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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맹자의 농사법 _ 홍동 마을에서 보낸 편지


창으로 들어오는 새벽 첫 빛에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늦은 잠이 줄고, 새벽에 깨는 일이 조금씩 늘어갑니다. 세월을 미리 대비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은 언제나 몸 가는 곳을 뒤늦게 좇는 것만 같습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립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호미 한 자루만 들고 집 뒤쪽 텃밭에 나갑니다. 뒷산 부엽을 긁어서 덮고 왕겨를 덧입혔지만, 자라는 풀들을 어쩔 수는 없습니다. 이랑 사이로 비죽비죽 솟아오르는 풀들을 하나하나 솎습니다. 평일에는 각자 삶을 살고, 주말에만 밭을 손대다 보니 그사이 무성하기 일쑤입니다.

지난 가을부터 홍동에서 몸을 쉬면서 ‘사람이 풀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풀들은 과연 힘이 아주 셉니다. 잠깐인데도 발목까지 차오르고, 한 주를 거르면 무릎까지 치솟습니다. 장마 지난 후에는 더 극성이라는데, 벌써부터 슬며시 마음이 두렵고 바빠집니다. 자연과 차마 싸울 수는 없으니, 산을 여러 번 오르내리면서 부엽을 모아 덮고 또 덮어갈 수밖에 없겠죠.

처음으로 밭에 올라 땅을 만지고 마늘과 양파를 심으면서 어디에선가 쿵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위라도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두리번거려도 주변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들려오는 겁니다. 쿵, 쿵, 쿵! 쿵, 쿵, 쿵! 흙장난을 그만둔 지 거의 마흔 해 만에 땅에 손을 넣으니 정말 따스했습니다. 가슴속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장화 밑으로 땅의 알갱이들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맑디맑은 바람이 입속으로, 콧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손끝에서 발끝에서 머리끝에서 움직이는 어떤 기운이 몸 가운데에서 마주쳤습니다. 심장이 두근, 하고 꿈틀댔습니다. 그 순간 온 생명과 이어진 듯한,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신체 안쪽에서 작은 소리를 들었던 겁니다. 영혼의 북소리를 말입니다.

소리의 정체를 해독하기 위해 평생 일해 온 습관대로 일단 땅을 거대한 책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책 속 세계는 아름답고 신비롭고 풍요롭습니다. 몽테뉴 말마따나, “삶이라는 여행에 가져갈 수 있는 최고의 양식”입니다. 영혼의 문을 직접 두드려 속삭이고, 마음의 거문고를 한 줄 한 줄 뜯어 가면서 이야기를 건넵니다. 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개가 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잎이 푸르러지는가 하면 열매가 순식간에 누레지고 붉어집니다. 주말에 홍동에 내려와 텃밭을 시작하고 나서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음속의 북을 울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른 봄부터 감자, 부추, 시금치, 당근, 완두, 오이, 가지, 토마토, 콜라비, 호박 등에다 각종 쌈 채소를 밭 여기저기에 나누어 심으면서 과연 씨앗이 싹을 내 단단한 흙을 뚫을까, 젓가락같이 가는 모종이 키를 키울까 하고 근심했습니다. 그런데 싹이 터서는 튼튼히 자라고, 세운 지주를 타서 쭉쭉 하늘로 뻗는 걸 보면서, 마음이 느껴 움직이고 몸이 근질거렸습니다. 그 생명의 약동 앞에서 생각이 망연해지고 표현의 길이 툭툭 끊어졌습니다. 땅이라는 책은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몸이 농부로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저는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괜히 조급해집니다.

그러다가 문득 책에서 읽은 맹자의 농사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조장(助長)이라는 이상한 농사법에 대한 것입니다. 작물이 더디 자라는 것을 참다못한 농부가 땅에서 싹을 조금씩 잡아당겨서 억지로 자라게 하고는 새 농사법을 발명한 양 의기양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음 날 해가 떠오르자 싹은 모두 말라죽었습니다. 그러니 조바심치면서는 땅의 문자를 읽을 수 없습니다. 생명의 농사가 아니라 죽음의 농사밖에는 지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약을 치고 촉진제를 뿌리는 농사가 조장하는 농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오직 땅의 힘에 맡긴 채 아무 조처 없이 두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맹자는 놓아두되 내버려두지는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싹 밑의 잡초를 뽑고, 부지런히 김을 매주라고 합니다. 작물이 자라고 싶어 하는 땅으로 만들어 작물을 도우라고 합니다. 그러면 작물은 저절로 풍요로워진다는 겁니다. 『손자병법』을 빌리자면, 싸우기 전에 이기는 농사입니다. 농사를 짓기 전에 이미 풍년이 들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현자들의 농사법입니다.

농사를 이왕 짓기 시작했으니, 몸속에서 역동을 일으키는 땅의 문자들을 읽어 생명의 농사를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마음을 고요히 하고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겨가면서 느리게 살아가야겠지요. 새벽 텃밭에 나가 풀들을 솎으면서 『논어』 한 구절을 외어봅니다. “서두르면 도달하지 못한다.”(欲速則不達) 이번 주에는 마을 사람들과 홍동밝맑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할 때 이 말을 읽겠습니다.


*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행하는 《농경나눔터》에 기고한 글입니다. 여기에 옮겨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