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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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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최고 기술을 엿보기 -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을 읽다 (1) 새벽에 일어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안인희 옮김, 유유, 2012)을 읽었다.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라는 부제가 알려 주듯이, 츠바이크가 쓴 몽테뉴 평전이다. 저자의 갑작스러운 자살 때문에 완결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현재 남은 부분만으로도 우리에게 읽는 즐거움과 생각거리를 충분하게 제공한다. 특히, 문장의 율동감이 느껴지는 깔끔한 번역으로 인해 더욱더 독서가 즐거운 일이 되었다. ‘역자 서문, 머리말, 1장 평민에서 귀족으로’까지 80여 쪽을 읽었는데, 전체의 절반쯤 된다. ‘머리말’이 특히 아름다웠다. 츠바이크는 ‘에세이’라는 글쓰기의 특별한 형식을 창조한 몽테뉴의 평생을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요약하고, 몽테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치의 광기’와 ‘제2차 ..
「TV 책을 보다」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편 소개가 나왔네요. “우리는 인생에서 실패하기 쉬운데,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음 단계의 삶이 열리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갈린다. 고타마는 자기만의 수행 방법으로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실패로부터 일어선 자만이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이게 인간 고타마가 우리한테 이야기 해 주는 건 아닐까...”내가 방송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다. 붓다는 스스로 깨달은 자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거대한 실패로부터 스스로 일어선 자이기도 하다. 이 말은, 작게는 스승이나 동료들로부터 받은 수행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죽음의 위협에 처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수행 방법을 통해서 모든 인간을 구할 깨달음을 얻은 일을 뜻하지만, 크게는 생로병사라는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필연적 실패로..
나만의 인생을 만들고 싶을 때(사이토 다카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만의 인생을 만들고 싶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앞서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다. 특히 ‘고전’이라고 인정받는 책들은 큰 도움이 된다. 고전은 오랜 시간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책, 인류에게 원대한 비전을 주었거나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해 준 책이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살아남은 만큼 거기에는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담겨 있다. ― 사이토 다카시 올해 열여섯 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오근영 옮김, 걷는나무, 2014)이다. 예전에 같은 저자가 쓴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홍성민 옮김, 뜨인돌, 2009)를 재미있게 읽은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골랐다. 일본의 신서가 흔히 ..
책에 대하여(롤랑 바르트) 문득 바르트 책을 꺼내 아무 곳이나 펼쳐 읽다가 마주친 한 구절. 밑줄이 선명하다. 언제, 그어둔 것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욕망만은 선연하다. 나는 읽기를 통해 인생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읽는 자로서의 인생. 그게 다였다. 정말 이게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이었다. “책은 의미를 창조하고, 의미는 인생을 창조한다.”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아래는 오래전 장석주 선생이 쓴 『일상의 인문학』(민음사, 2012)에서 밑줄 친 구절들인데, 모두 바르트의 것이다. 함께 여기에 옮겨 둔다. “그의 텍스트로부터 와서 우리 생 속에 들어가는 저자는 통일된 단위가 없다. 그는 간단히 복수적인 ‘매력들’이며, 몇몇 가냘픈 세부사항의 장소이고, 그럼에도 싱싱한 소설적 광휘의 근원이며, 다정함..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당신에게 _아오노 슌주의『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서평 웹진 A 코믹스에 실린 일본의 신예 만화가 아오노 슌주의『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세미콜론)의 서평이다. 시골 마을 도서관으로 옮기면서 챙겨 왔는데 읽다가 격하게 감동했다. 마침 완간이 되면서 후배의 권유로 서평까지 쓰게 되었다. 아래에 옮겨 싣는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겠다고? 그런 말을 할 나이가 아니잖냐?”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에도 정말 적절한 나이가 있는 걸까? 직장 생활 15년 차, 마흔 살이 되었다. 특별한 불만은 없었지만 이리저리 재지 않고 갑자기 사표를 냈다. 늙은 아버지와 고등학생 딸이 있고 아내는 오래전에 가출했다. 얼굴은 한물갔고 몸매는 배불뚝이, 아저씨 냄새가 물씬 난다. 이런 몸으로, 반드시 어떻게 될 것이라는 자신도 없이, 그냥 이렇게 살면 안..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30일(목) 명절 첫 날이라 오늘을 하루 종일 읽던 책들을 내키는 대로 읽었다. 방 청소를 하고 읽으려고 쌓아 둔 책들을 정리했다. 읽는 속도가 책이 쌓이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서 방이 점점 비좁아지는 중이다. 조만간 과감하게 읽지 않는 책을 버려야 할 때가 올 것 같다. 지셴린의 『인생』(이선아 옮김, 멜론, 2010)을 완독했다. 사유의 대가답지 않은 가벼운 에세이인데, 오히려 그 소박함과 평범함으로 사람을 끄는 데가 있다. 내용이 일부 중복되는 것은 대부분이 신문 등에 연재된 짧은 글을 모은 탓이다. 이 점은 대단히 아쉬웠다. 중국 지식인들의 장점이라면 자신의 글에 춘추 전국에서 명청에 이르는 명문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함으로써 그 논지에 품격을 불어넣고 깊이를 더한다는 점이다. 지셴린이 자주 인용하는 도연명이나 ..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29일(수) 새 소설 『혁명 ―― 광활한 인간 정도전』의 출간을 앞두고 탁환이 찾아와서 술을 마시느라 어제는 글을 쓰지 못했다. 아직도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 작취불성(昨醉不醒). 술만 마시면 거의 이러는 것을 보면 이제 술과 정말로 이별할 때가 된 듯하다. 읽던 책들을 계속 읽어 가면서 새로운 책을 몇 권 호시탐탐 엿보는 중이다. 『헤밍웨이 단편선』(김욱동 옮김, 민음사, 2013)을 짬날 때마다 한 편씩 읽고 있다. 건드리면 주르르 모래로 쏟아질 듯한 건조한 문체의 극단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 이어진다. 극도로 절제된 감정, 사건의 적요(摘要)만 따르는 냉혹한 시선……. 읽다 보면 저절로 숨이 막혀 오다가 어느새 인생의 달고 쓴 맛이 느껴지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고 만다. 사색이나 표현이 아니라 건조와 속도로 승부..
절각획선(切角劃線) - 2014년 1월 27일(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함부로 묻지 못할 질문이다. 사람들은 이 고통스러운 질문이 자신 앞에 제발 다가오지 않기를 끊임없이 기원한다. 지독한 어리석음! 그러나 살아가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이 질문을 회피할 길은 없다. 이것은 세계의 어둠 속에서 불쑥, 그러나 치명적으로 우리를 엄습한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자기 자신의 빛이 없다면 타인의 빛으로 자신을 밝힐 수는 없다.”(『라 셀레스티나』) 오늘 후배랑 아주 길게 이야기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오늘부터 20세기 중국 최대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인 지셴린(季羨林)의 에세이 『인생』(이선아 옮김, 멜론, 2010)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알라딘 세일 때 샀던 책 중 하나다. 베이징대의 터줏대감 중 한 사람으로 ‘국학대사(國學大師)’라고 불린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