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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과 서평/소설 / 희곡 읽기

피츠제럴드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읽다


피츠제럴드,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벼르던 일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두 주 전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교정을 끝마치고 난 후, 기왕에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3) 말고 피츠제럴드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나온 『피츠제럴드 단편선 1』(김욱동 옮김, 민음사, 2005)와 『피츠제럴드 단편선 2』(한은경 옮김, 민음사, 2009)를 읽으려고 꺼내 놓았다가, 곧 마음을 바꾸어서 피츠제럴드의 첫 번째 단편집으로 예전에 편집 참고용으로 사 두었던 『아가씨와 철학자』(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를 이번 주 내내 읽었다. 가장 거칠고 미숙했던 시절의 피츠제럴드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이 나온 것은 1920년 10월이다. 피츠제럴드가 스물다섯 살 때의 일이다. 프린스턴 대학교 중퇴 후 입대했던 피츠제럴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19년에 제대해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소설을 쓴다. 이 기간 동안 첫 장편소설 『낙원의 이편』(이화연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을 집필하고 퇴고하는 한편으로 아내인 젤다 세어와 사랑을 나누면서 보냈다. 그 바쁜 와중에 그는 틈틈이 짬을 내어 스무 편 정도 단편소설을 써서 여러 출판사에 투고했으나 번번이 퇴짜맞곤 했다. 1920년 『낙원의 이편』을 출간해 호평을 받고 성공을 거두자 피츠제럴드는 재빨리 몇몇 잡지에 발표했던 단편들을 묶어서 책으로 펴냈는데, 그것이 바로 『아가씨와 철학자』이다.

이 소설집에는 그의 대표적인 초기 단편 작품인 「얼음 궁전」을 비롯해서 「컷글라스 그릇」,「머리와 어깨」, 버니스 단발머리를 하다」 등 모두 여덟 편이 실려 있다. 고집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거친 방식으로나마 자신의 내면 세계를 독자들에게 일종의 명랑성을 가지고 설명해 가려 했던 젊은 피츠제럴드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강한 직역투로 매끄럽지 않게 번역되어 읽는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어쩌면 그러한 문체 자체가 피츠제럴드의 풋풋한 감성을 더 강렬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은 모두 인생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은 화려한 초월의 추구와 꿈이 무너지면서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14쪽)이라는 패트릭 오도넬의 해설은 이런 점에서 정확하다. 이 작품들이 주로 다루는 것은 젊은 남녀들의 사랑과 인생이다. 젊음을 펌프질 삼아 부풀어 올랐던 온갖 꿈들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꺼져 버리면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뒤틀어 버리는 순간들을 작가는 주목한다. 삶의 예측할 수 없는 재즈적 변주들. 

소설집의 제목이 드러내듯, 그 변주를 주도하는 것은 인습적인 사회 속에서 적극적으로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발랄한 여자들이다. 「바다로 간 해적」의 아디타, 「얼음 궁전」의 셜리 캐롤, 버니스 단발머리를 하다」의 마조리, 「머리와 어깨」의 마르샤 등은 타고난 인생 연주가들로 삶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 남자들을 능숙하게 새로운 삶의 폭풍 속으로 이끌어 간다. 관습에 결박되어 있는 낡은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가려는 그녀들의 분투는 옛날 흑백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이 소설집의 풍경을 단숨에 매력적이고 색감 넘치는 현대적 영화로 바꾸어 놓는다. 아디타의 말은 다소 직설적이지만 이 아가씨들의 세계관을 극적으로 대변한다.


내 용기는 믿음이에요. 내가 끊임없이 회복되고 되살아나리라는 믿음, 기쁨과 희망, 자발성이 되돌아오리라는 믿음이죠.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될 때까지 입술을 굳게 닫고, 턱을 높이 치켜들고, 두 눈을 활짝 연 채로, 실없는 미소는 지을 필요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느껴요. 아, 나는 지옥 같은 일들도 우는 소리 없이 자주 통과해 왔어요. 여자들의 지옥은 남자들의 지옥보다 더 끔찍하답니다. (「바다로 간 해적」, 52쪽)


그리고 그들의 파트너인 젊은 남자들은 철학자다. 말 그대로 지적이고 때때로 부유하기까지 하지만 삶의 폭풍우 앞에서 움츠러들어 생각에만 빠져 있을 뿐 바깥으로 뛰쳐나가려 하지 않는 보수주의자들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역학에 따라 그들은 끊임없이 아가씨 주변을 기웃거리는데, 그로써 그들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빠져 버린다. 번식을 위해 아가씨의 마음을 빼앗으려고 그들이 벌이는 온갖 책략이 그들을 넘어뜨려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운명의 바다로 내몬다. 생각만 하는 바보에서 움직이는 바보로 변신하기.

그렇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남녀 모두에게 변화가 생겨나는 것은 그들이 젊기 때문이다. 버니스 단발머리를 하다」에서 작가가 말하듯이, 열여덟 살에는 누구나 확신이라는 언덕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니까. 앞날에는 늘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그러니까 불확실한 어둠 속으로 지금 망설이지 말고 뛰어들어야만 한다는 굳센 믿음 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피츠제럴드는 말한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한때는 인생이 현재 진행형인 연애 사건들의 모음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현재 진행형인 문제들의 모음이 되어 버렸다.  (「컷글라스 그릇」, 173쪽)


이것이 아마 젊은 날의 피츠제럴드가 깨달은 삶의 진실은 아닐까. 이중 부정을 통한 삶의 아이러니와 헛됨. 첫 번째 부정은 자신을 초월하기 위해 쓰인다. 낡은 사회적 관습을 버리고 과감하게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기 위해 필요한 부정. 그로써 그들은 삶 자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세월이 흐른 후, 두 번째 부정이 그들을 찾아온다. 삶의 기이한 활력이 끝내 생성하는, 그러니까 삶에 의한 파멸로서의 인생. 과거의 꿈과 현재의 꿈이 동시에 깨어지면서 만들어 내는 인생 드라마. 아, 눈앞에서 죽음이 쌓이는 전쟁을 겪은 자만 어쩌면 이러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으리라. 활력이 넘치면서도 묘하게 헛된 인생을 꿈꿀 수 있었으리라. 인간이란 본래 이런 모순을 살아가는 법이란 말인가.


스콧 피츠제럴드(1898~1940)



=== 책 속에서

― 애들 성질이 못된 건 다 가족 잘못이기 마련이죠! (「바다로 간 해적」, 23쪽)

― 고질적인 난봉꾼들은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개과천선하지 않는 법이다. (「바다로 간 해적」, 23쪽)

― 아름다움이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고 넋을 잃게 해야 하는 거요. 마치 꿈처럼, 소녀의 섬세한 눈처럼 불현듯 당신에게 뛰어 들어오는 것이어야 하지. (「바다로 간 해적」, 39~40쪽)

― 모든 인생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에요. 그러다 뒤로 한 번 물러나는 일이 이 한 문장, ‘당신을 사랑합니다.’에서 생겨나죠. (「바다로 간 해적」, 42쪽)

― 나는 용기와 삶의 다른 것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중략)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권투 선수가 더 싸우려고 다가서는 것, 비천한 여인이 수많은 사내들을 겪으면서도 그들을 자기 발아래 진흙처럼 여기는 것, 자신이 늘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다른 사람들 의견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 내가 늘 살고 싶은 대로 살고 내 방식대로 죽는 것. (「바다로 간 해적」, 51쪽)

― 용기란 인생 위에 내려앉는 그 음울한 잿빛 안개를 뚫고 나아가는 일이에요. 사람과 환경을 극복하는 일뿐 아니라 산다는 것의 황량함을 극복하게 해 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삶의 가치와 덧없는 것들의 진가를 주장하는 것라고나 할까요. (「바다로 간 해적」, 52쪽)

― 내 용기는 믿음이에요. 내가 끊임없이 회복되고 되살아나리라는 믿음, 기쁨과 희망, 자발성이 되돌아오리라는 믿음이죠.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될 때까지 입술을 굳게 닫고, 턱을 높이 치켜들고, 두 눈을 활짝 연 채로, 실없는 미소는 지을 필요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느껴요. 아, 나는 지옥 같은 일들도 우는 소리 없이 자주 통과해 왔어요. 여자들의 지옥은 남자들의 지옥보다 더 끔찍하답니다. (「바다로 간 해적」, 52쪽)

― 우리들 대부분은 존재하고 번식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 두 가지에 대한 권리를 위해 싸운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생각,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려는 필연적 시도는 행운 혹은 불행을 타고난 소수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바다로 간 해적」, 55쪽)

― 시간은 도둑이네. / 기쁨과 슬픔은 / 나뭇잎에 매달리고 / 나뭇잎은 노랗게 변해 가네. (「바다로 간 해적」, 66~67쪽)

― 나는 울 때조차도 이곳에서는 행복해요. 여기서 힘 같은 것을 얻게 되죠. (「얼음 궁전」, 79쪽)

― 그리고 불어라, 바람아, 아아! / 나는 방랑을 떠나리라. (「얼음 궁전」, 81쪽)

― 제게는 어쨌든 사람보다는 책이 더 의미가 있으니까요.  (「얼음 궁전」, 91쪽) 

― 북부 사람들이야말로 비극적인 종자들이지요. 그들은 눈물이라는 기운을 돋우는 호사로움에 결코 빠져들지 않습니다.  (「얼음 궁전」, 91쪽)

― 가엾고 투명한 영혼들은 뭔가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으로 우리를 표현하려 한다. (「머리와 어깨」, 145쪽)

―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한때는 인생이 현재 진행형인 연애 사건들의 모음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현재 진행형인 문제들의 모음이 되어 버렸다.  (「컷글라스 그릇」, 173쪽)

― 마흔이 넘은 사람들은 어떤 것에도 지속적인 확신을 갖지 않는다. 열여덟 살에 우리는 확신이라는 언덕 위에서 세상을 본다. 그리고 마흔다섯에는 그 확신이라는 동굴 속에 몸을 숨긴다.  (「버니스 단발머리를 하다」, 193쪽)

― 징징거리는 못생긴 여자들에겐 언제나 핑곗거리들이 있지.  (「버니스 단발머리를 하다」, 197쪽)

― 여자는 자기가 완벽하게 치장을 하고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거든. 그게 매력이지. 네 모습에 대해 신경 쓰지 않다도 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너는 더 매력적이 되는 거야.  (「버니스 단발머리를 하다」, 199쪽)

―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물론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만족스럽게 하거나 충격을 주어야 하죠. (「버니스 단발머리를 하다」, 203쪽)

― 진정한 다정함이란 일종의 단단함, 그리고 힘인 것 같아요.  (「성체강복식」, 235쪽)

― 방황이란 경험을 통해서만 한 남자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성체강복식」, 235쪽)

― 나약한 사람이 다른 나약한 사람에게 가는 것은 도움을 원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가 원하는 것은 죄의식을 함께 나누는 거야. (중략) 진정한 도움은 네가 존경하는 더 강한 이에게서 오는 거야. 그리고 그 공감이 더 큰 것이다,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성체강복식」, 236쪽)

― 우리에게는 신념이라는 선물이 있고, 그것으로 해서 우리는 나쁜 순간들을 넘기게 되거든. (「성체강복식」, 244쪽)

― 시작하라. 그것이 그의 인생의 규칙이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어떻게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델리림플 잘못되다」, 258쪽)

― 그는 자신에게서 진부함을 발견했다는 끔찍한 충격으로 머리가 빙빙 돌았다. (「델리림플 잘못되다」, 258~259쪽)

― 지름길로 간다는 것은, 성공은 맡은 바에 충실할 때 오는 것이고 악마는 반드시 벌을 받고 미덕은 반드시 보상을 받으며 정직한 가난이 부정한 부유함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어린 시절의 원칙들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냉정해지는 것을 의미했다. (「델리림플 잘못되다」, 260쪽)

― 만약 악마가 더 가시적인 것이 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 속에 있는 불쾌한 것들에 자의적으로 붙여 버리는 이름표에 불과하게 되는 거지. (「델리림플 잘못되다」, 261쪽)

― 그는 지금 바이런 이상의 사람이다. 돈 후안 같은 정신적 반항아도 아니고, 파우스트 같은 철학적 반항아도 아니다. 그는 바로 이 세기의 새로운 심리적 반항아, 즉 그의 정신보다 선행하는 감성적인 것에 도전하는 반항아인 것이다. (「델리림플 잘못되다」, 264쪽)

―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란 신중한 태도이다. (「네 개의 주먹」, 280쪽)

― 여자가 남자의 동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른 여자들에게 가서 우는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네 개의 주먹」, 2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