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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후한서]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 / 주간한국

[주간한국]에 박대종의 "어원 이야기"가 연재 중이다. 늘 재미있게 있었던 칼럼인데, 이번 칼럼 제목은 "道란?"이었다. 내용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의 유래를 다루고 있는데, 이 말이 영국의 속담을 옮긴 말이라는 것은 이 글을 읽고 처음 알았다. 이 칼럼 뒤쪽에 [후한서]를 언급한 부분이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1774년 조선 영조 임금 당시 김진구(金振久) 등을 뽑을 때 과거 시제는 "有志者事竟成(유지자사경성)"이었는데, 이는 "뜻이 있는 자는 일이 필경 이루어진다"라는 뜻으로 의미상 서로 통하는 말이다. 
이 말의 출전은 중국 후한 광무제(B.C.6~A.D.57) 때로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간다. 대장군 경감은 축아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그러한 성공에 대해 광무제는 대장군에게 "앞서 그대가 남양에 가서 큰 책략을 세운 것에 대해 짐은 항상 다른 사람들과 뜻이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이 있는 사람은 일이 필경 성취되는구려(有志者事竟成也)"라고 말했다. 

한나라의 먼 황족으로 태어나서 전한 조정을 멸망시킨 왕망에 반항해서 남양 땅에 근거를 두고 봉기해 마침내 왕망의 신나라를 무찌르고 후한 200년의 역사를 연 광무제는 [후한서] 곳곳에 많은 에피소드들을 남기고 있다. 그 일화 중 일부는 대대로 귀감이 되어 인구에 회자되었는데, 위에 인용한 구절 역시 후세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마음속 뜻을 잃지 않았던 많은 이들을 격려했다. 그런데 위 칼럼은 원문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인용되어 사소하지만 정확지 않은 인용을 반복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원문은 대략 다음과 같다. 


며칠 뒤 거가(車駕)가 임치현(臨淄縣)에 이르러 [광무제가] 몸소 군대를 위로하자, 뭇 신하들이 크게 모였다. 황제가 경엄에게 말했다. “옛날 한신(韓信)이 역하(歷下)에서 [제나라 군대를] 무찔러 [한나라의] 기틀을 열었는데, 이제 장군이 축아현(祝阿縣)을 공격해 왕적(王跡)을 없애 버렸다. 이 모두가 제나라의 서쪽 경계이니 공은 서로를 빗대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한신은 [제나라를] 공격했을 때에는 이미 항복을 받은 후였지만, 장군은 홀로 강한 적을 쳐서 무찔렀으니 공을 세우기가 한신보다 어려웠다. 또 전횡(田橫)이 역생(酈生, 역이기)을 삶아 죽였다. 나중에 전횡이 항복했을 때, 고제(高帝, 한 고조 유방)께서는 위위(衛尉)에게 조서를 내려 복수하지 못하도록 했다. 장보(張步) 역시 전에 복륭(伏隆)을 살해한 바 있다. 만약 장보가 돌아와서 명령에 따른다면, 나 역시 마땅히 대사도(大司徒)에게 조서를 내려 그 원한을 풀어 버리도록 할 것이니 또 일이 매우 비슷하다. 장군은 전에 남양군(南陽郡)에 있었을 때 이와 같은 큰 계책을 세웠다. [나는] 항상 [그 뜻이] 너무 광활하여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여겼는데, 뜻이 있는 자는 일을 끝내 이루는구나!”




여기서 남양군에서 세웠다는 큰 계책은 이엄이 단 주해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황제가 용릉향(舂陵鄕)에 행차했을 때 경엄이 따라갔는데, 그때 상곡군(上谷郡)의 병사들을 거두어 팽총(彭寵)을 정벌하고, 장풍(張豊)을 취하며, 장보(張步) 등을 평정하라고 청했던 일을 말한다." 이 일화의 주인공 경엄(耿弇)은 경감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정확한 발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칼럼에서 "다른 사람과 뜻이 달라"로 인용한 단어는 원문에 "낙낙(落落)"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품은 뜻이 광활하고 원대하다는 의미이다. 즉, 광무제가 그 말을 들었던 당시에는 뜻이 너무 커서 오히려 허황하게 들렸는데 이제 경엄이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으니, 뜻을 품은 자가 그 뜻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이를 이룰 수 있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사소한 차이지만 원문 쪽이 훨씬 웅숭깊어 보인다. 고전은 가능하면 원문을 확인해 인용해야 그 뜻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뜻을 더 깊게 음미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