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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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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쓰메 소세키 ― 데라다 도라히코의 『도토리』를 읽고 선생님 나쓰메 소세키―데라다 도라히코의 『도토리』를 읽고 오랜만에 말 그대로 수필집을 후루루 읽었다. 데라다 도리히코의 『도토리』(강정원 옮김, 민음사, 2017)이다. 진주에 문학 강연을 다녀온 후, 피곤해서인지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서, 문득, 화장실에 놓아두었던 것을 들어서 훑어 읽다가 잠들었는데, 새벽에 읽어나 마저 읽었다. 솔직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느낌,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자유롭게 문장들이 사물로, 사건으로 옮겨 다니는 그야말로 수필(隨筆)의 전형이라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물리학자로 일본 근대수필의 한 봉우리. 자연과 인생의 접점을 응시하는 시선이 웅숭깊다. 가령, 초신성 폭발을 본 후에 쓴 「신성」의 한 구절은 물리학자다운 매력이 넘쳐났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말은 단지 영원한..
한국의 문학 독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한국의 문학 독서는 어떤 상황일까요. 모두들 문학의 위기라고 하는데, 그 실체는 무엇일까요. 문학은 정말 위기에 빠졌을까요, 아니면 이 말 자체가 터무니없는 엄살일까요. 독서에 관한 최근 조사연구들을 종합해서 한국의 문학독서 실태에 대한 지도를 그려보았습니다. 문학이 위기에 빠졌다면 말로 문학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정확한 조사연구부터 행해야겠지요. 본격적인 조사연구가 있기 전에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바랍니다. 이 글은 《씀》 4호에 발표한 글입니다. 《씀》은 전위문학의 잡지이지만, 전혀 이질적인 이 글을 실어 주는 아량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편집진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문학 독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솔직히 고백부터 하자. 한국에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문학을 읽는지를..
고맙다, 그저 고맙다 _영혼에 참된 휴식을 주는 마법의 언어(세계일보) * 세계일보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이것으로 올해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아듀 2015년, 한 해 동안 여러모도 도와주시고 살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며칠 전 아들한테서 문자가 왔다. 대학에 합격했다고 찍혀 있었다. 초조하고 불안했는데 시름이 탁 놓였다. 삶이 하나의 고비를 넘은 느낌이었다. 순수한 기쁨이 가슴속에서 솟아올랐다. 그 순간, 갑자기, 깨달았다.어머니는 나한테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불초자로서 나는 오랫동안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 낯설고 때로 어색했다. 머리로는 받아들이는데 마음으로는 거리가 있었다. 살면서 아직 그 순간을 제대로 겪어 보지 못한 탓이었다. 그런데 아들의 문자를 몇 번이고 읽..
[문화산책] 새벽 숲길을 거닐며 평명(平明).어둠 속, 흙으로 맨발을 푸는 순간, 이 말이 떠올랐다. 새벽을 나타내는 말이다. 평(平)은 평평하고, 평화롭고, 평온하고, 평등하다. 명(明)은 밝고, 맑고, 환하고, 깨끗하다. 어떻게 조합해도 아름답다. 온 세상이 골고루 빛으로 차오르는 때, 소나무 청량한 향기가 사방으로 가득하다. 콩잎이 바람에 스륵스륵 소리를 낸다. 이슬을 흠뻑 덮어쓰고도 귀뚜라미는 씩씩하고 우렁차게 노래한다.“뭐가 쓸쓸해? 뭐가 쓸쓸해? 뭐가?! 뭐가?! 뭐가?!”(황인숙, 「가을밤 2」) 아아, 정말 쓸쓸하구나. 처음 물음표 둘은 즐거운 반문이지만, 뒤쪽 물음느낌표 셋은 어쩌면 쓰디쓴 울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름은 아직 물러서지 않았고 가을은 미처 이르지 않았으니, 바람이 불어도 쓸쓸하지 않고 소름이 돋아도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