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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작가의 수지’로부터 편집자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작가의 수지’로부터 편집자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봄에 순천향대와 동덕여대에서 시작하는 출판 강의에 소개할 책을 몇 권 추가했다. 제럴드 그로스의 『편집의 정석』(이은경 옮김, 메멘토, 2016), 스가쓰게 마사노부의 『편집의 즐거움』(신현호 옮김, 아이콘북스, 2016), 모리 히로시의 『작가의 수지』(김연한 옮김, 북스피어, 2017), 안정희의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이야기나무, 2015) 등이다. 네 책 모두 훌륭한 점이 있지만, 이중에서 학생들이 가장 신나게 읽을 책은 아마도 『작가의 수지』일 것이다. 돈이야말로 사람을 일단은 들뜨게 하는 법이니까.

작가 모리 히로시는 『모든 것이 F가 된다』(박춘상 옮김, 한즈미디어, 2015)로 국내에도 이름이 조금은 알려진, 그러나 일본에서는 2010년 아마존재팬이 선정한 20대 작가에 들 정도로 인기가 높은 작가다. 『작가의 수지』는 이 작가가 데뷔 이후 책을 써서, 또는 책과 관련해서 벌어들인 인세, 원고료, 강연료, 원작료 등 온갖 수입을 종류별로 기록한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작가들은 모두 다른 걱정 없이 작품만 쓸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갈망한다. 하지만 실제 벌어들이는 수입에 대해서는 경멸조로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작가가 정말로 돈 되는 직업”인지는, 지금까지 아무도 정확한 실체를 알지 못했다.(물론 문학 편집자들은 자기 담당 작가의 수입을 대략 알고는 있다.) 국내에서는 문단에 이름이 얼마만큼 알려진 작가조차, 연봉 수백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흉흉한 진실도 상당히 퍼져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가장 먼저, 또는 자주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사람이 작가 또는 작가 지망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아주 재미있는 만큼 전혀 말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선배 작가의 수입과 지출 목록을 안다고 해서, 작가의 삶이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논픽션이라면 몰라도 문학 작가의 경우에는 작품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고, 작품의 질을 끌어올리는 편이 좋다고 권하는 게 일반적이다. 각종 강연, 사인회, 낭독회 등을 아무리 해도 작품이 나쁘면 거의 수입은 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영화나 드라마 판권 등이 판매되는 등 2차적 저작권도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다.(왜 그런지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작가는 따로 영업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지금은 재능이 있어도 발굴되지 못하는 시대는 아니다. 히트작이라는 것은 무언가의 계기로 우발적으로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당연히 진실이지만, 곰팡내가 날 만큼 식상하다. 하지만 동료 작가나 지망생이 읽었을 때, 이 책에는 단 한 줄 귀감이 될 만한 말이 있다. 사실 문학 편집자로서 나 역시 누군가 충고를 원한다면 비슷한 충고를 해주고 싶다. 바로 다음과 같은 말이다.

“신인은 좌우지간 좋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발표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대한 최고의 홍보가 된다. 이것 말고는 홍보할 길이 없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생산할 것, 그리고 마감을 지킬 것. 1년에 한 작품씩 쓰는 식으로 느긋하게 창작해서는 설사 그 한 작품이 히트하더라도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이 말이 왜 대단한 말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궁금하면 따로 메시지를 보내셔도 좋다. 하지만 이 책을 교과서 삼아서 읽어야 할 사람들은 정작 따로 있다. 문학 편집자들 또는 마케터들이다. 창피할 노릇이지만 나는 스무 해 이상을 문학 편집자로 살았는데도, 이만한 목록을 따로 정리해 두지 못했다. 이번에 수업을 하면서, 따로 국내판을 만들어서 가르치려고 한다. 

『작가의 수지』를 읽다 보면, 한국과 일본의 출판산업 규모의 차이가 뼈아프게 다가온다. 예를 들면, 문예지 게재 원고료 차이만 해도 상당하다. 일본의 경우, 400자 원고지 매당 4000~6000엔 정도니까, 우리식의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환산하면 매당 22,000~33,000원 정도 된다. 국내 문예지 원고료가 10,000원 내외인 것을 고려할 때 거의 두세 배 차이가 난다. 초판 부수도 전혀 비교할 수 없고, 반양장 중심의 출판문화로 인하여 문고본 같은 두 번째 기회도 작가들한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학을 제대로 산업화하지 못한 나와 같은 편집자들의 중대한 실책으로 인해, 문학과 드라마, 영화, 게임 등 2차적 스토리 산업 간의 간극이 벌어지는 바람에 작가들의 수입이 확장될 기회가 거의 마련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출판사 쪽에서 먼저 대책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작가의 수지』는 문학 편집자들, 또는 이야기 산업의 종사자들에게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을 위한 선진 사례집이나 마찬가지다. 세부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는 데다, 문학 작품의 마케팅에서 제한된 역량으로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출판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출판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출판 사업을 이해하는 데 입문적 교과서로 삼기에 아주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