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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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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찬스’가 취업을 지배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대부분 출신 배경보다 근면 성실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는다.” 로런 리베라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쓴 『그들만의 채용 리그』(지식의날개)의 첫머리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시민들의 이 건강한 믿음을 배반한다. 이 책의 원제는 혈통(pedigree). 고학력 엘리트 학생들이 고임금 엘리트 직장을 독점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충격적인 책이다. 비결은 ‘아빠 찬스’다.부유한 고학력 부모는 자신들이 보유한 물질적 재화와 문화자본을 이용해 자녀들의 우월적 신분을 재생산한다. 자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고소득 직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아이의 일생을 처음부터 설계한다. 이 탓에 ‘대대로 엘리트’와 ‘우연한 엘리트’는 같은 대학을 나와도 들어가는 직장이 다르다.리베라 교수에 따르면, 첫 직장은 경제적 계층화가 발생하..
사도 바울은 천막 노동자, 평등한 공동체를 꿈꾸었다 카렌 암스트롱,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 정호영 옮김(훗, 2017)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을 버리고 평범한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살아감으로써, 바울은 예수가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졌던 것과 비슷하게 “자기 비움”, 즉 매일의 케노시스(kenosis)를 실천했던 것이다.(77쪽) 전독(全讀)하는 저자 중 한 사람이 카렌 암스트롱. 새벽에 읽어나 미루어 두었던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정호영 옮김, 훗, 2017)를 완독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었는데도, 훈련된 나의 기독교적 영성은 별로 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듯하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성경 구절들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
201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정리 (2) _인도네시아 시인 구나완 모아맛의 연설 중 우리는 인간 평등의 필연성을 강조하려고 글을 쓴다. 우리는 삶에 대화와 토론을 제공하려고 글을 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부양한다. ―구나완 모아맛(Goenawan Mohamad, 인도네시아 시인)
가라타니 고진의 『자연과 인간』(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2013)을 읽다 1내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미국의 콜롬비아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의 영문판이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서문이 붙은 이 책을 읽고 나는 적잖은 흥분을 느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내 문학적 스승 중 한 분인 김윤식 교수의 연구를 지탱하는 이론적 기둥 하나를 보았다는 점이고(일본으로만 한정하면 고바야시 히데오에서 에토 준으로, 에토 준에서 가라타니 고진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김윤식의 『내가 읽고 만난 일본』(그린비, 2012)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다른 하나는 그의 논의가 날로 지지부진해져 가고 있는 한국문학 연구의 한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오로지 이 감각에만 의존해 나는 1970년대 이후 오랫동안 끊어졌던 일본 지성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