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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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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에 쓰인 _ 헤르만 헤세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이 단지 한 번의 입김이고 전율일 뿐이라는 것 값지고 황홀한 것이 잠깐의 우아함이라는 것 구름, 꽃, 비눗방울, 불꽃놀이, 아이들의 웃음, 유리 거울 속 여자의 시선 그리고 많은 경이로운 것들 그것들은 발견되자마자 사라진다는 것 단지 한순간 지속될 뿐이라는 것 그저 향기이며 바람의 흩날림일 뿐이라는 것 아, 슬프게도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중략) ​ 그래, 지고의 아름다움은 사랑스러움은 쇠락하는 것에 끌린다. 가장 값진 것은 언제든 부서질 수 있다. 음악의 소리, 생겨남과 동시에 이미 떠나가고 사라지는 음악의 소리는 그저 흩날리고 흘러가고 뒤늦게 따라가면서 나직한 애도의 기운에 싸여 있다. (중략) ​ 그런 우리에게는 장미 이파리의 이슬이 한 마리 새의 구애가 구름이 희롱하는 죽음..
롤프 디터 브링크만 어느 순간에는 단지 시간을 느리게, 천천히, 흘러가도록 늘이는 것만으로 시(詩)가 된다. 한 처녀 검정 스타킹을 신은 그녀가 양말 올 하나 풀리지 않고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름답다. 그녀의 그림자 거리 위에 그녀의 그림자 담가에. 그녀가 치마 밑에까지 올 하나 풀리지 않은 검정 스타킹을 신고 가는 것은 아름답다. _ 롤프 디터 브링크만, 「단순한 그림」(이유선 옮김) 전문 한 처녀의 아름다움에 홀린 눈처럼, 만약 일상에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느꼈다면, 그 순간 바로 시의 꽃이 거기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올 것이다, 손에 칼을 들지도 않고, 끔찍한 소리를 내지도 않고. 그는 올 것이다 우연히 지나다 시간을 묻는 누군가처럼, 그는 다가와 모자 벗고 인사를 할 것이다. 천구백육십삼년 이월 십..
피츠제럴드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읽다 벼르던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두 주 전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교정을 끝마치고 난 후, 기왕에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3) 말고 피츠제럴드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나온 『피츠제럴드 단편선 1』(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5)와 『피츠제럴드 단편선 2』(한은경 옮김, 민음사, 2009)를 읽으려고 꺼내 놓았다가, 곧 마음을 바꾸어서 피츠제럴드의 첫 번째 단편집으로 예전에 편집 참고용으로 사 두었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이번 주 내내 읽었다. 가장 거칠고 미숙했던 시절의 피츠제럴드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이 나온 것은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