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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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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들의 ‘탐욕’ 아예 싹부터 잘라라 _『피케티의 신자본론』(문화일보 서평) 살아 있는 마르크스, 피케티가 한국에 되돌아왔다.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소득 불평등의 실체를 폭로해서 거대한 사회적 충격을 주었던 『21세기 자본』이 국내에서 출간된 지 한 해 만이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이미 보여주듯이, 『21세기 자본』에 나오는 주장은 사실 체감으로는 누구나 아는 것이다. 피케티는 이를 자료를 집적해서 객관적 숫자로 보여주었을 뿐이다. 돈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자본수익률(이자, 이윤, 임대료, 배당금 등)이 경제성장률(노동 등을 통한 실제 부의 증가율)보다 높으며, 이로 인해 세계가 ‘세습자본주의’ 체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피부에 와 닿는 주장 덕분에 피케티의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경제학 서적 특유의 난해함 탓인지, 읽기도 전에 내용에 공감부터 한..
50대, 인생의 절정을 소망하라(문화일보 기고) 예전에 《문화일보》에 기고했던 글이다. 문장과 뜻을 다듬어 여기에 올려 둔다. “나대로 살면 ‘꼰대’…‘또 다른 삶’ 공감(共感) 위해 문화 즐겨야” 예전에는 인생의 절정이 서른 살 무렵에 온다고 여겼다. 강건한 육체, 뜨거운 가슴, 순수한 이상이 백열(白熱)하면서 세상의 어둠을 정화할 최적의 때라고 믿었다. 지금은 당연히 안다. 삶이 진짜로 고조되는 순간은 넉넉히 세상을 배우면서 시간을 최소한 스무 해는 더 보내야 한다는 것을. 내 생각에, 사람은 적어도 평생 네 차례에 걸쳐 운명을 다시 받는다. 태어나면서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어제의 삶으로 오늘의 명(命)을 새롭게 하는 혁명의 연속으로써 인생을 이룰 뿐이다. 일찍이 공자는 인생을 자술하면서 하나의 삶에서 또 다른 삶으로 뛰어오르..
‘5포세대’에겐 독서도 사치?… 20代 책 구매 뚝 (문화일보 기사) 문화일보와 함께 교보문고의 독자 통계 자료를 들여다보았다. 함께 통계를 분석하면서 이런저런 코멘트를 달았지만, 사실 조금 충격을 받았다. 물론 감이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숫자로 확인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20대에 독서 습관이 이룩되지 않으면, 30대에서도 여전히 책을 읽지 않는다.출판의 주 독자층이 20대에서 30대로, 30대에서 40대로 5년마다 바뀌는 것은 그 강력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비독자를 독자로 만드는 꾸준한 실천 없이 출판은 살아날 수 없다.미래 세대를 책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질 높은 콘텐츠는 당연한 의무다.하지만 그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운동 역시 마찬가지로 필수다. 올해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서 습관(Reading Habits)이 출판의 화두로 떠오른 것에도 다 이유가 있..
[문화일보 서평] 일본인이여… 몰랐다고 무책임해도 되는가 _ 가토 슈이치의 『양의 노래』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하는 국민은, 스스로 훨씬 자유롭다고 믿었을 때 훨씬 더 자유롭지 못했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존재를 몰랐던 수많은 독일 국민처럼, 군사 목표에 한정된 폭격으로 말미암아 폐허로 변해버린 베트남 마을들의 실정을 까맣게 몰랐던 미국 국민처럼.”난징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대다수 일본 국민은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 그러나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 가토 슈이치는 “황군이 동양의 영원한 평화와 선린우호를 위해 어린아이와 부녀자를 포함한 중국 인민 수만 명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그 학살에 대한 무책임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전에 아마도 분명히 학살자한테 정권을 맡긴 ‘자유의 포기’가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진실은 이처럼 가혹하다. 영혼을 횡..
[문화일보 서평] 美 정의의 여신, 돈에 눈멀었나? _맥 타이비의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따르면, 정의(正義)란 기본적으로 “사물의 공정한 분배”를 뜻한다. 정의란 언제나 “분배”를 따지는 실천이고, 따라서 그 한 갈래인 사법 정의란 “마땅히 벌해야 할 이들에게 죄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다.(이마미치 도모노부, 『단테 신곡 강의』) 이것이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는 눈을 가린 채, 한 손에 저울을, 한 손에 칼을 든 이유일 것이다. 죄를 저지른 자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신분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공정함과 엄정함을 무기로 법을 집행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뜻이다.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는 오늘날 미국에서 ‘정의의 여신’이 어떻게 돈 앞에서 눈을 뜨게 되었는가를 그 뿌리까지 파헤친 르포르타주 논픽션이다. ‘빈부 격차 시대의 미국의 부정..
[문화일보 서평] 왜 어떤 일은 기억하고 어떤 일은 쉽게 잊을까 _다우어 드라이스마의 망각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표절 사건이 일어난 후, 소설가 신경숙이 그 일을 사실상 시인하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표현의 모호함 탓에 대중의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일상에서 무척 자주 일어난다.1970년 영국에서 유사한 표절사건이 벌어졌다. 고발된 사람은 조지 해리슨. 비틀즈의 멤버다. 그가 솔로로 발표한 곡 「나의 자비로운 신(My Sweet Lord)」이 여성 그룹 치폰스의 히트곡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He’s so fine)」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두 곡은 멜로디가 아주 비슷했다. 「그 사람은 너무 멋있어」를 반주로 틀어놓고 「나의 자비로운 신」을 불러..
[문화일보 서평] 성장 없는 사회… ‘골목 小商’이 답이다 시골로, 숲으로, 골목으로……. 또, 다른 곳으로……. 그러니까 어디든지!‘어떻게 살 것인가’는 모든 시대의 문제이지만, ‘어떻게 비자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는 우리 시대의 문제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읽든,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든,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든, 다른 어디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 행동거지는 각각 다를지라도 품은 마음과 목표는 단 하나뿐이다. 자본주의를 횡단함으로써 생명의 새로운 규칙을 찾아내기. 고래가 뭍에서 바다로 돌아갔듯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보전을 위한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한 번 더, 조금 더’에서 ‘더 이상은, 이대로는’으로 종의 윤리가 격변하는 중이다.『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에 따르면, 현재 자본주의는 진보의..
[문화일보 서평] 타인에 대한 ‘연민’ 없이 민주주의, 제대로 작동할까 _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 경이(驚異).놀랍고 신기하다. 감각이 깨어나고 몸이 풀리면서 상념이 융기한다. 문장들이 누적되고 페이지들이 모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낯선 지형을 머릿속에 만들어낸다. 이 지형도에는 ‘감정의 철학’ 또는 ‘감정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리라. 이성의 사유가 아직 제대로 개척하지 못한, 때로는 의도적으로 배척하고 때로는 처치 곤란으로 미루어둔 광대한 황무지. 마음의 지층으로 볼 때 이성보다 아래쪽을 이루면서도 여전히 어둠에 남겨진 영역. ‘감정’이라는 이름의 신대륙이 마침내 지적도를 얻었다.사흘에 걸쳐 1400쪽에 이르는 책을 모두 읽었다. 역시 마사 누스바움이다. 그녀의 책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시적 정의』, 『혐오와 수..