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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職)/책 만드는 일

여행 블로그는 어떻게 책이 되는가?

지난 1월 14일 HK 여행작가아카데미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현실적인 충고를 해보려고 나름대로 애쓴 글이다. 여기에 옮겨 둔다. 아래는 HK 여행작가아카데미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이다. 링크를 붙여 인용한다.





여행 블로그는 어떻게 책이 되는가?



1. 저자가 아니라 편집자가 책을 내고 싶을 때에만 출판할 수 있다.

자비출판을 할 게 아니라면 책은 필자가 내고 싶다고 해서 출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편집자의 눈에 들어야 출판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려고 할 때, 편집자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편집자 눈에 들기란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가령, 편집자가 인천 여행을 여행자로서 가려고 할 때라면 블로그를 방문할 수 있겠지만, 편집자로서 인천 관련 여행서를 내려고 한다면 인터넷부터 검색해서 필자를 찾는 경우는 드물 겁니다.


2. 편집자는 블로그가 아니라 관련 여행서나 잡지부터 읽기 시작한다.

여행서를 기획한다면, 편집자는 블로그가 아니라 서점으로 가서 동료 편집자들이 편집했던 기존 서적이나 도서관에서 과월호 여행 잡지부터 찾아서 읽기 시작합니다. 아니면 아는 여행 작가에게 가능성 있어 보이는 필자를 추천받아서 글을 읽기 시작합니다. 이를 ‘기초 조사’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대부분 원하는 필자들을 찾아냅니다. 여러분이 글 쓰고 사진 찍어서 조회 수를 끌어올린 블로그에 들르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말 드문 거죠.


3. 책은 편집자가 먼저 기획하고 나중에 저자랑 상의한다.

기초 조사를 끝낸 편집자들은 처음의 아이디어(가령, 내년에 인천 세계 책의 축제가 열리니까 관련 서적을 하나 기획할까?)를 구체화해 가면서 차별화 포인트를 발견하고 콘셉트를 구축합니다.(가령, 인천 헌책방 기행, 인천 문학 기행, 중국인 거리를 찾아서, 지하철로 끝내는 인천 여행 등) 이 과정은 상당히 세밀하게 진행되는데, 마치 바둑의 다음 수를 두는 것하고 비슷합니다. 인천 관련 서적이 수없이 나와 있는 시장에서 미생마를 투입해서 완생을 노려야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게다가 이런 특별한 경우에는 다른 회사 편집자들도 한 번쯤 책을 내보겠다고 생각하니까 더욱더 분명하게 차별화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콘셉트를 지역별, 테마별, 유형별로 확실히 해서 마음속으로 정한 후에야 비로소 편집자들은 저자와 접촉합니다. 이때 기존 여행서 필자 중에서 인세나 일정 등이 맞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편집자들은 블로그 등을 뒤져서 적당한 필자를 찾기 시작합니다.


4. 블로그가 곧바로 책이 될 수도 있다.

저 역시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블로그 글에 감동을 받아 연락해서 책을 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연락을 취하는 경우는 정말로 드뭅니다. 일단, 주변에 밑밥을 깔아 둡니다. 문학이든, 역사든, 여행이든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을 작성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니까 관련 분야의 필자들과 대개는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청계천에서 오퍼상 하시던 분이 음악을 30년 동안 혼자서 즐기시다가 갑자기 영감을 받고 블로그 개설하신 경우는 예외입니다. 의대 등 타 분야의 권위자가 자기 능력을 알아보고 싶어서 필명으로 한시 같은 취미 영역을 블로그 하는 경우는 반칙이고요.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가령, 여행 블로거들은 거의 무조건 기존 여행 작가들과 이어져 있습니다.(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확인 과정을 일차 거치고 나서 믿을 만하다고 판단이 들면 이러저러한 글을 잘 읽었다면서 일단 정중한 미팅 요청을 합니다. 글이 좋다 하더라도 책은 편집자와 저자가 같이 내는 만큼 대화가 잘 안 통하거나 콘셉트가 서로 맞지 않으면 출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미팅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탐색 미팅에 가깝습니다.


5. 블로그 자체가 콘셉팅이 되어 있어야 한다.

대개의 블로거들은 김훈이나 신경숙이나 공지영이 아닙니다. 문장 하나만으로 승부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또 중문학이나 미술사를 전공하는 등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경우도 아주 드뭅니다. 현장에 대한 취재가 아주 깊거나 사진이 훌륭한 경우도 별로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편집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책을 만들려고 하면 만들겠지만 손이 무척 많이 가는 겁니다. 따라서 어느 부분에서라도 편집자의 일을 덜어주지 않으면 책으로 내고 싶지 않습니다. 소셜미디어에 팔로워 수가 많거나 지자체에 강연을 다니는 등 마케팅이나 홍보에 도움이 될 만한 요소가 있다면 편집자로서는 정말 기껍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콘셉팅이 이미 되어 있는 신선한 글이 있는 것입니다. 블로그 자체가 지자체 홈페이지 등에 널린 흔해빠진 정보만 있거나 글은 없고 그림이나 사진만 줄줄이 나온다면 조회수가 아무리 높아도 소용없습니다. 가령, 인천 헌책방 기행을 기획한 후 필자를 찾는데, 누군가 그 일을 블로그에 해 두었다면 더없이 반가울 겁니다. 이렇듯 예상되는 독자의 니즈(Needs)에 맞추어 정보의 꼴이나 쓰임새에 따른 분류가 이미 되어 있고, 취재가 탄탄히 된 좋은 콘텐츠가 채워져 있다면 누구나 책을 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6. 콘셉트는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블로거들을 만나 보면 본인의 콘셉트나 아이디어를 지켜야 한다는 집착이 심합니다. 나만 아는 것, 나만의 아이디어는 블로그에 올리지 않고, 잘해야 변죽만 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볼품없는 블로그가 되는 거죠. 물론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 저작권을 확실히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남들이 그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블로그에 올리거나 책으로 내버린다면 속상하겠죠. 그런데 아이디어라면 몰라도 콘셉트는 쉽게 복제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 자체가 독창적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과장하자면 전혀 없다고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가령, 여러분이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그 콘텐츠를 이용해서 ‘사마천의 여행법’이라는 책을 쓰겠다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 보죠.(말해 놓고 나니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네요.) 블로거들의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이런 아이디어 같은 것은 편집부 기획회의에서 사마천을 주제로 다룰 때마다 수십 번은 반복되는 것입니다. 독창성이란,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행입니다. 같은 아이디어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은 수십, 수백 가지로 갈릴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가 핵심입니다. 이 어떻게는 각자의 노하우가 있어서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슷하게 진행될 수는 있어도 똑같이 나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아이디어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과물을 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뜻입니다.(물론 블로그에 올리거나 편집자와 상의하기 전에 저작물 등록 제도도 있어서 저작권을 공증해서 보호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마천의 여행법’은 아이디어이고 ‘사마천의 인문학 여행법’ ‘사마천을 따라 중국을 가다’ ‘아들과 함께하는 사마천 기행’ 등은 콘셉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아이디어 자체가 콘셉트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드문 일이니까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콘셉트만 보더라도 이후의 실행 전략에 따라서 수없이 많은 분기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나 콘셉트가 아니라 그 결과물인 콘텐츠 자체가 매력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고 블로그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세요. 책으로 가는 길은 편집자가 발견해 드립니다.


7. 세분화 시장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편집자는 이런 질문에는 답하지 않습니다. 여행 고전을 내려고 할 때에는 혹시 이런 질문이 필수인지 모르겠으나, 현장 여행서를 고민할 때에는 먼저 독자들을 바라봅니다. 여행서는 대개 제목에 독자 니즈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제목을 보면 여행서에 대한 편집자의 지향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서점 역시 독자 니즈에 따라서 책을 분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서점의 하위 분류를 보면 니즈에 따라 어떤 여행서가 인기인지, 그 책과 차별화 요소는 무엇인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교보문고의 여행 코너는 다음과 같은 대분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여행, 해외여행, 여행에세이, 테마여행, 인기지역, 지도 등입니다. 국내여행을 클릭해 보면 소분류가 나오는데, 국내여행 일반이 첫 번째로 나온 것 이외에는 대부분 지역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판매 순위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 한국관광공사에서 조사해 발표하는 국내여행 통계자료의 선호 지역과 거의 일치합니다. 어디일까요? 당연히 제주도입니다. 그다음은 어디일까요?(고민해 보세요. 숙제입니다.) 어디부터 다녀야 하는지 알겠죠. 그런데 이런 장소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차별화하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장소 중심 여행서가 당연히 인기이지만, 실제로는 국내여행 일반에 해당하는 책도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하루쯤 성당여행』, 『대한민국 숨겨진 여행지』, 『섬을 걷다』 등입니다. ‘하루’ ‘성당’ ‘숨겨진’ ‘섬’ 등이 키워드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자, 여러분이 블로그로 책을 내려고 한다면, 기존의 이런 책들과 차별화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책들을 능가하는 매력을 가진 새로운 콘셉트를 찾아내야 합니다. 독자들이 책을 구매할 때, 이런 ‘세분화 시장’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블로그는 무조건 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옳습니다. ‘제주도 여행서’ 중에서 책이 주목받고 팔리는 것이지 좋은 책이라고 해서 팔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분화 시장의 특성과 그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아마추어 블로거로 활동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8. 제가 글을 좀 쓰는데요???

블로거들과 만나 보면, 대부분 자신의 글이 무척 좋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나쁘면 당연히 편집자로서는 들여다보지도 않습니다. 책은 무료 인터넷 정보와는 달리 돈을 주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글에 특별한 것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보가 될 수도 있고, 감동이 될 수도 있고, 사진이나 그림이 될 수도 있고, 특별한 테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은 독자들이 돈을 내고 싶을 만큼 훌륭하지 않습니다. 세분화 시장 이야기를 계속해 보죠. ‘글맛’으로 책을 읽고 싶을 때, 독자들이 택하는 여행서 시장이 바로 ‘여행 에세이’ 시장입니다.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죠.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고현정의 여행, 여행』, 『끌림』, 『그리스의 끝, 마니』, 『위로였으면 좋겠다』 등입니다. 고현정의 책을 제외하면, 모두 유명 시인, 평론가가 쓴 책입니다. 고현정의 책도 셀러브리티 책이죠. 그만큼 좋은 글을 써서 책을 내고, 독자들 눈에 띄는 것은 어렵다는 말입니다. 물론 때때로 글이 좋은 필자들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미 ‘문필 공동체’에 속해 있거나 대학에서 오랫동안 수련을 쌓아 온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보다는 문장의 최소 기준을 통과하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정확한 맞춤법, 조리 있는 문장, 균형 잡힌 서술, 논리적 구성력 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좋은 표현은 이러한 글쓰기의 최소 기준을 통과한 다음의 일입니다. 


9. 블로그 방문객이 하루 얼마인데요?

블로그 방문객 숫자는 단순히 참고 자료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문이 아니라 소통입니다. 굳이 따진다면 독자와 얼마나 자주 대화하고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블로그 글에 대한 독자들 반응도 편집자의 고려 대상입니다. 어떤 부분이 열광을 불러일으키는지, 독자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꾸준한 열성팬이 있는지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출간 전략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짜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기획 관점에서는 거의 가치가 없습니다. 편집자의 머릿속에 있는 독자는 생각 밖으로 구체적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블로그의 글을 책으로 묶어 냈다는 사실을 알리기만 하면 곧바로 서점의 구매 단추를 누를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가 블로그 출간 기획의 핵심 쟁점입니다.(타깃 독자의 설정) 책은 무한한 비용을 들여서 모든 사람에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제한된 독자들에게 접근하는 상품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잠재적인 가치를 따지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마케팅 콘셉트가 떠오르는 상품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가령, 블로거의 책을 내고 전국의 천문대를 다니면서 강연이 가능한 경우를 생각해 보죠. 그런 필자라면 당장 ‘과학이 쉬워지는 천문대 기행’ 같은 책을 기획할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콘셉트입니다. 아이디어이면서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구체적 접점이 있는 것이죠.) 방문객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독자와 함께 사진 여행을 떠났느냐,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열고 있느냐 등 얼마나 깊게 독자와 소통하느냐가 중요합니다.


10.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책에도 트렌드가 있다.

트렌드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애써 집필한 책이 창고에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하고 싶지 않다면, 미래에 어떤 흐름이 나타날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메가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숙지한 후, 이를 여행서 분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가령, 인스타그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모두 깔려 있는 사진 앱입니다. 사람들은 이 앱을 이용해서 사진도 찍고 공유도 합니다. 모바일이라는 트렌드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앱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편리하게 사진도 찍고, 더 쉽게 친구들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당연히 이 앱을 즐겨 씁니다. 인스타그램의 기획자는 소위 대박을 쳤습니다. 페이스북에 10억 달러에 인수되었으니까요.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이 가지고 있던 사진 관련 노하우를 흡수해서 자사 플랫폼에서 더 많은 사진 공유가 일어날 수 있도록 편의성을 제공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공유 플랫폼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공유하려면 누구나 페이스북 플랫폼 말고 다른 플랫폼을 상상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모바일 시대의 여행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여러분이 책을 출판하고 싶다면 당장 이런 질문에 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령,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인기 국내 여행지 베스트 100’ 정도는 어떨까요? 디테일에 따라서 실행 여부가 결정되겠지만, 이 정도면 가볍게 기획안이 통과될 것 같습니다. 재작년에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여행서는 『죽기 전에 가고 싶다! 세계의 절경』이었습니다. 별로 특이한 점이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흔한 기획입니다. 그런데 실행이 특이했습니다. 전 세계의 무료 사진을 이용해서 매일 하나씩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화산이나 심해처럼 인간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장소도 많습니다. 매일 아름다운 사진 하나씩을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열광했고, 편집자는 사진 각각에 짤막한 에세이를 붙여서 출판했습니다. 페이스북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잘 활용한 예입니다. 마케팅을 먼저 하고 책을 나중에 출판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트렌드라고 하면 흔히 콘텐츠만을 생각하는데, 이처럼 책을 둘러싼 콘텍스트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콘텐츠 트렌드를 우선해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감’이 아니라 ‘근거’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일했다면, 감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일하다 보면 괜히 이쪽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개는 관련 통계나 일상 대화 같은 자료들이 더 확실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편집자들은 어떤 책이 성공하느냐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책이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에도 민감합니다. 편집자들이 스스로 커뮤니티를 구축하거나 어떤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은 거기에서 새로운 기획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홀로 생각’에 갇히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근거’를 찾고 싶은 겁니다. 그러면 요즈음 여행서에는 어떤 트렌드가 있을까요?(숙제입니다. 고민해 보세요.)


11. 편집자와 2인 3각을 할 수 없다면, 책을 출판해서는 안 된다.

책은 저자 혼자서 만드는 것도 아니고, 편집자 혼자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집필에서부터 마케팅, 홍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편집자와 저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호흡해야 합니다. 잡지나 블로그와는 달리, 책을 만드는 것은 짧게는 석 달, 길게는 몇 년에 이르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서로 생각이나 감각이 맞지 않는다면, 이 기나긴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없습니다. 콘텐츠는 필자에게서 나왔을지 몰라도 이 재료를 가공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편집자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편집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고를 개선하고 디자인을 실현하여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는 길을 제시합니다. 편집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디자인 콘셉트를 다시 잡고 싶을 때, 마케팅 계획이 충분하지 않을 때, 마음을 열고 서로 맞추어 가지 못하면 책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책은 필자의 것만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