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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논어 공부

[논어의 명문장] 승부부해(乘桴浮海,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서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간다면, 나를 따를 사람은 아마 유(由, 자로)이리라.”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가 용맹을 좋아함은 나보다 낫지만, [뗏목 만들] 나무를 취할 곳이 없구나.”

子曰:“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공자는 천하를 편력했으나 등용되지 못하여 뜻을 펼칠 수 없었다. 희망에 지친 공자는 작은 뗏목이나 타고 바다를 떠돌며 세상 밖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이때에도 따를 사람은 자로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로에 대한 굳은 믿음과 함께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좌절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행동의 인간’이었던 자로는 공자의 진정한 뜻을 모르고, 그 말을 곧이 받아들여 공자가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 때 함께할 만큼 용맹한 자신을 알아준다고 기뻐했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 나이가 가장 많았으며, 마지막 순간을 제외하고는 공자를 평생 시종하면서 운명을 같이했다. 『논어』에 무려 마흔 번이나 등장하는 최다 출연자인 동시에 공자에게서 이런저런 이유로 가장 많이 꾸지람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로는 돈키호테 옆의 산초 판사와 같았다. 같이 천하를 편력하면서 온갖 고난을 같이했다. 그는 제자이자 동생이자 친구였으며, 이 장에서 말하듯 공자가 가장 믿었던 인물이었다. 공자의 불우했던 삶은 영혼의 계승자인 안회가 가난 속에서 죽고, 다시 행동의 동반자인 자로가 비참하게 죽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꺼져버렸다. 이 이야기는 공자와 자로의 아름다운 동반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여기에서 승부부해(乘桴浮海,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다), 승부지탄(乘桴之嘆, 뗏목을 타겠다고 탄식하다), 부해지탄(浮海之嘆, 바다를 떠돌겠다고 탄식하다)와 같은 성어들이 나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바른 도리가 행해지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긴다는 뜻이다. 한편, 마지막 구절인 무소취재(無所取材)라는 말에 담긴 공자의 뜻을 둘러싸고 한나라 때의 정현(鄭玄)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해석 논란이 있었다. 이는 아래의 주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道不行 : 도불행(道不行)은 공자 자신의 도(정치적 이상)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는 천하를 떠돌던 도중(기원전 497~기원전 484)이나 노나라로 돌아간 후(기원전 484~기원전 479)에 이 말을 했을 것이다. 리쩌허우는 조건문으로 보아 “나의 주장이 행해지지 않는다면”이라고 풀이했다. 이홍표는 “천하에 어진 정치가 행해지지 않는다”라고 해석했다. 심경호 역시 “올바른 도리가 행해지지 않아 불의와 부조리가 만연한 상태”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이는 공자 자신의 좌절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게 문맥상 타당하다.

乘桴浮于海 : 마융(馬融)에 따르면, 부(桴)는 대나무로 엮은 작은 뗏목이다. 부우해(浮于海)는 “바다에 둥둥 떠 있다”는 뜻이다. 세상 바깥으로 나간다(은거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고, 도가 행해질 곳을 향해서 떠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부는 작은 뗏목이므로 이것으로써 바다를 항해할 수는 없다. 잠시 바다 위에 떠 있겠다는 말이다. 따라서 후자보다는 전자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아 보인다. 리쩌허우는 이 구절을 뜻을 펴지 못할 때에는 자연 속에 은둔하는 중국적 사유의 중요한 전통을 드러낸 것으로 보았다.

其由與 : 기(其)는 ‘아마’라는 뜻의 부사이다. 유(由)는 자로의 이름이다. 여(與)는 기(其)와 함께 쓰이면 추측의 뜻을 나타내는데, 공자가 실제로는 떠날 뜻이 없었으므로 이 말을 쓴 것이다. 

由也好勇過我 : 호용(好勇)은 용맹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지혜만큼이나 용맹을 사랑한 인물이다. 「헌문(憲問)」에서 “인(仁)한 자에게는 반드시 용맹이 있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공자 본인 역시 아버지 숙량흘을 닮아 덩치가 커다랗고 힘이 셌다. 이 구절은 자로의 용맹이 자신을 뛰어넘는다고 칭찬한 것이다.

無所取材 : 정현(鄭玄)은 ‘재(材)’를 재료로 보았다. 이를 따르면 ‘취재(取材)’는 뗏목을 만들 나무를 얻는다는 뜻이다. 주희는 ‘재’를 재탁(裁度), 즉 사리를 헤아린다는 뜻으로 보았다. 이를 따르면 ‘무소취재’는 사리를 분별하여 의로움에 맞도록 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정약용은 주희와 같이 ‘재’를 ‘헤아리다’는 뜻으로 보았지만, ‘무소취재’는 “[공자를 따르려는 마음에] 사리의 타당성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풀이해 ‘호용(好勇)’이라는 말을 보충한다고 해석했다.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도는 것은 위험천만하므로 사리를 아는 사람은 따르지 않으리라는 주장이다. 김용옥 역시 주희를 좇아서, 도가 행해지지 않는 데 대한 공자의 절망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의 용맹함이 받아들여진 데 대한 기쁨만을 표시한 자로를 타박한 말로 풀이했다. 양백준(楊伯峻)은 ‘재’를 어조사 재(哉)로 보았다. 이를 따르면 ‘취재’는 취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리쩌허우는 ‘재’를 ‘절제’로 보아, 무소취재(無所取材)를 “[자로가] 자신을 절제하는 법을 모른다”라고 해석했다. 부남철은 ‘재’를 ‘판단력’으로 보고, 무소취재를 냉철한 판단력에서는 취할 바가 없다고 풀이했다. 김원중과 황종원은 ‘재’를 ‘재주’로 보고, 무소취재를 [자로의] 재주는 취할 바가 없다고 풀이했다. 공자가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분위기이므로, 정현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듯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공자가 사실 세상을 떠날 뜻이 없음을 은근히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