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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책 읽기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당신에게 _아오노 슌주의『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서평


웹진 A 코믹스에 실린 일본의 신예 만화가 아오노 슌주의『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세미콜론)의 서평이다. 시골 마을 도서관으로 옮기면서 챙겨 왔는데 읽다가 격하게 감동했다. 마침 완간이 되면서 후배의 권유로 서평까지 쓰게 되었다. 아래에 옮겨 싣는다.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아오노 슌주 지음, 세미콜론 펴냄 1권 8000원, 2~5권 각 9000원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겠다고? 그런 말을 할 나이가 아니잖냐?”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에도 정말 적절한 나이가 있는 걸까? 직장 생활 15년 차, 마흔 살이 되었다. 특별한 불만은 없었지만 이리저리 재지 않고 갑자기 사표를 냈다. 늙은 아버지와 고등학생 딸이 있고 아내는 오래전에 가출했다. 얼굴은 한물갔고 몸매는 배불뚝이, 아저씨 냄새가 물씬 난다. 이런 몸으로, 반드시 어떻게 될 것이라는 자신도 없이, 그냥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무작정 직장을 때려 쳤다. 아오노 슌주의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전5권, 송치민 옮김, 세미콜론, 2012~2014)의 코믹한 주인공 시즈오의 초상이다.

잠깐의 방황 끝에 시즈오가 발견한 꿈은 ‘만화가’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발견했단 말이지!” 의기양양하게 가족들에게 선언한 후,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스무 살 아래 젊은이들과 함께 알바를 뛰면서 그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물론 시즈오는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아니다. 삶으로부터 열정을 돌려받은 숨은 천재는커녕,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가’를 받았던 열등생이자 밤새 꼬박 고민해도 아무것도 “그릴 게 없는” 사람이다.

이런 인간도 꿈을 좇을 수 있을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을 되찾고 꿈을 이룩할 자격조차 없는 걸까? 하루하루 생활에 쫓겨 가면서 먹고살기만 해야 하는 걸까?

작가 아오노는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시즈오의 분투기를 통해 우리 모두를 이 시대적 질문 앞으로 불러 모은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삶을 잃어버린 채 유령처럼 부유한다. 전혀 하고 싶은 일이 없거나, 하고 싶은 일은 잘할 줄 모른다. 가게 점장이나 아르바이트 리더와 같은 사소한 출세에 목마르거나, 고교생 딸의 양육비와 같은 현실에 치여 모멸의 날들을 견뎌 나가거나, 아니면 의욕을 잃고 감기에 걸린 듯 나른한 시간을 살아간다.

“왜 사는 거죠? 전 제가 사는 의미를 모르겠어요. 저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몰라요.”

스물네 살 젊은 여자아이가 만화가 지망생 시즈오에게 묻는다. 그렇다. 이 작품은 하고 싶은 일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대답의 형식으로 그려졌다. 희망과 절망을 극단적으로 오가면서 시즈오는 ‘데뷔의 그날’을 위해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혀 간다. 하지만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만화가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겨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충동에 끌려서,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어서, 필사적으로 만화를 그린다.




“나는,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믿어 보려고 한다. 이기적이라는 건 알고 있다. 꿈과 이상만으로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는…… 나 자신에게 변명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대기만성!’ ‘나는 대기만성!’”

스스로 기운 나게 하는 이런 멋진 주문도 소용없다. 그려 갈수록 작품은 그나마 조금씩 나아져 가지만 만화가 데뷔는 세상 끝만큼이나 멀찍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주문이라도 중얼중얼 외지 않는다면 삶이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시즈오는 끝없이 계속되는 주변의 멸시와 세계의 냉혹한 폭력 앞에서 오직 지지 않기 위해서 결심하고 다짐하면서 몸부림친다. 그 몸부림은 때때로 처절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코믹하다. 처절함은 나날이 퇴적하는 절망의 두께에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시즈오의 마음으로부터 생겨나고, 코믹함은 좌절이라곤 전혀 모르는 채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면서 자신을 한없이 긍정하려는 시즈오의 행동으로부터 만들어진다. 그 둘은 하나다. 처절하기 때문에 코믹하고, 코믹하기 때문에 처절하다. 슬프지 않다면 웃을 수 없고, 웃을 수 없다면 슬퍼할 수 없다. 그리하여 시즈오는 만화로 그려진 우리 시대의 돈키호테가 된다.

“좋겠네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서른 살, 고등학교 중퇴에 폭력 전과까지 있는 데다 아무 일에도 의욕을 보이지 못하는 이치노사와가 시즈오 앞에서 중얼거린다. 진심으로 부럽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 정도만으로도 아주 빛나 보인다는 뜻이다. 모험과 스릴로 가득한 삶을 살고 싶어서 스스로 기사로 변신한 돈키호테처럼,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걸까?’를 한없이 중얼거리던 “회사의 개” 시즈오는 만화가 지망생이 됨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빛으로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시즈오의 죽마고우이자 또 다른 회사의 개 미야타도, 핀란드 유학을 이유로 안마방에 나가던 딸 스즈코도, 무기력 속에서 분노를 쉽게 폭력으로 분출하던 이치노사와도, 실패한 소설가 아버지를 둔 채 사람들에게 정을 느끼지 못하는 편집자 우나미도, 그 밖의 다른 인물들도 시즈오의 빛을 받아 조금씩 자신의 일을 찾고 삶을 변화시켜 간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전혀 쉽지 않고 오히려 험하다. 해피 엔딩이 계속 뒤로 미루어지고, 행운과 불운이 순간순간 교차하면서 찾아온다. 결과가 미리 정해지지 않은 드라마. 아마 그런 게 진짜 삶일 것이다.

“모두 살아간다. 어째서? 모른다. …… 내 인생에 의미가 있을까? 전혀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모르고 또 몰라도 괜찮다. 난 단지……, 단지…….”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단지’ 뒤에 생략된 말은 아마 ‘최선을 다할 뿐’일 것이다. 작품 첫머리에서 시즈오는 무척 고통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괜찮겠습니까? 최선을 다해도…….”

대답이 빤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물론 당연히 괜찮지 않다. 우리는 지금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최선을 다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만화라는 자신의 꿈에 최선을 다할수록 시즈오는 오히려 더욱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사회의 ‘잉여’로 밀려나 버린다. 인생이 실패할 확률은 장면이 쌓이고 권을 더할수록 50%에서 90%까지 점점 높아만 간다. 

“시즈오, 너는 몇 살까지 살 생각이냐? 인간은 말이다. 언젠가 죽는다. 너 이대로 괜찮겠냐? 그러다 인생 끝난다.”

그러나 ‘이대로’가 아닌 삶 역시 이미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인생이란 애당초 끝장나 있었다. 스물두 살, 세상이 두려운 게 없었던 시즈오는 외쳤다. “직업이 없는 게 그렇게 잘못된 겁니까?” “취직하는 게 승리하는 겁니까?” 미국의 철학자 휴 드레이퍼스는 “좌절이란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무능력”이라고 했다. 사는 의미를 잃어버리고 나면 직업이 있든 없든, 취직을 하든 말든, 이미 인생은 끝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즈오는 필사적으로 삶의 종말로부터, 무기력과 무능력으로부터 탈주한다. 



시즈오를 포함해서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한 번쯤은 산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경험을 한다. 우연히, 무서워서, 기타 이런저런 이유로 간신히 죽지 못하고 살아나서, 그들은 죽음 이후를 살아간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 같은 삶에서 죽어도 살아 있는 것 같은 삶으로 갈아타려고 애쓴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어떤 정답을 가지지 않은 채 매일매일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절망이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양난의 길에서 태어나는 법이다. 언제나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인, 그래서 앞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시즈오에게 절망이란 있을 수 없다. 이 놀라운 긍정의 인간 시즈오 곁에 있을 수 있는 그들이 부럽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그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고 싶다.

희극으로 오히려 울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거장이나 부리는 솜씨다. 두 번 세 번, 작품에서 전혀 눈을 뗄 수 없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니 감격한 기분이 들면서 어느새 눈앞에 안개가 끼곤 했다. 장면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아저씨 코미디’ 장르로 “살아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심각하고 묵직한 질문에 답해 버린 젊은 작가 아오노 슌주에게는 분명히 거장의 기미가 있다. 

“언제부터지? 어느새 나는 이런 안됐다 싶은 사람이 된 거지?” 

당신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당장 서점에서 이 작품을 만나기 바란다.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은’ 당신에게, ‘산다’가 아니라 ‘살아 있다’여야 하는 당신에게 시즈오는 분명 빛을 보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