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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논어 공부

[논어의 명문장] 욕거구이(欲居九夷, 구이 땅에서 살고 싶다)

선생님께서 구이(九夷) 땅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 

[그러자] 누군가 말했다. “누추한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거기에 산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

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공야장」 편에 나오는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돈다면[道不行, 乘桴浮于海]”이라는 구절과 같이 읽어야 한다. 사실 공자는 혼란한 세상을 떠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천하를 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포부가 수용되지 못하는 현실에 때때로 좌절하곤 했다. 그래서 탄식하듯이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선해서 읽어야 할 것은 ‘구이(九夷)’의 장소적 실체가 아니라 ‘살고 싶다’[欲居]라는 공자의 지향이다. 송나라 때 유학자 형병(邢昺)은 중원에 성인의 도가 행해지지 않았으므로 공자가 이 말을 한 것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요점을 꿰뚫은 것이다. 심지어 공자는 구이 같은 누추한 곳에서도 군자가 산다면 그 누추함을 없앨 수 있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이(夷)의 아홉 땅’을 문명교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야만의 땅으로 바라보는 중화주의의 시선을 일단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이’의 땅 역시 누추하지만 않고 아마 ‘이’의 고유한 문명이 있었을 것이고, 중원의 야만을 나름대로 비웃을 것이다. 이 대화에는 중원에서 ‘이’로 향하는 교화의 이데올로기만이 있을 뿐 이러한 상호성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공자는 누추한 ‘이’의 땅에서도 군자의 교화를 통해 그 누추함을 거두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명의 땅인 중원 천하에서는 어찌하여 그 일을 이룰 수 없었을까? 피를 부르는 폭력과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는 가혹한 법만을 우선시하는 춘추시대의 오랜 혼란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거꾸로 세워 문명을 야만으로 여기고 야만을 문명보다 숭상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나를 이기고 예의로 돌아가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실천의 중심에 세우고 싶었던 공자의 정치적인 이상은 이러한 곳에서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었다. 공자는 이런 삶의 상황에 좌절한 끝에 탄식한 것이다.

따라서 ‘살고 싶다’는 공자의 지향은 이사 가고 싶다는 거주의 욕망이 아니다. 예에 바탕을 둔 인의의 정치를 중원 땅에 실현하고 싶다는, 또는 그러한 정치가 행해졌던 옛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이 불러온 비탄의 역설이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九夷 : 이(夷)는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뜻한다.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가를 둘러싼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고대에는 융(戎), 적(狄), 만(蠻) 등 중국 사방의 오랑캐 땅을 가리켰는데, 은나라와 주나라 때에 이르면 점차 태산 동쪽 지역에 살던 동이(東夷)와 회수(淮水) 유역에 살던 회이(淮夷)를 가리키는 말로 집약되었다. 요컨대 중국 동쪽에 있는 오랑캐 나라이다. 한편,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는 구이를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라고 밝히고 있다. 마융(馬融)은 “동방의 이족(夷族)에는 아홉 종족이 있다.”[東方之夷 有九種]라고 했다. 양나라 때 학자인 황간(黃侃)은 구이를 현도(玄菟), 낙랑(樂浪), 고려(高麗), 만식(滿飾), 부유(鳧臾), 삭가(索家), 동도(東屠), 왜인(倭人), 천비(天鄙)라고 했다. 정약용은 현도와 낙랑은 한나라 무제 때 설치한 네 군의 이름에 해당하는데 이 말을 공자가 어찌 알겠느냐고 주장하여 황간의 견해를 논박했다. 류종목은 ‘구(九)’가 구체적 숫자가 아니라 ‘많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陋 : 누(陋)는 비루함, 즉 문화가 아직 모자라 야만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如之何 : 여지하(如之何)에서 如~何는 “~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뜻의 관용구이다. 지(之)는 인칭대사로 앞말인 ‘누추함[陋]’을 가리킨다.

君子居之 : 대부분 공자 자신 또는 보통명사인 군자로 해석하는데, 류종목은 군자가 기자(箕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이를 따르면, “군자가 살았는데”라고 과거형으로 해석해야 한다.

何陋之有 : 지(之)는 별다른 뜻이 없는 구조조사이다. 한문에서는 목적어를 동사 앞으로 보내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목적어와 동사 사이에 쓰는 말이다. 주희는 “군자가 사는 곳은 반드시 교화가 있을 터이니,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풀이했다. 정약용 역시 같은 견해이다. 당나라 때 유우석은 이 구절을 따서 「누실명(陋室銘)」을 지었다. 그는 “남양(南陽) 땅 제갈량(諸葛亮)의 초가집이요, 서촉(西蜀) 땅 양웅(揚雄)의 정자이니, 공자 말씀대로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허균 역시 이 구절을 빌려와 「누실명」을 짓고는 “마음은 편안하고 몸은 편하거늘, 누가 감히 누추함을 말하는가? 내가 누추하다고 하는 바는 몸과 이름이 함께 썩어 가는 것이다. 원헌(原憲)은 쑥대를 엮은 집에 살았고, 도잠(陶潛)은 아주 작은 집에 살았다네. 군자가 거기에 산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장주식은 이 구절을 군자는 자신의 뿌리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사람이므로 어디에서든 올바르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면서, 문화가 다른 낯선 자, 즉 타자의 자리를 군자는 늘 마련해 두고 있으므로 어디에 가서 살든지 상관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설이기는 하지만 현대적 해석으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