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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논어 공부

[논어의 명문장] 약성여인즉오기감(若聖與仁則吾豈敢, 성이나 인이라면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성(聖)이나 인(仁)이라면,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다만 그것(성이나 인)을 배우는 데 싫증내지 않고, [성이나 인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점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공서화가 말했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본받을 수 없는 점입니다.”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


『논어』 「술이(述而)」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술이」 편의 두 번째 구절인 “배우면서 싫증내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면서 게으르지 않은 것”과 똑같은 문장이다. 공자는 이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이 구절에서는 그 배움과 가르침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곧 ‘성(聖)’과 ‘인(仁)’이다. 공자가 말하는 성과 인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공자는 제자를 가르칠 때 사람이나 상황에 맞추어 필요한 말을 하곤 했는데, 이 탓에 오히려 아무도 그 정확한 뜻을 모르게 되었다. 다만 공자가 이와 비슷한 말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보아, 그의 지향이 성과 인에 있었던 것만은 매우 분명하다.

한편, 이 구절은 역시 「술이」 편에 나오는 “성인을 내가 만나 볼 수 없을 바에야 군자라도 만났으면 좋겠다.”라는 구절과 같이 읽는 것이 좋다. 성과 인은 공자가 추구하던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이었다. 공자 생전에 이미 제자들은 공자를 성인이나 인자(仁者)로 추앙한 모양인데, 공자는 이런 대접을 굳이 거부했다. 성이나 인은 공자조차 함부로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하기 힘든 높은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성이나 인이라면, 내가 어찌 [그 말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주희는 이 말을 공자가 스스로 겸손함을 드러낸 것으로 보았다. 배우는 데 싫증내지 않고[不厭], 가르치는 데 게으르지 않는[不倦] 일 자체가 성과 인을 이미 마음에 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스승의 마음을 어느새 알아차린 공서화의 답 역시 이런 점을 은근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공자를 성인으로 추앙해 이를 기어이 실현한 것은 나중 일이다. 공자가 성인을 만나볼 수 없다고 한 것은 아마도 자신조차 거기에 포함한 발언일 것이다. 

리링은 여기에서 공자가 성이나 인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겸양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자가 말하는 성인은 요임금이나 순임금이고 인자는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 백이(伯夷), 숙제(叔齊) 등인데, 이들은 공자조차 그 성취를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지극한 경지에 있었다. 따라서 공자는 그 반열에 오르고자 꾸준히 노력했고, 그 가르침을 남에게 전하는 데 쉴 틈이 없었다고 한 것이다. 

오로지 마음을 하나로 해서 성인의 가르침을 좇고, 뜻을 다해서 남들과 이를 나누는 것은 공자조차 어려워했거늘, 한낱 필부는 어떻겠는가. 천천히, 한평생 애쓰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若聖與仁, 則吾豈敢?  ‘약(若)’은 접속사로 ‘만약 ~라면’이다. 주희는 성(聖)과 인(仁)을 공자가 추구하는 가치로 보았지만, 김도련은 그 가치를 실현한 사람으로 보아 성인(聖人)과 인자(仁者)로 풀이했다. 주희는 ‘성’을 ‘[하늘의] 커다란 도가 [언행에] 완전히 녹아 자연스러운 것[大化]’으로, ‘인’을 ‘마음의 덕이 온전하고 사람의 도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았다. ‘즉(則)’은 접속사로 앞뒤 문장의 대비를 나타낸다. ‘감(敢)’은 부사로 ‘감히’ 또는 동사로 ‘감당하다’로 옮긴다. 부사라면 동사가 생략되었으므로 보충해야 한다. “어찌 감히 바라겠는가?” “어찌 감히 자처하겠는가?” 등으로 해석한다. 뜻은 동사로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억(抑)’은 접속사로 역접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런데”의 뜻이다. 신창호는 ‘기껏해야’로 풀었다. 일반적으로 ‘위지(爲之)’는 주희를 좇아 ‘성과 인을 행하다, 실천하다’라고 풀이한다. 그런데 정약용은 ‘위’를 ‘배우다’의 뜻으로 보았다. 공자가 “성인과 인자를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으로 늘 그 언행을 배우려 했다는 것이다. 김도련 역시 “배우는 것은 장차 성인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정약용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를 따랐다. 리쩌허우는 ‘노력하다’로 풀었는데 같은 맥락이다. ‘회인(誨人)’은, 주희에 따르면, 성과 인의 도리로써 남을 가르치는 일을 말한다. 

則可謂云爾已矣 ‘즉’은 앞문장과 마찬가지로 역접의 접속사다. 정약용은 ‘운이이의(云爾已矣)’를 모두 어조사로 보고, 넉 자나 연속해서 쓴 것은 “비록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두려워하고 움츠리는 마음이 있어서”라고 했다. 『논어언해』에서는 이 넉 자를 ‘~ 따름이다’라고 풀이했다. 장백잠은 ‘이(爾)’가 ‘이것[此]’이라는 뜻으로, 앞문장 “위지불염(爲之不厭) 회인불권(誨人不倦)”을 받는다고 보았다. 류종목도 ‘운이(云爾)’를 ‘이러할 뿐’이라고 새긴다. 이때 ‘이의(已矣)’는 어조사로 단정의 뜻을 나타낸다. 이때에는 이 문장을 “이러하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김종무는 “그런대로 괜찮다고 할 것이다”로 풀었는데, 공자의 겸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公西華 공서화(公西華)는 본래 이름은 ‘공서적(公西赤)으로, 자가 자화(子華)여서 공서화라고 했다. 공자가 천하를 돌아다닐 때 받아들인 제자로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외교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正唯弟子不能學也 ‘정(正)’은 부사로 ‘곧’ 또는 ‘바로’라는 뜻이다. ‘유(唯)’는 ‘유(惟)’나 ‘유(維)’와 마찬가지로 ‘~이다’로 풀이한다. ‘학(學)’은 보통 ‘배우다’로 풀지만, 류종목과 신창호는 ‘본받다’로 새겼다. 대화 맥락상 자연스럽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본받을 수 없는 점입니다.” 이 답은 외교에 능했다는 공서화의 매끄러운 말솜씨를 보여준다. 공자가 겸양의 뜻을 보인 것을 알아채고 이와 같이 말한 것이라고 주희는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