어젯밤에, 마침 생각났다는 듯, 지난번 나누었던 바로 그 이야기를 꺼낼 때다. 그사이 아이디어는 더욱 구체화하고, 이야기는 훨씬 풍성해졌다. 이때가 처음 듣는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찬사를 연발하면서 계약서를 내밀어야 할 시점이다. 

모든 작가가 같은 경로를 밟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이디어와 창작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스프린터 같은 작가도 있다. 하지만 좋은 작가는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를 망각하지 않는 자에 가깝다. 

마이클 브룩스의 『우연의 설계』(반니)는 창조적 발견에 관련된 최신 과학의 연구 성과를 집약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와 마주쳤을" 때, 이를 "오류라고 무시하지 않고 그 중요성을 알아차려 유용한 결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지혜"가 있을 때 아이디어는 비로소 기적을 일으킨다. 

천재적인 영감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오랜 탐구와 고된 노력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지 않는 한, 발상이란 반짝였다 사라지고 마는 우발적 사건에 불과하다. A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나한테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창조의 세계에 불로소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