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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雜文)/공감과 성찰

봄날, 새로운 도서관을 맞이하며(세계일보 칼럼)


봄날, 새로운 도서관을 맞이하며


농부들의 희망 토종 ‘씨앗도서관’

전국으로 퍼져 우리 씨앗 지키길


들빛은 아직 눈으로 덮여 희기만 한데, 마음은 봄으로 푸르게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목이 절로 옷깃 속으로 들어간다. 겨우내 한가롭던 시골 마을이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올해 봄부터는 텃밭을 일구려 하기에 생각이 분주하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 한 줄기 한 줄기, 매일 조금씩 풀려 가는 땅의 움직임에 생기가 느껴져 예사롭지만은 않다.


지난 늦가을에 심은 마늘과 양파의 땅속 소식도 궁금하다. 특히 마늘은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오랫동안 애지중지 대물림한 토종 씨마늘이어서, 부엽을 덮지 않은 내 게으름 탓으로 매서운 추위에 혹여 상하지나 않았을지 애를 졸인다. 만약에 이 마늘에 싹이 트지 않으면, 토종 마늘 한 종의 대를 끊는 셈이어서 죄를 어찌 감당할까 싶다.


도시에서만 자란 나로서는, 농사라면 몬산토 같은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종자 가게에서 해마다 씨앗을 사다가 심어 먹는 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농부마다 자기 논밭에서 직접 씨를 받아 대물림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하기야 최신 기술로 개량된 종자도 나름 좋겠지만, 제 땅에서 오랫동안 몸을 맞춘 씨앗만큼 좋기야 하겠는가. 그동안 책을 만들면서 ‘씨종자’라는 말을 여러 번 마주쳤겠으나, 그 말의 진짜 값이나 무게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무언가 먹을 때에는 이렇게 수천 년 동안 대물려 가면서 씨앗에 쌓아온 농부들의 시간을 함께 먹는 셈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갈피인 지난주에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시골 마을인 갓골에 작지만 중요한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토종 씨앗 도서관인 ‘홍성씨앗도서관’이 문을 연 것이다. 마을에서 집집마다 대대로 가꾸어 온 씨앗 80종을 포함해 전국에서 기증받은 씨앗을 한데 모아 200여 종으로 첫 발을 떼었다. 2003년 마을에서 첫 논의가 시작되고, 2010년 마을 사람 몇이 모여서 우리 씨앗의 중요성을 성찰하면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의 문제점을 본격 공부한 지 다섯 해 만에 갓골생태농업연구소의 한 칸을 얻어 작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도서관’이 이름에 들어간 것은 봄에 씨앗을 빌려 주고 가을에 돌려받기 때문이다. 씨앗은 단지 유리병에 보관하는 것만으로는 온전히 지킬 수 없고, 땅에 뿌려져서 자연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만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도서관의 책들이 대여되고 ‘읽기’를 통해서 더 많은 책을 낳는 것처럼, 씨앗 역시 ‘농사’를 통해 더 많이 퍼뜨려질 수 있다. 이런 취지로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씨앗 박물관’이 아니라 더 많은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씨앗 도서관’이 되었다.


IMF 사태 이후, 국내 씨앗 사업은 모두 외국 씨앗 장사꾼들 손아귀로 들어갔다. 씨앗을 생명이 아니라 상품으로만 바라보는 초국적 자본은 씨앗의 유전자를 강제로 비틀고 조작해서 변형한 채로 시장에 내놓는다. 한 번 산 씨앗을 다시 살 수밖에 없도록 하려고, 농부들이 씨를 받지 못하도록 한 해 이상 땅에서 자라지 못하게 생명력을 떨어뜨린 불임의 씨앗까지 내놓았다고 한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자생으로 자라거나 사람들이 길러온 식물을 지식재산권으로 등록해 사유화한 후 어느 날 갑자기 청구서를 들이미는 것은 여반사이다. 이와 같은 ‘씨앗의 종속’은 곧 ‘농업의 종속’을 가져오고, ‘농업의 종속’은 곧 ‘식량의 종속’을 가져온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점차 우리 밥상은 몇몇 기업의 이익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불쌍한 처지로 전락했다.


뒤늦게나마 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토종 씨앗을 보관하고 대여해서 퍼뜨리는 역할을 맡은 ‘씨앗도서관’이 생겨난 것은 이런 뜻에서 정말 다행한 일이다. 우리 밥상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더 늦기 전에 전국 온 마을마다 대대로 물려온 씨앗을 담을 도서관이 생겨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빌려주고 돌려받는 일을 시급히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장은수 순천향대 초빙교수·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