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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논어 공부

[시골마을에서 논어를 읽다 10] 기우불가급야(其愚不可及也) _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5-21 공자가 말했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를 드러내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음을 보였다. 그 지혜는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子曰, 甯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은둔과 출사의 때를 잡는 일은 정말 어렵다. 공자는 위나라 대부 영유의 예를 들어 나아감과 물러섬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영유에 대한 공자의 품평은 세간의 상식을 파괴한다. 흔히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뒤로 물러서 몸을 지키고, 세상에 도가 바로 섰을 때에는 나아가 뜻을 펼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유는 반대로 행하면서 살았다. 그는 나라의 정치가 잘될 때에는 한 걸음 물러서서 스스로 공적을 자랑할 일을 하지 않았다. 흐르는 대로 두어도 세사가 이치에 맞을 것이기에 굳이 머리를 짜서 일을 보태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공자는 이를 지혜롭다고 했다. 그러나 나라의 정치가 어그러졌을 때에는 앞으로 나서 마음과 힘을 다해 일을 치렀다. 누군가 그러지 않으면 혼란이 더하여 가면서 백성의 삶이 도탄에 빠질 것이므로, 물동이를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때문에 공자는 이를 어리석다고 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 일을 꾀하면 이름을 높이기 쉽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 일을 꾀하면 이름을 얻기 어려운 데다 목숨까지 잃기 쉽다. 그러나 영무자는 시대를 거슬러 일을 기획했으니 그 어수룩함을 감히 누가 좇을 수 있겠는가. 후세는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이런 이들을 일컬어 지사(志士)라 하는데, 그 굳센 뜻을 범인이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공자는 피로 얼룩진 현세를 초월해 은둔하지 않고, 세상 속에 뛰어들어 현세를 구제하려 했기에 영무자의 이런 행동을 크게 칭송했다.



자왈(子曰), 영무자(甯武子), 방유도즉지(邦有道則知), 방무도즉우(邦無道則愚). 

영무자(甯武子)는 위나라의 대부 영유(甯兪)를 말한다. 주희에 따르면, 영무자는 위나라 문공(文公)과 성공(成公) 두 임금을 섬겼다. 천하를 쟁패하여 패자의 자리에 올라서려는 진(晉)나라와 초나라 두 강대국 사이에 끼여서 위나라는 늘 위태로웠다. 위나라 문공은 정치를 잘했으므로, 영무자는 그 뜻을 가만히 좇을 뿐 나서서 일을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은 무도하여 패자인 진나라 문공에게 끌려가 나라를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영무자는 성공을 변호하러 진나라로 쫓아갔고, 또 재판에 진 성공이 주나라 감옥에 갇힐 때 수행하여 뒷일을 돌보았으며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구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영무자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모두 쏟으면서 어렵고 험난한 것을 피하지 않으면서, 자기 몸을 보전하고 임금을 구제하여 마침내 나라의 도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기지가급야(其知可及也), 기우불가급야(其愚不可及也).

한나라 때 학자들은 이 구절을 영무자가 어리석은 군주의 잘못된 군주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그 총명함을 감추고 어리석은 것처럼 행동했다고 풀이했다. 리링은 이 의견을 좇아 도회지계(韜晦之計), 즉 재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계책이라고 보았다. 리쩌허우 역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 생명을 보전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그러나 주희는 나라에 도가 없을 때 영무자가 오히려 나서서 안위를 돌보지 않고 어렵고 험한 일을 해냄으로써 자기 몸도 지키고 군주도 구제했는데, 이러는 것은 아주 위험하므로 어리석다고 보았다. 정약용은 “도가 있을 때 지혜로운 것 또한 사람이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기는 하나 오히려 그것은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가 없을 때 우직하게 실천하는 것은 충성과 사랑이 지극하지 않으면 억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어리석음은 미치기 어렵다고 말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공자가 이렇게 품평한 것은 나라가 평온하고 무사할 때에는 오히려 발길을 감추고 권력을 사양할 줄 알며,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는 일신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나라를 위해서 자기 몸을 바칠 줄 아는 용기를 권면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