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번역/논어 공부

[논어의 명문장] 필야사무송호(必也使無訟乎, 반드시 소송이 없도록 하겠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송사를 듣고 처리하는 것은 나도 남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할 것이다.”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청송(聽訟)’은 소송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일입니다. ‘유(猶)’는 ‘마찬가지’ 또는 ‘다를 바 없다’는 말입니다. ‘인(人)’은 보통 ‘사람’으로 풀지만, 여기에서처럼 ‘남’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필야(必也)’는 ‘어찌해서든 반드시’라고 풀이하는데, 야(也)는 특별한 뜻 없이 음절을 맞추려고 넣은 어조사입니다. ‘사(使)’는 ‘~하게 하다’입니다. 뒤에 목적어 ‘백성들’이 생략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호(乎)’는 단정적인 뜻을 표시하는, 또는 의지를 표시하는 종결사입니다. ‘~하겠다’ ‘~하리라’ 등으로 해석합니다.

쉰 살 무렵 공자는 노나라에서 대사구(大司寇)라는 직책을 잠시 지낸 적이 있습니다. 대사구는 법을 다루는 관리들의 책임자였으므로 공자는 법률을 남들만큼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죄와 형벌의 세상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법(法)이 아니라 인(仁)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을 원했습니다. 무송(無訟), 즉 재판 없는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세상에서 재판이 사라지는 이상사회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려면 정치하는 사람의 밝은 덕이 이미 온 세상을 밝혀서 천하가 평화로워야 합니다. 그런 정치가 먼저 세상에 행해져야 합니다. 신창호의 말처럼, “예의와 도덕을 바로 세워 사람살이의 근본을 바르게 하고 서로 배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공자는 소송이 있을 때 법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소송 자체가 없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잘 다스려 백성들 역시 마음에 밝은 덕을 품도록 교화를 행하면, 사람들이 쓸데없이 송사를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니, 이로써 죄를 짓고 처벌을 엄격히 집행하는 사후약방문은 절로 없어질 겁니다. 『사서집주(四書集註)』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합니다. “소송을 듣는 것은 말단을 다스리고 그 흐름을 막는 것이다.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하면 소송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학』에서 말하는 지본(知本), 즉 근본을 안다고 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리쩌허우는 이 구절에서 법에 의한 통치, 즉 소송을 하고 법정이나 관청에 하소연하여 해결하기보다 서로 타협해서 화해하거나 사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하는 중국 특유의 문화-심리 구조가 탄생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새로운 정치, 즉 ‘협치(協治)’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골칫거리들을 모조리 국가 권력(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주민(자치)위원회 등에서 이미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의의 윤리’가 실행되는 공공 공간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상당히 시사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 권력이 시민사회의 자율을 억압하고 그 잠재력을 박탈하는 일이 아직도 흔한 세상에서 시민적 공동체가 형성되어 자율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동양의 문화적 전통에 기반을 둔 생각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리쩌허우는 이를 ‘예법(禮法)’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이끌어 법으로 들어가고, 법을 세속에 융합하는” 것, 즉 법률체제를 마련하고 이를 실행할 때 도덕을 중시하고 인정을 앞세우는 전통이 작용할 수 있도록 고민해 보자는 것입니다. 깊이 숙고할 가치가 있는, 상당히 흥미로운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